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철 장마가 옛말이 됐다. 기후변화가 심화하며 여름철 오랜 기간 내리는 장마 대신 특정 지역에 짧고 굵게 퍼붓는 집중호우가 일상이 되면서다. 다음 주 추석을 앞둔 현재까지도 일부 지역에서 열대야와 무더위가 이어지는 한편, 요란한 ‘가을 호우’도 예고돼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당분간 북쪽 찬 공기와 남쪽의 수증기가 맞물리면서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예상할 수 없는 기상 상황에 침수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와 지자체는 재발 방지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지난 2022년 그야말로 ‘역대급 폭우’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강남 지역은 정부뿐 아니라 인근 기업까지도 재방 방지책 마련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강남역 일대 빗물배수터널 생긴다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역 일대 지하에 빗물배수터널이 생긴다. 서울시는 지난 17일 제15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강남역 일대 빗물배수터널 건설공사를 위한 도시관리계획 결정안을 통과시켰다. 대상지는 강남구 역삼동 830-23번지부터 서초구 반포동 15-2번지 반포 유수지까지 이어지는 도로 지하 공간과 일부 어린이공원 지하, 반포IC 램프 지하를 지나는 구간이다.
해당 시설은 추후 기습 폭우 시 기존 하수관로의 빗물을 수직구를 통해 터널로 유입하고, 반포유수지에 설치된 수직구를 통해 반포천으로 배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착공 시점은 내년 11월로 2028년 5월 준공을 목표로 한다.
서울시가 이번 조치는 2022년 발생했던 ‘강남역 침수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앞서 2022년 8월,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동작구 일대에는 시간당 141mm의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이에 따라 당시 강남역 일대를 비롯해 2호선과 신분당선 역이 모두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또 인근 도로를 걷는 남매가 맨홀에 빠져 숨지는 등 8명이 숨지는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문제는 당시 강남역 일대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집중호우의 발생 빈도가 더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부와 기상청이 지난 18일 공개한 ‘한국 기후 위기 평가보고서 2025’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온난화가 더욱 심화하면서 폭염과 집중호우 등 기상재해 증가세가 확인됐으며, 이 같은 현상은 미래에 더 강하고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으로 태풍의 극한 강수 영역은 최대 37% 확대될 가능성이 제시됐다.
이에 따른 피해액 지출도 증가하고 있다. 조사 결과, 최근 3년간 호우로 인한 피해액 규모는 6384억원에 달했다. 이는 2010년대 연평균 자연재해 피해액(3883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안세창 환경부 기후탄소정책실장은 “폭염, 홍수 등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어 기후 취약계층 보호가 중요하다”라며 “사회 전 부문의 기후 대응 역량이 제고될 수 있도록 ‘제4차 국가 기후위기 대응(적응)대책’을 수립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승희 기상청 차장도 “기후 위기가 심화함에 따라 각종 기후 재난의 발생 양상이 복잡해졌다”라며 “정교한 기후 위기 감시·예측을 통해 기후 위기 적응 정책 수립을 위한 과학적 근거를 강화하겠다”라고 밝혔다.
신세계 센트럴시티, 장마철 ‘노아의 방주’ 된다

이 같은 상황에 유통업계도 천재지변에 대한 대비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지난 2022년 강남역 집중호우 당시 직접적인 침수 피해를 본 신세계백화점 센트럴시티의 경우 기존 차수판(물막이판)을 보강하며 ‘저류조’ 역할을 자처하는 과감한 조처를 취했다. 저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빗물을 주차장으로 몰아 일대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신세계는 지난 2023년 국지성 호우 등 기상이변에 대응하기 위해 센트럴시티, 서울고속터미널 등 입출차 램프에 설치된 기존의 차수판 높이를 높이고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보강에 나섰다. 추가된 차수판은 지난 2022년 강남 침수 때 ‘노아의 방주’로 알려진 청남빌딩 차수판 설치업체에 의뢰하여 설치했다. 설치된 차수판은 6m×1.8m 전동 유압식 스윙 차수판을 포함해 각종 기능실 입구를 막는 이동식 차수판 등 모두 5개소이다.
이는 복합 시설 중 최초로 전동 유압식 차수문을 설치한 것으로 설계 수압은 제곱미터당 1.2톤이다. 신세계센트럴은 차수판의 넓이를 11제곱미터로 도입해 비상시 50톤의 수압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1리터 생수병 50만개 분량에 달하는 양이다. 아울러 정전 시에도 전동 차수판이 작동할 수 있도록 비상 발전기도 연동했다.
신세계백화점 측은 “주차장 자체를 막을 경우, 주변 침수 수위가 더 높아져 경부선, 잠원로 등 인근 피해가 증폭될 것을 우려해 이동식 차수판을 설치했다”라며 “이동식 차수판은 주차장이 빗물로 찰 경우 각종 전기실, 기능실의 침수로 이어짐에 따른 2차 피해를 막고자 기능실 입구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형 전동 차수판으로 상가로 유입되는 빗물을 막음과 동시에 주차장을 거대한 수조로 사용하여 주변의 비 피해를 완충시키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신세계가 설치한 전동 차수판은 3시간 동안 150mm 이상 또는 12시간 동안 250mm 이상의 강수 발생 시 현장에서 관계자가 비상 대기를 한 이후 실내로 10mm 이상 빗물 유입이 관찰될 경우 작동된다. 또 폭우가 예보되면 곧바로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이미 주차된 차량은 차주에게 일일이 연락해 출차를 요청한다.
한편,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갤러리아 등 백화점도 잇따른 집중호우에 대응해 여름철 안전 점검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들 백화점은 여름 장마철을 앞두고 건물 외벽의 누수 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배수 상태 점검, 외부 현수막과 광고 사인 확인 등 조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통업계의 선제 조치에 시민들 반응도 뜨겁다. 특히, 유튜브를 비롯한 SNS에 신세계백화점이 설치한 차수판 관련해 다수의 영상이 업로드된 가운데, ‘기업이 큰 역할 했다’, ‘안전에 신경 쓰는 모습에 앞으로 더 자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