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의 연례 최대 기술 행사인 '스냅드래곤 서밋'이 올해로 1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 10년간 모바일 통신 기술의 최강자를 넘어 스마트폰의 핵심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을 장악해 온 퀄컴의 기술력을 증명하는 무대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과거의 영광을 넘어 퀄컴이 그리는 미래의 청사진은 무엇일까. 퀄컴은 이제 스마트폰이라는 익숙한 영역을 넘어 인공지능(AI)을 모든 기기 속에 심는 '온디바이스 AI' 플랫폼 기업으로의 거대한 전환을 선언하고 있다. 스냅드래곤 서밋은 그 야심 찬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새로운 축제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스냅드래곤 서밋 2025. 사진=최진홍 기자
스냅드래곤 서밋 2025. 사진=최진홍 기자

세상을 엮은 CDMA, 스냅드래곤 신화로 이어지다
퀄컴의 역사는 '연결' 그 자체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85년 창립 이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며 2G 이동통신 시대를 개척한 퀄컴은 당시 경쟁 기술이던 시분할다중접속(TDMA)과의 표준 전쟁에서 승리하며 단숨에 통신 기술 업계의 거인으로 자리매김했다. 3G와 4G LTE를 거쳐 현재의 5G에 이르기까지 통신 모뎀 시장에서 퀄컴이 유지하고 있는 압도적인 지배력은 바로 이 CDMA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는 퀄컴에게 '스냅드래곤'이라는 강력한 날개를 달아주었다. 퀄컴은 자사의 막강한 통신 모뎀 기술에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핵심 부품을 하나의 칩에 통합한 시스템 온 칩(SoC) 형태의 스냅드래곤을 선보이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이는 스마트폰 제조사들 사이에서 '스냅드래곤 탑재'가 곧 '고성능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의미하는 공식으로 통용되게 했고 안드로이드 진영의 확고한 표준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이 정체되고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퀄컴에게도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퀄컴은 '연결'이 필요한 모든 기기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단연 자동차다. 퀄컴은 '스냅드래곤 디지털 섀시'라는 통합 플랫폼을 통해 인포테인먼트부터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자율주행 차량용 클라우드에 이르기까지 미래 자동차의 핵심 기술을 아우르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현대자동차 등 세계 유수의 완성차 업체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바퀴 달린 스마트폰' 시대를 이끌고 있다.

PC 시장 역시 퀄컴이 정조준한 새로운 전쟁터다. 수십 년간 인텔과 AMD의 x86 아키텍처가 굳건히 지켜온 아성에 ARM 기반의 '스냅드래곤 X 엘리트' 칩으로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AI 기능이 대폭 강화된 '코파일럿+ PC' 생태계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하며 '항상 켜져 있고 항상 연결되는(Always-On, Always-Connected)' PC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저전력으로도 강력한 성능을 내는 스냅드래곤의 특장점은 노트북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메타의 '퀘스트' 시리즈에 핵심 칩을 공급하며 가상·증강현실(XR)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꾸준히 확장해 나가고 있다.

스냅드래곤 서밋 2025 현장. 사진=최진홍 기자
스냅드래곤 서밋 2025 현장. 사진=최진홍 기자

퀄컴의 미래 비전, 그 중심에 선 '온디바이스 AI'
퀄컴이 그려나갈 미래의 심장에는 '온디바이스 AI'가 자리하고 있다. 온디바이스 AI는 외부 클라우드 서버의 도움 없이 기기 자체적으로 AI 연산을 처리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인터넷 연결이 없어도 AI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해 반응 속도가 월등히 빠르고 민감한 개인정보가 기기 밖으로 전송되지 않아 보안성이 뛰어나며 사용자 개개인에 최적화된 맞춤형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을 지닌다.

한 업계 전문가는 "퀄컴은 통신 특허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 스냅드래곤이라는 거대한 성을 성공적으로 쌓아 올렸고 이제 그 성을 박차고 나와 AI라는 광활한 신대륙을 개척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의 10년은 퀄컴이 단순한 반도체 제조사를 넘어 모든 기기를 지능적으로 연결하는 AI 플랫폼 기업으로 완벽하게 자리매김하는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여정은 온전히 서밋과 함께 한 시간이다. 스냅드래곤 서밋 10주년이 지난 10년의 영광을 기념하는 자리인 동시에 '손안의 AI' 시대를 향한 퀄컴의 담대한 포부를 전 세계에 알리는 출사표와 같은 이유다.

실제로 퀄컴 스냅드래곤이 모든 것의 연결을 기반으로 다방면으로 뻗어 나가고 온디바이스 AI라는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 모든 순간의 중심에는 항상 '서밋'이 있었다. 서밋은 스냅드래곤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는 축제의 장이자 혁신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브랜드 전략이 대표적인 예다. 퀄컴은 모회사 '퀄컴'과 프리미엄 제품 브랜드 '스냅드래곤'을 분리하는 과감한 전략을 실행했다. 이는 스냅드래곤이 단순한 부품(Ingredient) 브랜드를 넘어 소비자가 직접 인지하고 원하는 하나의 완성된 '경험(Experience)'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다.

퀄컴은 '퀄컴 스냅드래곤 서밋'이었던 행사명을 '스냅드래곤 서밋'으로 변경하며 이러한 브랜드 가치의 분리와 확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서밋은 퀄컴의 기술력을 알리는 행사를 넘어 스냅드래곤이 제공하는 게이밍 AI 카메라 등 혁신적 경험의 비전을 알리는 독자적인 무대로 완벽히 자리매김했다.

돈 맥과이어 퀄컴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23일(현지시간) 스냅드래곤 서밋 2025에서 브랜드의 비즈니스 영향력을 재차 과시했다. 맥과이어 CMO는 “사상 처음으로 스냅드래곤이 칸타의 글로벌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며 “우리는 그냥 등장한 것이 아니라 38위로 진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순위가 수많은 다른 대형 브랜드들보다 높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칸타 측정 기준 약 650억 달러의 브랜드 가치에 해당한다. 꽤 놀라운 일”이라며 “이는 브랜드의 힘,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비즈니스 가치를 구축하고 문화를 형성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브랜드 가치는 실제 비즈니스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었다. 맥과이어 CMO는 “소매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직접 다가갔고 결과가 스스로를 말해준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그는 “스냅드래곤을 인지하는 노트북 소유자의 84%는 스냅드래곤이 우수한 프리미엄 성능을 제공한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나아가“하이엔드 스마트폰 사용자의 95%는 스냅드래곤 탑재 기기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 이는 우리의 프리미엄 성능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2000만 명 규모의 강력한 스냅드래곤 인사이더즈 커뮤니티는 연간 약 25억 달러의 소비력을 대표한다”며 브랜드의 실질적인 사업 영향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스냅드래곤이 18년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디즈니, 로레알 등 굴지의 브랜드를 제치고 글로벌 브랜드 가치 38위에 오른 사실도 조명됐다.

스냅드래곤 서밋 2025에서 열린 대담에서 파트너사 인터퍼블릭 그룹(IPG)의 재키 켈리 최고고객사업책임자(CCBO)는 브랜드의 성공 요인으로 명확한 철학과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을 꼽았다.

켈리 책임자는 스냅드래곤이 칸타 글로벌 브랜드 순위 38위에 오른 것에 대해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그 순위에 데뷔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이는 여러분 모두에게 엄청난 순간이자 그간의 노력을 보여주는 엄청난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이 순위 목록에 있는 다른 브랜드를 보면, 38위보다 훨씬 낮은 순위의 디즈니는 109년 된 브랜드이며 로레알, JP모건 체이스 같은 브랜드들도 모두 스냅드래곤의 뒤를 잇는다”고 설명하며 스냅드래곤의 성과가 갖는 의미를 부각했다.

돈 맥과이어 퀄컴 CMO. 사진=최진홍 기자
돈 맥과이어 퀄컴 CMO. 사진=최진홍 기자

하와이와의 10년 동행, 그리고 인사이더즈
스냅드래곤 서밋의 지난 10년 역사를 논할 때 매년 행사가 열리는 '하와이'를 빼놓을 수 없다. 첫 서밋은 뉴욕에서 열렸으나 이후 꾸준히 하와이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하와이는 퀄컴에게 단순한 행사 장소를 넘어 혁신의 여정을 함께 걸어온 파트너와 같은 존재다.

특히 2023년 하와이 마우이섬이 끔찍한 산불로 고통받았을 때 퀄컴의 연대는 더욱 빛났다. 당시 퀄컴은 행사장 곳곳에 '하와이, 마우이와의 연대' 메시지를 내걸고 지역 사회 회복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돈 맥과이어 CMO 역시 기조연설에서 "마우이와 퀄컴의 연대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강조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드러냈다. 행사에서는 하와이 전통 악기 연주와 전통 음식 만들기 체험 나비 날리기 등 기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상생의 가치를 실천하며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서밋의 시작은 하와이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이들의 미니 공연으로 시작됐다. 서밋과 함께한 하와이와의 연대다. 

올리 카헤아. 사진=최진홍 기자
올리 카헤아. 사진=최진홍 기자

하와이의 전통 환영 의식인 '올리 카헤아(Oli Kahea)'가 펼쳐졌다. '깨달음의 언덕'이라 불리는 가장 높은 봉우리부터 아래 바다(카이)에 이르기까지 진심의 목소리로 모든 이들을 환영한다는 뜻이다.

퀄컴에게 하와이는 단순한 행사 장소를 넘어 혁신의 여정을 함께한 파트너와 같다. 하와이에 모여든 전 세계의 퀄컴 출입기자들이 모바일을 넘어서는 AI 전략의 큰 그림을 함께 어울려 그렸기 때문이다. 

그는 “스냅드래곤의 18년 역사를 여러분과 공유하게 되어 기쁘다”며 “우리는 다양한 기기 카테고리에서 계속해서 비범한 경험을 제공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혁신은 여러분의 일상과 가장 아끼는 기기들에 힘을 실어주었고, 여러 제품군에 걸친 성능 리더십을 바탕으로 우리는 세대를 거듭하는 동급 최고의 프로세서를 중심으로 사용자들의 글로벌 커뮤니티를 구축했다”라고 강조했다.

돈 맥과이어 퀄컴 CMO. 사진=공동취재단
돈 맥과이어 퀄컴 CMO. 사진=공동취재단

그는 나아가 "첫 서밋은 10년 전 뉴욕에서 열렸다. 하루 종일 진행된 작고 소박한 모임이었다”라며 “할 수 있을까? 우리 제품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와줄까?’라고 고민했지만 ‘그래, 되겠다’고 결심했다”라며 초기의 불확실성과 성공적인 첫걸음을 회상했다.

맥과이어 CMO는 "지금 우리는 뉴욕에서 하와이로 무대를 옮겼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이정표"라며 “여러분 모두에게 스냅드래곤은 여러분의 슈퍼파워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퀄컴의 '사람 중심' 철학은 지역 사회를 넘어 전 세계 테크 팬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으로 이어진다. 강력한 브랜드 지지층을 구축하고 있는 '스냅드래곤 인사이더즈' 프로그램의 약진이 이를 증명한다. 스냅드래곤에 대한 열정을 가진 팬들을 위한 이 글로벌 커뮤니티는 퀄컴이 B2B 기업의 이미지를 넘어 최종 소비자와 교감하려는 전략적 변화를 상징한다.

스냅드래곤 서밋 2025 현장. 사진=최진홍 기자
스냅드래곤 서밋 2025 현장. 사진=최진홍 기자

인사이더즈로 선정된 팬들은 서밋 현장에 초청되어 신제품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고 개발자와 만나는 등 핵심 행사에 직접 참여한다. 이를 통해 이들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퀄컴의 기술 혁신을 자발적으로 알리는 '브랜드 앰버서더' 역할을 수행한다. 충성도 높은 팬덤의 존재는 치열한 시장에서 퀄컴이 가진 강력한 무형 자산이며 서밋은 이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