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6월까지만 해도 급격히 치솟던 해상운임이 3분기 들어 내리막을 타고 있다. 최근 2주 동안 눈에 띄는 낙폭을 보이며 1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당초 하반기부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 시행이 예견되면서, 이를 피하고자 하는 화주들이 단기간에 대량의 화물을 처리하면서 수요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해운업계의 전통적 성수기인 3분기임에도 두드러지는 운임 하락세를 보이는 만큼, 업계에서는 당분간 현 상황이 지속되리란 우려가 나온다.
대표적 해상운임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6일 기준 1114.52p를 기록 중이다. 지난주 1198.21p 대비 83.69p 하락한 수치다. 지난주 운임의 경우엔 이보다 더 큰 하락세를 보였다. 1398.11p에서 1주 만에 119.90p(14.30%) 폭락했다. 기존 업계에서는 1000~1100p구간을 수익 마지노선으로 여겨왔다. 현재의 운임 흐름이 이어질 경우 선사들의 실적도 본격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는 셈이다.

현물 운임을 살펴보면 하락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드류리 세계 컨테이너 지수에 따르면, 9월 넷째 주 상하이-로테르담 노선 운임은 1761달러를 기록했다. 1년 전인 지난해 9월 말 3970달러에 비하면 절반 이상 저렴해진 것이다. 선사들은 1년 사이에 같은 노선을 운송하더라도 버는 돈이 반토막 난 상황을 마주했다.
사실 근래 해상운임은 높게 유지되는 추세였다. 지난 2023년 12월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글로벌 선사들이 홍해 항로를 우회하기 시작한 이후 국제적 컨테이너 부족 사태가 발발한 것이다. 홍해는 수에즈 운하를 끼고 있는 국제 물류 요충지인데, 이곳이 막히자 글로벌 해상 컨테이너의 30%가 경색을 겪었다.
선사들은 대응으로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를 결정했다. 선복량은 그대로인데 운항 기간만 기존 26일 수준에서 40일로 급격히 늘어나게 되면서 운임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한동안 고공행진 하던 운임은 2024년 하반기 이후 홍해 사태로 인한 컨테이너 부족 현상을 상쇄할 만큼의 선박들이 바다로 풀리면서 소강상태를 맞았다.
잠시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던 해상운임은 올해 5월부터 6월 사이 또다시 급격한 반등을 겪었다. 미국 정부의 관세 예고로 인한 화주들의 ‘프론트 로딩(선제 구매·발송)’ 때문이다.
트럼프가 예고한 상호관세 협상 시한이 7월 9일이었던 만큼, 아시아권 화주들이 7월이 되기 되기 전에 물량을 먼저 미국으로 보냈고, 미래에 발생했어야 할 선박 수요까지 미리 소진된 것이다. 결국 7월부터는 신규 화물 수요가 사라지는 수요 절벽 현상이 이어지는 중이다.
문제는 수요 절벽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 대표 명절인 국경절을 앞둔 상황임에도 운임이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업계 관계자는 “7월부터 시작되는 3분기는 중국 국경절과 여름 휴가철 등으로 물동량이 늘어나는 전통적 성수기였다”며 “원래 이 시기에 주요 선사들은 일반운임인상(GRI)도 단행하는 등 많은 이윤을 벌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올해는 오히려 3분기 화물 운송 수요 자체가 조기 소진된 상황인 데다, 선사들로서도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섣부르게 선복량 공급을 조절하긴 힘든 상황이라 화물 수주 경쟁만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화주들이 하루라도 더 빠르게 화물을 운송하기 위해 웃돈을 썼던 3개월 전과는 180도 달라진 양상이다.
구조적인 공급 과잉도 업계의 발목을 잡는다. 디지털 물류 플랫폼 ‘트레드링스’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사상 초유의 물류 대란과 운임 폭등을 경험한 해운사들은 막대한 수익을 바탕으로 대규모 신규 선박 발주에 나선 바 있다. 당시 발주된 선박들이 2024년부터 2025년에 걸쳐 대거 시장에 인도되면서, 선박 공급량이 수요 증가율을 크게 앞지르는 구조적 공급 과잉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일련의 공급 과잉은 앞으로 더 심해질 전망이다. 글로벌 10위권 선사들 중 한국 HMM을 제외한 9개 선사가 보유 선복량의 10% 이상의 발주 잔량(오더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위 MSC와 3위 CMA CGM은 선복량의 30%를 넘는 물량을 발주 잔량으로 보유 중이다. 2~3년 후 해당 선박들이 건조되고 바다에 풀린다면 공급 과잉과 운임 하락세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절대적 물동량 자체도 평년 대비 감소 중이다. 고금리, 인플레이션 등의 여파로 글로벌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된 탓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운임 약세가 지속되리라 내다본다. 한국무역협회가 발간한 ‘2025년 컨테이너 해상운임 변동 특징과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에도 사상 최대 규모의 신규 선박 인도가 예정되어 있어 구조적인 공급 과잉이 심화될 예정이다. 운임 하락 압력을 가중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역시 ‘해운조선업 2025년 상반기 동향 및 하반기 전망’ 보고서를 통해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미국의 관세 협상 등에 의한 돌발적 변화를 예측하기는 어려우나, 경기둔화에 높은 선복량 증가율까지 겹치며 하반기에도 하향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