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연합뉴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Fed) 제롬 파월 의장이 23일(현지시간) 자산 시장의 과열을 직접 언급하면서 글로벌 증시가 약세를 보였다.

파월 의장은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 행사 연설에서 "많은 지표로 볼 때 주식 가격은 상당히 고평가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안정 리스크가 높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지만, 미국 주식시장의 과열 논란이 다시 부각되며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파월은 이날 금리 환경에 대해서도 "여전히 소폭 긴축적(modestly restrictive)"이라고 평가했다. 지난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정책 기조는 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노동시장 둔화가 인플레이션보다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경우, 올해 안에 추가 인하가 단행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 증시 고평가 우려 속 금리 불확실성 확대

파월 의장은 "우리는 전반적인 금융 여건을 살펴보고, 우리의 정책이 우리가 달성하려는 방식으로 금융 여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은 우리의 발언을 듣고 따라오며, 향후 금리가 어디로 향할지 스스로 추정한다. 그래서 시장은 그런 기대를 가격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금리 인하 속도와 물가 안정 사이의 균형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양방향 리스크(two-sided risks)라는 뜻은 위험이 전혀 없는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금리를 너무 빨리 내리면 물가상승률이 Fed의 목표치 2%보다 높은 수준에 고착될 수 있고, 반대로 긴축을 오래 유지하면 노동시장이 불필요하게 약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월의 이 같은 발언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는 압박과 고용 둔화 우려 사이에서 여전히 고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곧 시장 참여자들에게 통화정책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뉴욕증시 동반 하락…엔비디아 투자 논란도 겹쳐

이날 뉴욕증시 주요 지수는 파월 의장의 이같은 '증시 고평가' 의견 뿐 아니라 엔비디아를 비롯한 기술주의 약세로 하방 압력이 커지며 동반 약세를 보였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88.76포인트(0.19%) 하락한 46292.78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36.83포인트(0.55%) 떨어진 6656.92, 나스닥종합지수는 215.50포인트(0.95%) 밀린 22573.47로 집계됐다.

장 초반부터 차익실현 매물이 출회된 가운데, 엔비디아의 주가가 3% 넘게 떨어지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전날 엔비디아는 오픈AI에 10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했으나,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의문이 불거지면서 매도세가 강해졌다.

비스포크투자그룹은 고객 노트에서 "오픈AI는 자체 투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그 자신을 공급업체에 팔고 있다"며 "달리 말하면 엔비디아는 미래 매출을 확보하기 위해 자사 고객의 지분을 매입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바는 AI 분야 전체가 얼마나 자기 참조적인지 보여주는 불길한 신호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공매도 투자자 짐 차노스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비용을 제외하고 1기가와트 규모의 AI 공장 건설 비용이 200억~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며 "이는 현재 많은 AI 데이터센터 기업이 제시하는 비용보다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DA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연구 총괄은 "엔비디아의 오픈AI 투자는 초기엔 긍정적 반응을 얻었으나, 시장은 결국 오픈AI가 필요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엔비디아뿐이라는 점을 금방 깨달았다"고 말했다.

◆ 기술주 흔들, AI 테마 신뢰성에 의문

이날 시장에서 기술주와 임의소비재 업종은 각각 1% 이상 하락했다. 아마존은 3% 이상 밀렸고, 오라클은 4% 넘게 떨어졌다. 반면 에너지 업종은 1.71% 상승했다. 시가총액 1조달러 이상의 대형 기술기업 가운데 브로드컴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하락했다.

연준 주요 인사 발언도 엇갈렸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현재 미국 정책금리는 완만하게 긴축적이며, 중립 수준은 지금보다 1.50%포인트 낮다"고 언급했다. 반면 미셸 보먼 연준 부의장은 "노동시장 악화를 고려해 연준이 결단력 있게 정책금리 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9월 미국 구매관리자지수(PMI)는 둔화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서비스업 PMI 예비치는 53.9로 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으며, 제조업 PMI 예비치는 52.0으로 2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50bp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여전히 높게 보고 있다. 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12월까지 기준금리가 0.50%포인트 인하될 확률은 77%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