삼성월렛 10주년 관련 이미지. 사진=삼성전자
삼성월렛 10주년 관련 이미지.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영국계 금융회사 바클레이스와 손잡고 신용카드 출시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삼성의 금융 플랫폼 확장 전략에 이목이 집중된다.

하드웨어 중심의 수익 구조를 넘어 금융 서비스를 결합한 플랫폼 확장을 본격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더 나아가 신용카드 이외 고수익 예금계좌 출시와 관련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전자의 이번 '미국 현지 금융 실험'은 단순한 카드 출시가 아닌, 제조 중심 기업이 금융 생태계로 확장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시장에서의 삼성의 이번 실험은 한국 금산분리 규제가 산업계와 금융권의 혁신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바클레이스와 협력해 비자카드 결제망을 기반으로 한 신용카드 발급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신용카드 외에도 고금리 예금 계좌, 디지털 선불 계좌, 후불 결제 상품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검토 중이며, 일부 상품은 바클레이스와 함께 출시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은 양사가 연말까지 제휴를 공식화할 계획이지만, 협상이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협력은 미국 내 '삼성 월렛'의 존재감을 강화하려는 삼성전자와 금융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바클레이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해석된다.

삼성 월렛은 삼성페이 기반의 결제 편의성 덕분에 국내에서는 압도적인 사용자층을 보유하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아직 시장 개척 단계다.

WSJ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신용카드 이용 시 발생하는 캐시백을 '삼성 캐시' 계정에 예치하고, 이를 다시 자사의 고금리 저축 계좌로 이체할 수 있는 구조를 구상 중이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혜택이 휴대전화, TV, 가전제품 등 자사 제품 판매 확대와 고객 충성도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애플이 2019년 골드만삭스, 마스터카드와 제휴해 출시한 '애플카드' 사례가 삼성의 전략 모델로 꼽힌다.

애플카드는 결제 시 무제한 2%, 제휴처에서 3% 캐시백을 제공하고, 애플 제품 구매 시 무이자 할부 혜택을 부여해 큰 인기를 얻었다. 다만 골드만삭스가 소비자 금융 부문에서 적자를 내면서, 최근 애플은 제휴 금융사를 JP모건 체이스로 교체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 국내에선 금산분리 규제에 막혀

재계에서는 삼성전자는 금융 서비스를 미래 성장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결제, 예금, 후불결제 등 금융 기능을 자사 기기 및 플랫폼과 결합해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구상이다.

WSJ은 "애플이 금융 상품을 통해 브랜드 충성도를 강화했듯, 삼성도 소비자와의 관계를 심화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추진하는 금융 서비스는 국내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산업자본이 금융업을 직접 영위하거나 지배할 수 없도록 한 금산분리 규제와, 은행의 본질적 업무를 외부에 위탁할 수 없게 한 업무 위탁 제한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삼성전자가 직접 금융 상품을 기획하거나 운영하는 형태는 현행 법 체계상 '비금융 기업의 금융업 침해'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이에따라 국내에서 삼성전자가 할 수 있는 금융 제휴는 삼성카드나 은행과의 단순 협업에 그친다.

삼성페이 결제 시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제휴카드가 있지만, 금융 서비스 운영 주체는 전적으로 삼성카드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삼성전자가 직접적인 카드 마케팅에 참여하는 것도 제한돼 있다.

최근 삼성월렛이 우리은행과 제휴해 포인트 기반의 '삼성월렛 머니'를 선보였지만, 이는 선불 충전형 전자지급수단으로 미국에서 구상 중인 신용·예금 결합형 서비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 "한국과 서비스 구조 완전히 달라질 것"
미국에서 삼성전자는 금융 시스템 설계 주도권을 쥘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금융사가 모든 권한을 갖는다.

미국에서는 삼성전자가 금융 서비스를 직접 설계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금융회사가 모든 권한을 갖는다는 점에서 같은 삼성 월렛이라도 미국에서는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 서비스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서는 비금융 기업의 금융 참여를 제한하는 현행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금융 기업이 은행 인프라를 활용해 금융 서비스를 설계·운영하는 '서비스형 금융(BaaS·Banking as a Service)'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BaaS는 금융과 비금융 기업이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트렌드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맞춰 정책적 지원과 규제의 탄력적 운영이 수반되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