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반도체 산업의 절대 군주로 군림했던 인텔이 생존을 위해 숙명의 라이벌 AMD의 손을 잡는 파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인텔이 자사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에서 AMD의 칩을 제조하기 위해 초기 단계 협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1일(현지시간) 알려지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인텔 주가는 7퍼센트 이상 급등했고 AMD 주가 역시 1퍼센트 넘게 오르며 기대감을 반영했다.

위기의 해부학 "인텔 몰락의 재구성"
최근까지 이어진 인텔의 위기는 단일 제품의 실패가 아니다. 수년에 걸쳐 진행된 구조적 문제다.
위기의 진정한 시작점은 전설적인 제조 기술력의 체계적인 붕괴였다. 10나노 및 7나노 공정의 반복된 지연이 대표적이다. 인텔의 비즈니스 모델 전체를 지탱해 온 기술 리더십이 흔들리며 본격적인 파국이 시작됐다. 반도체 제조의 성패를 가늠하는 '수율(Yield)' 문제에서 시작된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며 인텔 제국은 크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장 최첨단 공정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자 인텔 제품의 성능 및 전력 효율성 경쟁력은 뒤처지기 시작했다.
더 치명적인 결과는 AMD나 엔비디아와 같은 팹리스 경쟁사들이 인텔을 기술적으로 추월한 대만의 TSMC에 생산을 위탁하면서 시작됐다. 자체 공장을 보유한 인텔의 통합 반도체(IDM) 모델이 오히려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제조 경쟁력 상실은 곧바로 모든 사업 부문에서의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한때 95퍼센트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던 데이터센터 CPU 시장은 AMD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졌다. 실제로 AMD의 서버 시장 점유율은 20~30퍼센트대로 급등하며 인텔의 아성을 위협했다. 인텔이 CPU에 집중하는 동안 AI 혁명은 GPU를 중심으로 전개됐고, 이 전략적 실수는 엔비디아가 AI 가속기 시장에서 80퍼센트가 넘는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는 길을 열어주기에 이르렀다.
주요 고객이었던 애플도 잃었다. 애플이 자사의 멕(Mac) 제품군에 인텔 칩 대신 자체 설계한 M-시리즈 실리콘을 탑재하기로 한 것이 결정타다. TSMC에서 생산된 칩이 인텔의 최고 제품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며 '인텔 인사이드'가 더 이상 최고의 성능을 보증하는 마크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

워싱턴과 실리콘밸리가 인텔에 올인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국 반도체 패권 강화를 위해 '인텔 구하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8월 인텔 지분 약 10퍼센트를 직접 인수하며 경영난을 겪던 인텔에 구원투수로 나섰다.
당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세계 반도체의 95퍼센트가 대만에서 생산되는 것은 절대 긍정적이지 않다"며 "임기 내 미국 생산 비중을 40퍼센트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반도체 법(CHIPS Act)'을 통해 인텔에 최대 85억달러의 직접 보조금과 110억달러 규모의 대출 지원으로 구체화됐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인텔은 글로벌 기업들과의 연대를 통해 활로를 모색했다.
당장 지난달에는 AI 칩 시장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가 인텔에 50억달러(약 6조9320억원)를 투자하고 PC·데이터센터용 칩 공동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하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이를 통해 엔비디아는 인텔 지분 4퍼센트 이상을 보유한 주요 주주가 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번 역사적인 협력은 엔비디아의 AI와 가속 컴퓨팅 기술을 인텔의 CPU와 방대한 x86 생태계에 긴밀하게 결합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때 반도체 왕국이었던 인텔이 과거 주변적 역할에 머물던 엔비디아로부터 자금과 최첨단 기술을 동시에 공급받는 구조가 된 셈이다.
인텔의 협력 요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8월에는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이 인텔에 약 2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했고 최근에는 과거 핵심 파트너였던 애플에도 투자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팀 쿡 애플 CEO는 CNBC 인터뷰에서 "경쟁은 파운드리 산업에 좋은 일"이라며 "인텔이 부활하길 기대한다"고 밝혀 협력의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심지어 파운드리 경쟁사인 대만 TSMC와도 웨이퍼 제조 분야에서 투자나 협력 파트너십을 맺을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터져 나온 AMD와의 협상 소식은 인텔의 부활 전략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만약 AMD가 인텔에 칩 제조를 맡기게 되면 대형 고객 확보가 절실한 인텔 파운드리 사업에는 중대한 돌파구가 될 전망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대형 고객 유치가 인텔이 제조 기술 개발에 자신 있게 투자할 수 있게 하고 다른 반도체 기업에도 인텔이 신뢰할 만한 생산 파트너라는 강력한 신호를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아직은 갈길이 멀다. 특히 현재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18A 공정의 수율이 10퍼센트대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보고들이다. 만약 수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18A 공정이 실패한다면 이는 '4년간 5개 공정' 목표 달성의 실패를 의미하며 IFS는 치명상을 입을 전망이다.
나아가 인텔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TSMC는 3나노 공정을 안정적으로 양산하고 있으며 엔비디아는 '쿠다(CUDA)'라는 강력한 소프트웨어 생태계로 시장을 지배하는 중이다. AMD 역시 TSMC와의 협력을 통해 강력한 경쟁자로 남아있다. 인텔 입장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