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아버지이자 오픈AI의 수장인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1일 태평양을 건너 한국을 찾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연달아 만나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 총 투자 규모 5000억 달러, 우리 돈 700조원에 달하는 인류사적 프로젝트 ‘스타게이트(Stargate)’의 문이 삼성과 SK를 향해 활짝 열리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오픈AI는 지난 1월 클라우드 거인 오라클, 기술 투자계의 큰손 소프트뱅크와 함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인공일반지능(AGI) 시대를 열기 위한 물리적 토대를 구축하는, 그야말로 '문명의 관문'을 열겠다는 구상이다. 4년간 5000억 달러를 쏟아부어 미국 전역에 수십 개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와 슈퍼컴퓨터를 건설하는 것이 골자다. 

문제는 반도체다. 특히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 나아가 AI 연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안정적인 대규모 수급이 걸림돌로 부상했다. AI 칩 시장의 90%를 장악한 엔비디아가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해 수십만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하기로 했지만 GPU에 데이터를 쉴 새 없이 공급할 HBM 없이는 모든 것이 의미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트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올트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으로 온 올트먼
올트먼 CEO는 한국 도착 직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최태원 회장과 마주 앉은 올트먼 CEO는 ‘메모리 공급 의향서’ 및 ‘서남권 AI 데이터센터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하며 SK그룹과의 동맹을 먼저 확정했다. 이어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이동해 이재용 회장과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상호 협력 의향서’도 체결했다. 

단 하루 만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기술 거인이 동시에 오픈AI의 핵심 전략적 파트너 지위를 확보하는 한국 산업사에 전례 없는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

협약의 핵심은 HBM 공급 계약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D램 웨이퍼 기준 월 최대 90만장에 달하는 HBM을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전 세계 HBM 생산능력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규모다. 

계약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향후 수년간 수백조 원의 안정적인 수출 물량을 확보하며 제2의 부흥기를 맞게 된다. 나아가 AI 시대의 ‘쌀’이자 ‘석유’로 불리는 핵심 부품 공급망의 심장부를 한국이 틀어쥔다는 전략적 의미도 갖는다. 올트먼 CEO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한국은 훌륭한 기술 인재,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 강력한 정부 지원, 활발한 AI 생태계 등 AI 글로벌 리더가 될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 배경이다.

오픈AI의 선택은 필연에 가깝다는 평가다. 

먼저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을 개척하고 기술을 선도해 온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AI 칩 시장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와의 오랜 협력을 통해 기술력과 신뢰성을 입증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D램 시장의 전통적 강자이자, 메모리부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첨단 패키징까지 AI 반도체 생산의 전 과정을 수직계열화한 세계 유일의 ‘턴키(Turnkey)’ 기업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오픈AI가 메모리 솔루션 수급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할 방침”이라며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의 융복합 기술 측면에서도 삼성만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솔루션이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SK하이닉스 관계자 역시 “오픈AI의 전례 없는 공급 요청에 적기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체제를 구축할 것이며, 이는 SK하이닉스의 HBM 리더십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SK AI 데이터센터 기공식. 사진=SK
SK AI 데이터센터 기공식. 사진=SK

AI 인프라까지
올트먼의 방한은 반도체 공급을 넘어 AI 인프라까지 연결된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오픈AI와 함께 전라남도 서남권에 오픈AI 전용 AI 데이터센터를 공동으로 구축하기로 했으며이는 지난 8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7조 원 규모의 울산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선 데 이은 또 하나의 메가 프로젝트다. 한반도 남단을 동서로 잇는 ‘AI 인프라 벨트’의 탄생인 셈이다.

삼성의 대응은 더 미래지향적이다.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하는 ‘풀 스펙트럼(Full-Spectrum)’ 전략으로 올트먼과의 접촉면을 넓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SDS는 자사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 노하우를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제공하고, 국내 최초로 오픈AI의 기업용 서비스(ChatGPT Enterprise)를 판매하고 기술 지원하는 리셀러 파트너십을 맺었다. 나아가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은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띄우는 ‘플로팅 데이터센터(Floating Data Center)’ 공동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으며 이는 육상 부지 고갈과 막대한 전력 소모라는 데이터센터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혁신적인 시도라는 말이 나온다.

AI 반도체 공급을 시작으로 육상과 해상을 아우르는 데이터센터 구축 및 운영, AI 서비스의 기업 시장 확산, 그리고 미래형 인프라 기술 공동 개발까지 원스톱으로 가동된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이 AI 시대의 단순한 부품 공급자를 넘어, AI 혁신을 위한 인프라 전반을 설계하고 책임지는 핵심 플레이어로 격상했음을 의미한다.

정부도 즉각 화답하며 동맹에 힘을 실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올트먼 CEO를 접견한 이재명 대통령은 “독점의 폐해가 없다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며 700조 원 프로젝트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 조달을 위해 국가가 직접 나서겠다는 파격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오픈AI와 AI 분야 협력 MOU를 체결하고, 전남과 포항 등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을 적극 지원하기로 하며 정책적 뒷받침을 약속했다. 민간 기업의 결단이 국가적 지원과 맞물리며 대한민국 전체가 AI 대전환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서는 역사적인 하루다. 최태원 회장이 언급한 “SK의 통합 AI 인프라 역량을 집중해 국가 AI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메시지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