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H-1B 비자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H-1B 비자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전문직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H-1B 비자의 신청 수수료를 현행 약 1000달러에서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대폭 인상할 방침이다.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외신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포고문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포고문에 서명하고 "우리는 훌륭한 노동자가 필요하다. 이 조치는 그런 결과를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 행정명령의 골자는 수수료 10만 달러를 내지 않으면 H-1B 비자를 통한 입국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달 21일 0시 1분부터 발효되며, 해당 외국인 인력의 고용하거나 유지하려면 12개월 단위로 10만 달러를 비자를 유지하는 대가로 내야 한다.

히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이날 서명행사에 참석해 "첫 신청 시 회사가 해당 인재를 원하는지, 그 사람이 정부에 연간 10만 달러를 지불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면서 "연간 10만 달러씩 총 6년까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H-1B 비자는 추첨을 통해 연간 8만5000건이 발급되며, 기본 3년 체류와 연장이 가능하다. 영주권 신청까지 이어질 수 있어 해외 고급 인재들의 미국 진출 경로로 자리잡아 왔다. 구글, 메타, 테슬라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매년 대규모로 채용해 온 제도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H-1B 프로그램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인도 국적 인력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기업에 고용되면서 미국 내 STEM 분야의 경력 축적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포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H-1B 비이민 비자 프로그램은 임시 근로자를 유치해 부가적이고 고숙련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마련됐으나 일부에서는 이를 악용해 미국 근로자를 보완하기보다 대체하고, 저임금, 저숙련 노동력으로 교체하는 데 이용해 왔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일부 고용주들은 H-1B 법령 및 규정을 악용, 인위적으로 임금을 억제해 왔다"면서 "이로 인해 미국 시민들에게 불리한 노동 시장이 조성된 동시에, 가장 높은 숙련도를 가진 임시 근로자 집단을 유치하고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는 특히 "핵심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에서 그 영향이 가장 컸다"고도 강조했다 .

◆"남용 방지 위해 수수료 100배 인상"

백악관 내부 자료에 따르면 H-1B 제도의 추첨 방식 때문에 인력 파견업체들이 대량 신청을 남발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현재 약 1000달러 수준인 신청비를 10만달러까지 올려 남용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부 장관에게 H-1B 프로그램의 통상임금 기준을 수정하는 규제 제정 절차에 착수하도록 지시할 방침이다.

이는 외국인 채용 시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임금 기준을 높여, 저임금 인력 수입 구조를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앞서 미국 이민국(USCIS) 조셉 에들로 국장은 지난 7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H-1B 비자의 발급 시스템을 개편해 심사를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反이민 정책·재정 확보 연계

블룸버그는 이번 조치가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 기조와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수수료 인상은 취업 허가, 망명 신청, 인도적 보호 신청 등 각종 이민 관련 수수료 인상과 함께 추진되고 있다.

특히 신규 구금시설 확보, 이민 단속 요원 확충, 국경 장벽 건설 확대 등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의 재원 마련 목적이 크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기 출범 이후 이민 규제 강화, 국경 관리 강화, 국내 일자리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H-1B 수수료 인상은 STEM 분야 글로벌 인재들의 미국 진출 문턱을 높이는 동시에, 내국인 일자리 보호와 정치적 지지층 결집을 노린 조치로 분석된다.

특히 이번 조처는 미국 정보기술(IT) 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줄 전망이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대형 기술기업들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같은 전문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H-1B 비자에 크게 의존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