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NC)의 공식 채널에서 1일 진행된 ‘AION2 LIVE’. 표면적으로는 구독자 10만 명 달성을 기념하는 이벤트 방송이었지만 이면에는 또다른 의지가 꿈틀거렸다. 고작 방송인데 무슨? 단언할 수 없다. 그 안에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 MMORPG 시장을 지배해 온 ‘성공 방정식’을 스스로 부정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가 담겼기 때문이다.
‘아이온라이크(Aion-like)’. 방송을 이끈 소인섭 아이온2 사업실장의 입에서 이 단어가 나온 순간 채팅창은 폭발적인 반응으로 뒤덮였다. “최근 출시된 게임들 중에서 멤버십과 외형 상품을 주력으로 하는 게임들은 별로 없었기에 저희에겐 아이온2가 큰 도전입니다. 아이온2가 성공해서 앞으로 나올 MMORPG들이 ‘아이온라이크’라는 별명을 갖고 나올 수 있도록 판을 바꿔보려 하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P2W(Pay to Win, 돈을 써야 이기는 게임)’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리니지라이크(Lineage-like)’ 모델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자 엔씨소프트 스스로의 과거를 넘어서겠다는 자기반성의 목소리다. 자동사냥과 끝없는 스펙 경쟁, 나아가 확률형 아이템 뽑기에 지친 게이머들에게 ‘아이온라이크’라는 낯설면서 신선한 화두는 단순한 신작 게임의 등장을 넘어선다. MMORPG 장르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11월 19일. 아이온2가 등판한다.

과거의 영광, 현재의 숙제 "왜 ‘아이온’이어야만 했나"
아이온라이크라는 선언의 무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8년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아이온’ 신드롬을 복기해야 한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시리즈로 확고한 왕좌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아이온은 전혀 다른 문법으로 새로운 시장을 잉태하는 중이었다. 혁신적이었던 크라이엔진(CryEngine)을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그래픽, 천족과 마족이라는 명확한 대립 구도와 MMORPG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구현되었다고 평가받는 ‘비행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특히 양 진영이 공중과 지상에서 격돌하는 RvR(Realm vs Realm, 진영 간 대전) 공간 ‘어비스’는 아이온의 상징이자 단순한 사냥터 반복을 넘어선 입체적인 전장의 재미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게이머들은 더 이상 땅에 발을 묶어두지 않고 창공을 가르며 전략적인 전투를 펼쳤, 이는 ‘보는 게임’과 ‘하는 게임’의 재미를 모두 충족시키는 아이온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이 되었다.
세밀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은 또 다른 축이었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몇 시간씩 공들여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를 ‘소스’라는 이름으로 공유하는 문화는 아이온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제 게임은 더 이상 정해진 아바타를 플레이하는 공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투영한 ‘또 다른 나’를 통해 살아가는 제2의 세계였다. 이는 아이온을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 PC방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만들었고, 158주 연속 PC방 점유율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다만 영광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업데이트 지연으로 인한 콘텐츠 고갈, 후반으로 갈수록 심화되는 장비 격차, 그리고 서서히 도입되기 시작한 과금 모델은 유저들의 이탈을 불렀다. 무엇보다 회사의 주력 수익 모델이 ‘리니지라이크’로 굳어지며 아이온이 가졌던 독창성과 도전 정신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거인의 도전은 그렇게 수명을 다해가는 듯 했다. 그러나 17년의 세월을 넘어 ‘아이온2’가 다시 비상하기 시작했다.
엔씨소프트 입장에서는 필승카드로 볼 수 있다. 단순한 IP 재활용을 넘어선 전략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먼저 ‘리니지라이크’의 피로감에 지친 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엔씨소프트의 가장 강력한 ‘비(非)리니지’ IP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여기에 비행과 입체적인 전투, 커스터마이징이라는 원작의 핵심 유산이 현세대 기술과 만났을 때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온은 과거의 영광과 실패를 모두 경험한 IP다. 이 지점에서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다.
이번 ‘AION2 LIVE’에서 공개된 정보들은 그 계승의 방향성과 혁신의 미래를 잘 보여준다. 원작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호법성’ 클래스의 부활,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월드의 일부가 되었던 ‘바람길’의 재현, 소소한 재미를 주었던 ‘펫 변신 캔디’의 등장이 눈길을 끈다. 원작의 감성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이다. 여기에 신규 던전 ‘아르카니스’와 미니게임 ‘슈고 페스타’ 같은 방대한 PvE 콘텐츠의 공개는 과거 아이온이 놓쳤던 ‘함께 즐길 거리’를 풍성하게 채워 넣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아이온2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엔씨소프트의 출사표다.

엔씨소프트는 어떻게 변했나
“같이하자, 엔씨가 달라졌다.” ‘AION2 LIVE’ 방송 이후 게임 커뮤니티에서 가장 빈번하게 보인 댓글 중 하나다. 게임 콘텐츠에 대한 기대감을 넘어, 개발사의 ‘태도’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지만 지난 수년간 엔씨소프트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불통의 아이콘’으로 불려왔다. 일방적인 업데이트 통보, 미흡한 소통, 유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은 짙은 그림자였다.
아이온2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달랐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유저들의 피드백을 수렴하는 창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 정점이 바로 이번 라이브 방송의 ‘궁금증 톡톡’ 세션이었다. 개발진은 멤버십 상품 정보, PC 최소 및 권장 사양, 8종 클래스의 스킬 구성, PvP 콘텐츠 등 민감하고 현실적인 질문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장면은 방송 도중 시청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와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변하고, 즉석에서 추가 보상을 결정하는 모습이었다. 과거의 엔씨소프트에게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쇼케이스가 아니라, 유저들과 함께 호흡하며 게임을 만들어가겠다는 진정성 있는 제스처다.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엔씨소프트가 겪은 위기감의 발로이자,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에 가깝다. 주력 IP의 노후화, 신작의 부진, 주가 하락,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 유저층의 신뢰 상실이라는 총체적 난국 속에서 엔씨소프트는 ‘신뢰 회복’이 그 어떤 마케팅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평가다. 결국 지금의 신선함은 곧 신뢰없이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체감한 결과다.
11월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 2025’에 메인 스폰서로 참가해 단독 300 부스 규모의 시연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계획 역시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단순히 신작을 홍보하는 자리를 넘어 유저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직접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듣겠다는 약속이다. 출시 전 마지막 담금질 과정에서 유저들의 피드백을 최대한 반영해 완성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의지 표현이기도 하다.
한때 ‘NC 다이노스’ 야구단을 향한 팬들의 애정 어린 별명이었던 ‘택진이 형’이라는 호칭이 다시 게임 커뮤니티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엔씨소프트의 변화를 유저들이 먼저 감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BM, 콘텐츠, 그리고 도전
소인섭 실장이 던진 ‘아이온라이크’라는 화두의 핵심은 비즈니스 모델(BM)의 혁신과 콘텐츠 중심의 게임 설계다.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는 가장 극적이다. 엔씨소프트는 아이온2의 핵심 BM이 ‘멤버십(구독형 모델)’과 ‘외형 상품’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확률형 아이템과의 결별 선언이다.
사실 ‘리니지라이크’의 핵심 수익 모델은 캐릭터의 능력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아이템을 확률적으로 판매하는 ‘뽑기’였다. 이는 단기간에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과도한 과금을 유발하고 유저 간의 격차를 극단적으로 벌려 게임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아이온2가 제시한 구독형 모델은 다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파이널 판타지 14’와 같은 글로벌 MMORPG의 표준 BM이기 때문이다. 모든 유저에게 동등한 출발선을 제공하며 게임 내에서의 성취가 오롯이 유저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실력에 의해 결정되도록 만든다.
‘돈’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쉬운 결정은 아니다. 사실 엔씨소프트에게 엄청난 도전이다. 기존의 뽑기 모델에 비해 단기적인 매출은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으로 재미있고 풍성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하여, 유저들이 기꺼이 매달 구독료를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그 어려움이 자연스럽게 두 번째 핵심, 콘텐츠 중심의 게임 설계로 이어진다. 실제로 ‘AION2 LIVE’에서 공개된 방대한 PvE 콘텐츠와 압도적인 커스터마이징 기능은 ‘아이온라이크’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준다. 유저들은 더 이상 자동사냥을 켜놓고 캐릭터가 강해지는 것을 수동적으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던전을 공략하고(아르카니스), 미니게임을 즐기며(슈고 페스타), 자신만의 독특한 외형을 꾸미는 과정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게 될 전망이다.
‘효율’을 중시했던 ‘리니지라이크’와 달리, ‘경험’을 중시하는 설계 철학의 변화를 의미한다. 단순히 강해지는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겪는 다채로운 경험과 다른 유저들과의 상호작용이 게임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물론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 ‘아이온라이크’라는 구호가 결국에는 또 다른 형태의 과금 모델을 포장하기 위한 수사에 그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구독 모델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편의성’ 아이템을 교묘하게 판매하며 경계를 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온라이크가 한국 게임업계에 좋은 사례가 되면 좋겠다”, “갓겜의 대명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하는 유저들의 염원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다. ‘리니지라이크’의 시대가 저물고, 보다 건강하고 재미 중심의 MMORPG가 주류가 되기를 바라는 수많은 게이머들의 목소리가 아이온2에 투영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엔씨소프트는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중이다.
엔씨소프트는 이렇게 스스로를 시험대 위에 올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11월 19일 아이온2가 세상에 공개되는 날, 우리는 한 게임의 성패를 넘어 대한민국 MMORPG의 미래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게임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곳이 아이온라이크의 나라입니까? 꼭 와보고 싶었습니다" 17년 전 천계와 마계의 게이머들을 열광시켰던 날갯짓이 2025년 겨울, 다시 한번 당신의 가슴을 울리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