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2일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국가별 관세 기준이 적힌 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2일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국가별 관세 기준이 적힌 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폭탄 여파가 점차 현실에 드러나고 있다. 대미 관세 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이고, 대미 철강 수출량은 1년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 부품과 반도체 대상 품목 관세는 또다시 확대될 위기다.

한국은 상호관세 협상 카드로 조선업 협력 사업 ‘마스가 프로젝트’를 내세운 바 있다. 동시에 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전략산업의 현지 진출도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이마저도 미국 내 여러 규제와 비관세장벽으로 인해 진척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상·인상·인상…대미 수출 실적 급감

미 상무부는 최근 철강·알루미늄 관세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현지 업계로부터 철강이나 알루미늄을 사용해 만든 파생 제품 중 관세 부과 대상으로 추가할 품목에 대해 의견을 접수하는 절차다.

미국은 앞서 8월 18일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50% 관세 대상 품목을 기존 253개에서 407개 파생상품으로 확대한 바 있다. 당장 미국 내 수입 통관, 보세창고 반출 물량부터 관세를 적용받았다. 기존 관세 대상이 아니었던 변압기, 냉장·냉동고 등 가전제품, 건설기계와 자동차 부품 등이 새로운 대상 품목에 올랐다.

지난 3월 철강업계 대상 25% 품목관세를 시작으로, 연일 관세율과 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 상무부는 연 3회(1월, 5월, 9월) 정례적으로 관세 심사를 운영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심사를 통해 한 차례 관세 대상 품목이 확장되리라 우려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확대 조치는 미국 내 업계 요청에 따른 결정으로, 향후 미 상무부가 업계의 관세 요청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철강 알루미늄 함량이나 수입 증가 여부와 관계없이 요청을 수용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일련의 흐름은 자동차와 반도체 등 한국의 다른 주력 수출품목에도 적용되는 모양새다. 7월 1일부터 추가 심사 절차가 개시됐다. 상무부는 현지 업계에 자동차 부품도 관세 부과 대상에 추가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절차도 안내 중이다.

반도체와 반도체 파생제품, 제조장비 등도 철강과 같은 절차를 밟고 있다. 당초 8월 중 결정 예정이었으나, 발표가 아직까지 늦춰지는 추세다. 트럼프는 지난 16일 “반도체와 의약품은 자동차(25%)보다 높은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한국의 9월 중순까지 일평균 수출 실적은 지난해 동기 대비 대폭 줄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일평균 수출액은 24억3000만달러로 지난해 27억2000만달러보다 10.6% 줄었다 8월 월간 수출 역시 대미 수출 실적은 12% 감소했다.

올해 2분기 대미 관세 증가 속도도 주요국 중 가장 빠르다. 미 ITC(국제무역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2분기 대미수출 관세액은 총 33억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멕시코, 일본, 독일, 베트남에 이어 세계 6위 수준이다. 하지만 관세 증가율은 4614%(47.1배)로 주요 10개국 중 가장 큰 상승폭을 나타냈다. 1분기까지도 한미 FTA가 적용돼 관세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으나, 2분기 들어 보편관세 10%와 품목관세가 적용되며 증가폭이 커진 탓이다.

비협조적인 美, 韓 투자심리 위축시켜

미국이 일련의 품목관세 폭탄을 투하하며 제시하는 근거는 무역확장법 232조다. 국가 안보를 저해할 수 있는 품목의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법안으로, 트럼프 정권이 이를 무기 삼아 국제적 권력을 휘두른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문제는 한국이 미국과 협력을 약속한 분야에도 관세의 여파가 고스란히 미친다는 것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마스가 프로젝트를 환영하는 이유는 자국내 공급망이 완전히 붕괴됐기 때문이고, 그 대안으로 한국 조선사들의 현지 진출이 제시된 것”이라며 “문제는 철강과 각종 기계 등 유관 품목에 대한 관세가 시행된다면 미국 현지 유통 원자재 물가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내 업체에게 막대한 투자와 관세 부담까지 감내하라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경제계 차원에서 대응 필요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2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초청해 ‘대한상의 국제통상위원회’를 개최했다. 조선·방산·원전·반도체·항공·AI 등 한미 협력의 핵심 산업 전반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참석 기업들은 “조선, 원전 등 미국 내 공급망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전략 산업은 그 공백을 국내 공급망이 보완해야 한다”며 “해당 산업에 대한 관세 유예나 면제가 시급하다”고 건의했다. 품목별 관세까지 확대되면 제조원가 상승과 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시선이다.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동맹에 대한 미국의 리스크 경감 의지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조지아주 현대 LG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이민단속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2일 로이터통신·BBC방송과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구금된 노동자들이 받은 가혹한 처우에 당연히 분노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 비자는 신속발급이 가능한 ESTA나 B1 비자의 경우 현지 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문직 비자인 H-1B는 쿼터 제한과 긴 발급 절차로 제약이 큰 데다, 최근 트럼프 주도로 수수료를 10만달러(기존의 100배)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한상의에서 개최한 ‘관세 협상 이후 한·미 산업협력 윈-윈 전략 세미나’에서 “대규모 대미투자 확대 속에서 비자와 현장 컴플라이언스가 핵심 리스크로 부상했다”며 “수익구조, 비자 및 고용안정, 공급망 안정장치 등을 제도화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투자만 늘리고 실익은 제한되는 구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