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정부가 오는 10월 1일부터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백악관에서 막판 회동을 가졌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불확실성이 고조됐다.
핵심 쟁점은 올해 말 만료되는 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연장 문제다. 민주당은 이를 포함한 단기 지출법안(임시예산안·CR)을 주장하고 있으나 공화당은 별도 논의로 선을 긋고 있다.
공공 보험의 가입률이 낮은 미국에서는 저소득층 국민들의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가입 시 소득에 따라 일정액의 보험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공화당이 이 보조금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임시 예산안에도 이를 반영하자, 민주당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공화당은 하원과 상원 모두에서 다수당이다. 다만 상원에서는 100석 중 53석만 보유하고 있다. 상원의 임시 예산안 가결에는 단순 과반이 아닌 60표가 필요하기에 최소 7명의 민주당 의원이 찬성해 줘야 통과가 가능하다. 앞서 19일 하원을 통과한 임시 예산안은 같은 날 상원에서 부결됐다.
셧다운 우려에도 불구하고 뉴욕 증시는 인공지능(AI) 관련주 강세에 힘입어 상승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셧다운의 경제적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주요 경제지표 발표 지연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을 우려했다.
◆ ACA 보조금 연장 놓고 정면충돌…트럼프-민주당 회동 불발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셧다운 방지를 위한 회동이 열렸다.
이번 만남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1월 재집권 이후 처음으로 여야 지도부와 예산 문제를 공식 논의한 자리였다.
하지만 결과는 양측의 이견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에게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상원에서 부결된 공화당 주도의 단기 지출법안에 대해 "민주당 의견은 단 한 줄도 반영되지 않은 법안"이라며 "우리는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해온 적이 결코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J.D. 밴스 부통령은 민주당을 향해 "옳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셧다운으로 향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ACA 보조금 연장 문제에 대해서는 "같이 논의하자"며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정부가 셧다운되지 않은 상태에서만 협상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회동 전부터 부정적 기류를 드러냈다.
그는 민주당에 대해 "그들은 몇 가지를 양보해야 할 것"이라며 "그들의 아이디어는 결코 좋지 않다. 미국에 매우 해롭다"고 비판했다.
공화당은 하원에서 7주짜리 CR을 통과시켰지만, 민주당은 ACA 보조금 연장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튠 원내대표는 30일 CR 재표결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보조금 연장 항목은 여전히 제외돼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 뉴욕 증시, 셧다운 우려에도 'AI 랠리'
정치권 대립으로 셧다운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뉴욕 증시는 오히려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날 다우지수는 68.78포인트(0.15%) 오른 46316.07에 마감했고, S&P500 지수는 17.51포인트(0.26%) 상승한 6661.21, 나스닥은 107.09포인트(0.48%) 오른 22591.15로 거래를 마쳤다.
투자자들의 매수세는 AI 관련 종목에 집중됐다. 엔비디아가 2% 오르며 기술주 상승을 주도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도 각각 1% 안팎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오픈AI가 전자상거래 업체 엣시, 쇼피파이와 계약을 맺고 챗GPT에서 직접 구매·결제가 가능한 기능을 도입한 점도 AI 열풍을 부추겼다.
개별 종목에서는 미국 게임사 일렉트로닉아츠(EA)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주도 컨소시엄에 550억달러에 매각된다는 소식에 4.5% 급등했다.
반면 국제유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종전 방안에 합의하면서 수요 둔화 우려가 부각돼 급락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45% 떨어졌고, 셰브런과 엑손모빌 등 에너지주가 2% 넘게 하락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셧다운이 증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았다고 평가하면서도, 경기지표 발표 지연으로 투자자들이 방향성을 잡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월가 "셧다운, 경제 충격 제한적…데이터 공백이 문제"
셧다운 우려에 대한 월가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마크 카바나 금리 전략책임자는 보고서에서 "미국 정부가 셧다운을 앞두고 있지만 경제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는 "셧다운이 장기화될 경우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민간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정책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실제 미국 노동부는 셧다운이 발생하면 노동부 산하 통계기관이 경제지표 발표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통계국(BLS)이 예정했던 9월 고용보고서와 주간 실업수당 청구 보고서도 지연될 전망이다. 과거 2013년 셧다운 당시에도 9월 고용보고서가 10월 22일로 연기됐고, 소비자물가지수(CPI)도 2주 늦게 발표된 전례가 있다.
경제학자들은 셧다운이 일주일 지속될 경우 경제성장률(GDP)이 약 0.1%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하지만, 30조달러 규모의 미국 경제에서 이는 제한적인 영향에 그칠 것으로 본다. BofA는 “단기적 손실은 다음 분기에 대부분 만회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가계 차원에서는 타격이 크다. 엘리자베스 렌터 너드월렛 이코노미스트는 "가장 즉각적이고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급휴직에 들어가는 연방 공무원과 계약직 직원들"이라며 "단 일주일만 소득이 끊겨도 가정의 재정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셧다운 현실화 시나리오…시장과 정책에 미칠 파장
의회가 30일까지 단기 지출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연방정부는 10월 1일부터 셧다운에 들어간다.
이번 사태는 단기화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지만, 만약 장기화될 경우 정부 서비스 중단, 공무원 무급휴직, 각종 행정 절차 지연 등으로 불편이 커질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지표 공백이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연준이 고용과 물가 지표를 확인하지 못하면 통화정책 판단에 차질을 빚을 수 있고, 이는 금리 결정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 정치권의 대립이 이어질 경우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AI와 같은 성장 테마가 증시를 떠받치고 있지만,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되면 시장의 체력이 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번 셧다운 위기는 단기 충격보다 중장기적으로 미국 정치와 경제 시스템의 신뢰를 시험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