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판매율 25% 상승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내세우며 명가 재건을 노렸던 지프의 목표 달성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 한때 7000대가 넘게 팔렸던 지프는 스텔란티스 본사의 최고경영자(CEO) 교체라는 뒤숭숭함을 이기지 못하고 현상 유지라는 새 목표를 긴급히 다시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와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프는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1269대 팔렸다. 랭글러 루비콘 언리미티드 2.0이 450대 팔려 가장 많이 팔렸고 레네게이드가 272대 나가 그다음을 이었다.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1840대가 나갔고 전체 2628대가 팔렸던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수치다. 2022년 7166대, 2023년 4512대로 체면치레를 했었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지프 랭글러 '41 에디션'. 사진=스텔란티스코리아
지프 랭글러 '41 에디션'. 사진=스텔란티스코리아

중간 지대 없다… 매력 잃은 가격

지프의 가장 큰 문제는 차량 가격이다. 현대자동차의 싼타페는 익스클루시브 트림이 3606만원, 가장 비싼 블랙 잉크 트림이 4484만원인데 지프의 가장 대표 차종인 2025 랭글러는 7270만원부터다. 2024 어벤저는 5290만원부터이며 그랜드체로키 4xe는 리미티드 트림 9440만원, 서밋 리저브 트림은 1억1190만원까지 차량 가격이 올라간다.

다른 차들도 가격대가 상당하다. 2025 글레디에이터도 8510만원부터이며 2025 랭글러 4XE는 9730만원부터로 책정됐다. 미국 현지에서 재고가 상당해 현재 판매를 하지 않고 있는 2023 레니게이드가 4550만원부터로 가장 저렴한 상황이다.

지프 더 뉴 2024 랭글러 루비콘 트림. 사진=스텔란티스
지프 더 뉴 2024 랭글러 루비콘 트림. 사진=스텔란티스

오프로드에 대한 수요가 이전만 하지 못해지고 차량 구매 ‘가성비·다운사이징’ 회귀가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며 대표 차종인 랭글러 모델의 수요도 급감했다. 지난 2022년 각각 914대, 761대 팔렸었던 랭글러 루비콘 언리미티트 2.0과 랭글러 사하라 언리미티드 2.0은 2023년 696대와 461대 팔렸고 지난해에는 716대와 374대 팔렸다. 올해는 8월까지 450대, 200대 팔린 상황이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동향은 관찰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프 브랜드의 평균 가격은 2018년 이후 61%나 급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형 랭글러의 경우 작년보다 400달러 오른 3만 1995달러(약 4276만원)부터 시작하지만 최고급형은 10만 1890달러(약 1억 3000만원)까지 상승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당시 스텔란티스는 사양 업그레이드에 따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지프 어벤저. 사진=스텔란티스코리아
지프 어벤저. 사진=스텔란티스코리아

지난해 9월 출시한 첫 순수 전기차이자 지난해 10월 한국자동차기자협회(KAJA)에서 발표한 '이달의 차'로 선정됐던 '어벤저'의 부진도 상당하다. KAIDA 통계에 따르면 어벤저는 올해 ▲1월 0대 ▲2월 4대 ▲3월 1대 ▲4월 2대 ▲5월 1대 ▲6월 38대 ▲7월 6대 ▲8월 1대를 기록하며 53대 판매되는 데 그쳤다. 6월을 제외하면 민망한 수치다. 지난해 10월 3대, 11월에는 단 한 대도 팔리지 않는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는 295km에 불과한 복합 주행거리와 가격 때문이다. 동급 모델인 현대 캐스퍼 일렉트릭의 318km보다 낮은 수치로 보조금을 제외하고 비교해도 어벤저는 5290만원, 캐스퍼 일렉트릭 프리미엄 트림은 2787만원이다.

한편 스텔란티스는 올해 상반기(1~6월) 23억유로(약 3조7100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56억유로 순이익을 거뒀다.

4년 동안 5만명 해고… 신차 생산 늦어진 이유 여기 있었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그룹 CEO가 7일(현지시간) 소프트웨어 데이를 열고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출처= 스텔란티스 코리아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그룹 CEO가 7일(현지시간) 소프트웨어 데이를 열고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출처= 스텔란티스 코리아

글로벌 측면에서도 지프는 부침을 겪었다. 한국 시장에서 단독으로 가격 인상을 결정할 수 있는 요인은 찾기 어렵다. 글로벌에서 가격을 큰 폭으로 올렸기에 가격이 상승한 것이고 그 원인에는 전임 사장인 카를로스 타바레스 CEO의 계속된 판단 오류가 있었다고 업계는 진단 중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11일 "타바레스는 미국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미국 경영진의 말도 듣지 않았고, 금리가 상승했을 때, 그는 자동차 가격을 할인하거나 기본 모델에 더 많은 기능을 기본으로 적용하지 않았다"며 "대신,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내부적으로 더 큰 폭의 비용 절감을 단행했다"고 지적했다.

4년 동안 타바레스가 해고한 인력은 5만명 이상으로 스텔란티스 그룹 전체 인력의 17%에 달하는 수준이다. 공장 직원들을 해고하고 수십 년의 경험을 가진 제조 리더들을 대거 내쫓은 결과는 전기차와 가솔린 차량 출시 지연이었다.

지프 차량들이 도열돼있다. 사진=연합뉴스
지프 차량들이 도열돼있다. 사진=연합뉴스

블룸버그는 "지프가 유일하게 피해를 본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가장 큰 손실을 본 브랜드는 자명하다"며 "이제 지프는 현대자동차와 포드와 같은 저렴한 브랜드에 고객을 뺏기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전임자를 탓할 수만은 없는 상황. 타바레스의 후임으로 지난 5월 지프 CEO에서 스텔렌타스 그룹 전체 CEO로 선임 된 안토니오 필로사는 "100년이 넘는 전통과 혁신, 고객 중심의 철학, 그리고 전 세계 팀원들의 열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지프(Jeep), 자유의 마지막 퍼즐 '패덤 블루' 에디션 출시. 사진=스텔란티스코리아
지프(Jeep), 자유의 마지막 퍼즐 '패덤 블루' 에디션 출시. 사진=스텔란티스코리아

한국에서도 일단 방실 대표가 최선의 수습을 나서고 있다. 당장 푸조 전시장과의 ‘브랜드 하우스(Stellantis Brand House, SBH)’ 통합 전환 속도를 내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올 상반기 부산·일산·의정부·안양 등 수도권 중심 주요 거점에서 SBH 전시장이 동시 오픈했고, 연내 10개 이상의 공식 SBH 전시장 운용이 목표로 공식 발표됐다. 8월에는 인천에서도 국내 11번째 SBH가 출범했다.

또 브랜드 철학과 문화를 컬러로 표현하는 ‘컬러 마이 프리덤(Color My Freedom)’ 캠페인으로 한정판 컬러 차량도 내놨다. 지난 6월에는 ‘모히또’ 에디션을, 8월에는 ‘주스 에디션을, 9월에는 '패덤 블루 에디션'을 선보였다. 한정 색상 에디션을 내놓으며 최선의 대응을 하는 모습이다.

방실 스텔란티스 코리아 대표는 “지프 브랜드만의 특별한 가치를 더욱 다양한 고객들과 나누고자 스페셜 컬러 에디션을 기존 모델과 동일한 가격으로 선보이고 있다”며 “지프는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브랜드로서 뜨거운 올여름을 지배할 용기를 갖춘 고객들과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