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협회. 사진=김호성 기자.
금융투자협회. 사진=김호성 기자.

펀드 판매 잔고가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들어 국내외 증시가 동반 강세를 보이면서 투자 자금이 펀드로 몰린 결과다.

공모펀드와 사모펀드 모두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했고, 금융기관과 기업, 개인투자자까지 다양한 수요가 시장을 키웠다. 전문가들은 펀드가 대중적 자산관리 수단으로 자리매김한 만큼 생산적 금융 전환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 사모펀드 700조·공모펀드 300조…투자 대중화 흐름 뚜렷

2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펀드 판매 잔고는 1002조989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872조8000억원에서 불과 반년여 만에 130조2000억원(14.9%) 늘어난 것이다.

펀드 판매 잔고는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회사가 지점과 온라인 채널을 통해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한 금액을 말한다. ETF와 부동산펀드, 특별자산펀드는 제외됐다. 이를 포함할 경우, 전체 펀드 순자산총액은 1308조8000억원에 달했다.

유형별로 보면 공모펀드 판매 잔고는 302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69조5000억원 늘었다. 증가율은 29.8%에 달해 대중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게 확대됐음을 보여준다.

사모펀드 판매 잔고 역시 700조5000억원으로 60조6000억원(9.5%) 증가했다. 전문투자자 중심의 자금이 꾸준히 유입된 결과다.

세부적으로는 단기금융펀드(MMF)가 224조7000억원으로 전체의 22.4%를 차지하며 가장 큰 비중을 기록했다.

이어 부동산펀드가 185조7000억원(18.5%), 채권형펀드가 172조5000억원(17.2%)으로 뒤를 이었다. 단기상품에서 장기·대체투자형 상품까지 전반적으로 균형 있게 성장한 모습이다.

◆ 증권사 판매 800조 육박…기관투자자가 3분의 2 차지

판매 주체별로는 증권사가 799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전체의 79.7%를 차지했다. 은행은 112조원(11.2%), 보험사는 12조1000억원(1.2%)으로 뒤를 이었다. 펀드 판매 시장에서 증권사의 압도적 우위가 확인된 셈이다.

투자 주체별로는 금융기관 법인이 666조5000억원으로 전체의 66.5%를 차지했다. 퇴직연금과 법인 MMF 수요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일반법인은 236조9000억원(23.6%), 개인은 99조6000억원(9.9%)을 기록했다. 개인 비중은 여전히 낮지만, 공모펀드 확대와 투자 다변화에 따라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계좌 수 기준으로는 전체 펀드 계좌가 3602만개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공모펀드 계좌가 3593만개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사모펀드는 9만개에 불과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소액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모펀드가 계좌 수 확대를 주도한 것이다.

◆ "펀드 시장, 한국 경제 재도약에 기여할 것"

전문가들은 펀드 판매 잔고의 1000조 돌파를 금융시장 구조 변화의 신호로 해석한다.

이환태 금융투자협회 산업시장본부장은 "펀드는 국민의 자산관리와 재산 증식을 위해 활용되는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투자수단"이라며 "생산적 금융으로 대전환하는 최근 흐름 속에서 펀드 시장의 성장은 우리 경제의 재도약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성장은 국내외 증시 호조, 퇴직연금 확산, 법인 유동성 관리 수요, 개인 투자자의 투자 대중화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기관 자금의 안정적 유입이 늘었고,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도 뒷받침됐다.

그러나 펀드 시장의 양적 팽창에 비해 투자자 보호와 상품 구조 개선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일부 펀드의 복잡한 구조와 불완전 판매 문제는 투자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펀드 시장이 장기적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단순한 규모 확대를 넘어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