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직매입 유통 기업의 ‘늦은 정산’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낸다. 올해 초부터 진행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납품업체가 신속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공정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소상공인과 납품업체를 중심으로 이들 기업의 늦은 정산에 대한 불만이 제기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직매입 등 전통 유통 기업의 경우 지난해 ‘티메프 사태’ 이후 정산 기한을 20일로 단축하는 법안이 발의된 온라인 중개업체와 달리 현행법상 정산 기한이 60일로 규정돼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다만, 정부 차원의 규제가 진행될 경우 중소기업의 기업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주병기 위원장 “대금 지급 기한 단축하겠다”

30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따르면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9일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유통 분야 납품업계 간담회에서 “납품업체들이 더 신속하게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대금 지급 기한 단축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이 규정하는 지급 기한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라며 “대규모유통업체 전수조사를 통해 납품업체들의 대금 안정성을 강화하면서 유통업계에서도 충분히 부담 가능하도록 기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는 주 위원장의 릴레이 현장 간담회 네 번째 순서로 소상공인연합회·한국식품산업협회·한국패션협회·한국계란산업협회 등이 참석했다.
공정위가 유통 기업의 정산 기한에 대해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 2월 공정위는 전통 소매업 분야 대금 지급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백화점,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 등 유통 기업을 대상으로 서면 실태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조사 내용은 업체별 대금 지급 방식과 현황, 대금 지급 절차, 적정 대금 지급 기한, 대금 정산 기한 변경 사례 등이다. 현재는 관련 내용을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금 정산 기한에 대한 공정위의 관심이 높아지며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에 대한 추가 발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대규모 미정산 사태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최대 2개월에 이르는 온라인 중개업체의 대금 정산 기한을 20일 이내로 단축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당시 개정안에는 백화점을 비롯한 온라인쇼핑몰 등 전통적인 유통기업의 정산 기한 단축에 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이에 공정위는 법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올 상반기 진행한 조사 내용을 토대로 현행 60일(특약 매입의 경우 40일)인 이들 기업의 대금 지급 기한을 단축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도 움직이고 있다. 22대 국회 들어 발의된 대규모유통업법 발의안은 모두 15건으로 이중 김남근, 오세희, 임미애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직매입 거래의 상품 대금 지급 기한을 단축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정산 주기 단축에 따른 여파는?

공정위의 이 같은 조처는 유통 기업에 상품을 납품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납품 지연에 따른 불만을 제기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최근 쿠팡에 상품을 납품하기 시작한 일부 서점은 쿠팡의 늦은 정산 주기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60일에 달하는 쿠팡의 정산 주기가 한 달간 팔린 대금을 다음 달 중순 정산해 주는 서점 3사(교보문고·예스24·알라딘)와 비교해 길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출판인협회는 지난 22일 입장문을 통해 “쿠팡의 거래 관행이 출판 유통 질서를 심각하게 어지럽히고 있다는 업계의 우려를 직시한다”라며 “쿠팡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그간 출판계에는 업계 상황에 맞지 않는 거래 계약, 느린 정산, 성장 장려금 강요, 판매 데이터의 상업적 활용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의 문제가 누적되어 왔다”라고 비판했다. 실제 쿠팡의 정산 주기는 통상 60일로 1~3일 이내 대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네이버, 11번가, G마켓과 대비된다.
이외에도 지난 3월 국내 대표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개시 신청 이후, 일부 입점 업체 점주를 중심으로 대금 정산 주기를 대폭 단축하는 법 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를 통과할 경우 당장 유통 기업의 타격이 예상된다. 직매입은 운영 방법의 특성상 오픈마켓보다 재고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프라인 기반 기업의 경우 임대료, 전기세 등 월 단위 변수가 많아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대기업의 경우 어떻게든 정산 주기를 맞추겠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기업의 경우 정산 주기가 짧아지면 큰 회사에 밀려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는 데 있어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티메프 사태 등 미정산 문제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면 정부 차원의 감시가 우선하는 것이 먼저지 무작정 정산 주기를 단축하는 것은 기업 운영을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