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저, 아둔한 놈"이라며 욕하다 "그래, 그것이 당신만의 잘못이겠나"며 씁쓸한 미소를 떨군다. 답답하다가도 왠지 서럽고, 그 옛날 아버지 생각도 난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또 안아주고 싶다. 왜 드라마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왜 눈물이 나는 거야. 왜 답답하지. 도대체 왜? 이거 뭐야 무서워..

사실 이 세계에서 필자가 아는 김부장은 강력한 남자다. 딸을 사랑하며 전우들과 힘을 합쳐 국가권력 수준의 무력과 정면으로 맞서는 사내다. 버릇없는 MZ세대들을 혼내주고(끼야호!) 평소에는 친절하고 젠틀한 이 시대의 중년이지만 돌변하면 막 잘생겨진다. 평소 쓰던 안경을 벗으면 순식간에 20살은 젊어진다. 머리숱도 많아진다. 그거 도대체 어떻게 한거야...

사진=네이버 웹툰 갈무리
사진=네이버 웹툰 갈무리

지금 내가 보게되는 김부장은 다르다. 짠하다. 그리고 답답하다. 원래 알던 김부장보다 돈이 많고 사회적 명성도 높지만 글쎄,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보니 꼰대스럽다. 그래서 또, 찾아보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김부장' 신드롬에 빠졌다. 지난 10월 25일 첫 방송된 JTBC 토일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 이야기’)가 K-직장인들의 심장을 정확히 저격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공개 직후 넷플릭스 대한민국 톱 TV쇼 1위를 석권했으며, 지난 11월 2일 방송된 4회 만에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거침없는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김부장은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타이틀인 '서울 자가'와 '대기업 부장'이라는 두 개의 상징을 품고 그 이면에 숨겨진 평범한 가장의 애환과 고군분투를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보고 있으면 가끔 답답하고 꼰대스러워 짜증나지만 왠지 씁쓸해진다. 오래된 골목길 땅거미가 질 무렵 터덜터덜 걸어가는 천하무적 성기사가 흐르는 검의 파동을 닮았달까.

흥미로운 대목은 그 폭발력이다. 단순히 브라운관 안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안방극장을 강타한 감동이 원작 웹툰으로, 다시 원작 소설로 거슬러 올라가며 강력한 'IP 선순환'의 불길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성공이 이미 완결된 원작 웹툰의 폭발적인 재소비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역주행의 정석'이다.

사진=넷플릭스 갈무리
사진=넷플릭스 갈무리

"30배 폭증"… 스크린의 감동이 웹툰으로, 김부장이 일으킨 선순환 효과
드라마 <김부장 이야기>의 흥행은 원작 IP의 강력한 부활을 견인하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웹툰에 따르면 드라마가 첫 방영된 지난 10월 25일부터 11월 7일까지 약 2주간 웹툰 '김부장 이야기'의 국내 조회수는 드라마 1차 티저 영상이 공개되기 전 2주간(9월 11일~9월 24일)과 비교해 무려 30배 이상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K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꼽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성공을 넘어, 영상화된 2차 저작물이 다시 원작(1차 저작물)의 생명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IP 선순환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폭발력의 방향이 1, 2, 3차가 아닌 역순으로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의미있는 순간이다.

사실 웹툰 김부장 이야기는 2021년 출간된 송희구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기반으로 2023년 12월 연재를 시작해 지난 8월 총 85화로 완결된 작품이다. 연재 당시에도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현실적인 공감대와 뛰어난 작화로 독자들의 큰 사랑과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완결된 작품이 드라마 방영을 기점으로 신규 연재작을 압도하는 수준의 폭발적인 트래픽을 기록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드라마라는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김부장'의 매력을 처음 접한 시청자들이 원작의 더 깊은 서사와 감동을 찾아 웹툰으로 유입되고, 기존 웹툰 팬들은 드라마를 통해 느낀 감동을 웹툰에서 재확인하는 시너지가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크린 속 배우들의 열연이 문자와 그림으로만 존재했던 '김부장'에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고, 시청자들은 그 숨결의 근원을 찾아 다시 웹툰을 펼쳐 들게 만든 셈이다.

머리숱은 많다. 웹툰 버전. 사진=네이버웹툰
머리숱은 많다. 웹툰 버전. 사진=네이버웹툰

김부장 유니버스의 확장… 드라마-웹툰-외전으로 이어지는 K-IP의 진화
이번 '김부장' 신드롬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원작이 재조명되는 것을 넘어 IP의 세계관이 성공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네이버웹툰은 드라마 공개 시점인 10월 25일에 맞춰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외전(스핀오프)을 새롭게 공개했다.

총 10회 분량으로 매주 토요일 네이버웹툰 '매일+ (플러스)'에서 연재되는 이 외전은, 현재의 '김부장'이 아닌 '신입사원 김부장'의 풋풋했던 시절을 다룬다. 이는 매우 영리한 전략이다. 원작 웹툰을 사랑했던 팬들에게는 반가운 새 이야기를, 드라마를 통해 '김부장' 캐릭터에 막 빠져들기 시작한 팬들에게는 그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선물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통해 폭발적으로 유입된 트래픽을 '외전'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로 자연스럽게 유도함으로써, IP의 생명력을 연장하고 '김부장 유니버스'를 더욱 공고히 구축하는 전략이다. 독자들은 본편에서 미처 다뤄지지 않았던 김부장의 과거를 통해 그의 현재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고, 이는 다시 드라마와 본편 웹툰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김부장 이야기>의 사례는 K-콘텐츠 IP 비즈니스가 얼마나 더 정교하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탄탄한 원작(소설)을 발굴해 성공적인 웹툰으로 1차 가공하고, 이를 다시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 2차 영상화해 대중적 흥행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흥행의 열기를 다시 원작 웹툰의 역주행과 외전(스핀오프)의 성공으로 연결하며 IP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사진=네이버웹툰
사진=네이버웹툰

"50대를 위한 동화"… '김부장'은 어떻게 시대의 위로가 되었나
<김부장 이야기> 신드롬의 핵심에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깊은 공감'과 '따뜻한 위로'가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드라마와 웹툰의 흥행 배경을 깊숙이 파고들면 이 시대의 중년들이 이 이야기에 왜 이토록 열광하는지에 대한 답이 보인다. 

네이버시리즈에 등록된 웹툰 독자들의 댓글은 이 현상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당장 한 50대 독자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투자 실패하고, 몸도 아프고, 집에 있는 시간 늘어나면서 우울해져 가는 저에게 한 줄기 햇살 같은 웹툰입니다. 50대를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정신과 치료보다 낫습니다. 저절로 다시 살아갈 힘이 납니다"라며 작품을 '치유'의 경험으로 고백했다.

또 다른 독자 역시 "좋은 스토리에 좋은 그림입니다. 이 웹툰만큼은 꼭 미리보기로 대가를 지불하고 봅니다. 얼마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가분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오십이 넘었지만 아직도 삶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이 이야기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라며 작품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다.

물론 김부장에게 자신을 온전히 투영하면 약간 떨떠름한 지점도 생긴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서울 자가'와 '대기업'이라는 성과를 이뤘지만 여전히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고군분투하는 이 시대 모든 '김부장'들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밉지만 또 미워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페르소나가 된다. 

작품은 이들의 어깨를 묵묵히 다독이며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말한다. 성공 신화나 자극적인 복수극이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희망과 가족애, 그리고 동료애를 통해 지친 현대인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선물하는 셈이다.

드라마는 이러한 원작의 정서를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구현해냈고, 웹툰은 특유의 속도감 있는 전개와 섬세한 감정 묘사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50대를 위한 동화'라는 수식어는 그래서 이 작품이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들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사실 두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을 후벼파기는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또 우리가 쉽게 놓칠 수 있는 디테일을 꼼꼼하게 잡아내며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의 이야기가 소설과 웹툰, 그리고 드라마를 넘나들며 거대한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틈에서 김부장이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는 30배 더 강해져 돌아왔고, 그가 써 내려갈 앞으로의 이야기가 K콘텐츠 IP의 역사에 어떤 새로운 획을 그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