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이 자사의 오토모티브 로드맵을 바탕으로 전 세계 모든 자동차 제조사(OEM)와 함께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시대의 ‘게임 체인저’가 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퀄컴은 18일 온라인 미디어 브리핑을 통해 자사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여정과 핵심 전략을 상세히 소개했다. 현장에서 라자트 사가르 퀄컴 제품 관리 부사장은 ‘스냅드래곤 라이드’로 명명된 자사의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및 자율주행 플랫폼이 단순한 칩셋을 넘어 ‘엔드투엔드(End-to-End)’ 시스템이자 ‘개방형(Open)’ 생태계임을 강조하는 한편, 미래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자신감도 과감하게 드러냈다. 

자동차 산업의 핵심적인 ‘시스템 아키텍트’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각오다. 소위 4개의 칼로 오토모티브의 모든 구성요소를 채운 후 OEM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모듈화를 추구, 안전과 성능을 넘어선 개방성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야망도 나왔다.

사가르 퀄컴 부사장. 사진=퀄컴
사가르 퀄컴 부사장. 사진=퀄컴

"뿌리 깊은 나무" 뚝심이 싹 틔운 자동차의 꿈
퀄컴은 오토모티브에 있어 개별 칩셋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자동차의 핵심 기능을 망라한 네 개의 플랫폼을 ‘스냅드래곤 디지털 섀시’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었다. 지난해 스냅드래곤 서밋 2024를 통해 '스냅드래곤 콕핏 엘리트'와 '스냅드래곤 라이드 엘리트' 플랫폼을 공개하며 마스터 피스를 맞췄다. 각각을 모듈식으로 상황에 맞게 판매하는 전략으로 큰 반향을 끌어내고 있다.

‘스냅드래곤 콕핏’은 인포테인먼트와 실내 경험을 총괄한다. 디지털 계기판부터 중앙 스크린 조수석 디스플레이까지 여러 화면을 단 하나의 칩으로 제어하며 풍부한 그래픽과 AI 기반 개인화 서비스를 구현한다. 

‘스냅드래곤 라이드’는 ADAS와 자율주행의 두뇌 역할을 담당한다. 차량에 장착된 카메라와 레이더 등 각종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 주변 환경을 정밀하게 인식하고 주행을 제어한다. 최근 BMW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동 개발한 자율주행 시스템을 선보이며 엔비디아와 모빌아이가 양분하던 시장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던졌다.

다음은 퀄컴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통신 기술 기반의 ‘스냅드래곤 오토 커넥티비티’다. 5G 와이파이 차량-사물 통신(V2X) 등을 통해 차량이 외부와 끊김 없이 연결되도록 지원하며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OTA)의 핵심 기반이 된다. 마지막으로 ‘스냅드래곤 카-투-클라우드’는 차량에서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연결해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고 차량 상태를 원격으로 관리하며 지속적인 기능 업데이트를 가능하게 한다.

퀄컴의 자동차 사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단기적인 유행을 좇아 뛰어든 신사업이 아닌, 오랜 시간 공들여온 장기적인 비전의 결실로 볼 수 있다. 특히 디지털 섀시는 퀄컴 오토모티브의 집합체다. 사가르 부사장은 “ADAS라든가 콕핏 그리고 연결성 그다음에 카투클라우드 시스템 그리고 텔레매틱스 등등이 이제 모두 디지털 섀시 안으로 들어가는 구성 요소가 된다”며 “고객들에게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제공을 할 수 있는 솔루션”이라고 설명했다.

사가르 부사장은 특히 스냅드래곤 라이드에 집중했다. 그는 “ADAS 부분에 있어 상당히 오래전부터 비즈니스를 시작했다"며 "오랫동안 오토모티브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행한 바 있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의 자율주행 기술로 직접 이어진 본격적인 여정은 비교적 최근이다. 스냅드래곤 라이드다. 그는 “2016년부터 ADAS의 오토모티브 R&D 부서 내 파일럿 테스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됐다”며 “2018년, 2019년 즈음 GM의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수주했으며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는 시스템 회사로서 계속해서 성장하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퀄컴이 단순히 칩을 판매하는 부품 공급사를 넘어, 자동차라는 복잡한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고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파트너로 진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했음을 시사한다.

온라인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퀄컴
온라인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퀄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다" 어라이버와 BMW
하드웨어에 절대 강점을 가진 퀄컴이 시스템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했던 마지막 퍼즐 조각은 바로 ‘소프트웨어’다. SDV 시대의 핵심이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있기에, 과감한 인수합병을 바탕으로 이 약점을 단숨에 보강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사가르 부사장은 “2022년에는 티어1(1차 협력사) 회사를 인수했고 그 다음에 소프트웨어를 전문으로 하는 어라이버를 또 인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웨덴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이었던 어라이버 인수는 퀄컴의 자동차 전략에 있어 일대 전기로 평가된다. 그는 “인수할 당시 어라이버는 1500만 대 정도 되는 자동차에 ADAS 스펙을 제공을 하고 있는 업체였다”면서 단순히 기술력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인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양산차에 탑재되어 검증을 마친 기술과 방대한 실제 주행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쪽에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퀄컴은 어라이버 인수를 통해 수십 년의 시간을 단축하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분야의 핵심 플레이어로 단숨에 뛰어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퀄컴이 데이터 확보 경쟁력에 있어 모빌아이와 같은 경쟁사들에 다소 밀린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어라이버 인수는 적절한 보완 전략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다음 목표는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정해졌다. 사가르 부사장은 “전문성을 점점 쌓아가면서부터 고객이 필요로 하는 최고의 ADAS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 목표가 됐다”면서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파트너로 ‘궁극의 드라이빙 머신’을 표방하는 BMW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2022년부터 동행을 시작했다. 어라이버 인수와 비슷한 시기다. 그는 “자율주행 레벨2 플러스 수준을 전제로 일상의 고속도로, 또 도심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시스템을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것이 협력의 핵심”이라며 “퀄컴과 BMW가 드라이빙 및 관련된 애플리케이션을 공동 개발한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양사의 핵심 전문가 약 1400명이 투입되어 기술과 비전을 하나로 합쳤다는 설명이다.

협력의 핵심은 지적재산권(IP) 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가르 부사장은 “지적재산권은 퀄컴과 BMW가 공동 소유한다”면서 “계약에 따라서 우리가 개발한 모든 솔루션 같은 것들을 독점적으로 전 세계에 GTM(Go-to-Market, 시장 출시)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우리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OEM들에게 아무런 제약 없이 독점적으로 우리가 공동 개발했던 모든 소프트웨어랑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산업의 전통적인 공급망 공식을 뒤엎는 혁신이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프리미엄 브랜드와 손잡고 기술의 완성도와 안전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뒤, 그 결과물을 하나의 ‘표준 교과서’처럼 만들어 BMW의 직접적인 경쟁사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자동차 제조사에 판매하겠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최근 BMW가 공개한 차세대 콘셉트카 ‘노이에 클라세’가 대표적이다. 첫 양산 모델인 신형 iX3에 퀄컴의 스냅드래곤 라이드 파일럿이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퀄컴이 개발한 '인지 스택'과 BMW와 공동 개발한 ‘주행 정책 엔진’이 탑재됐으며 독일, 미국, 스웨덴, 루마니아, 체코 공화국의 BMW AD 테스트 센터 전문가들이 총동원됐다.

그는 스냅드래곤 라이드 파일럿을 “엔드투엔드 스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완벽한 턴키 플랫폼”이라고 명확히 정의했다. 자동차를 시스템 아키텍트로 정의해 이를 바탕으로 하는 원스톱 패키지 솔루션을 다양한 시나리오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그는 “AI 기반 인프라를 통한 하이브리드 플래너를 탑재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상시 업데이트 및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는 퀄컴이 자랑하는 ‘데이터 플라이휠’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BMW ix3. 사진=BMW
BMW ix3. 사진=BMW

멈추지 않는 진화의 심장, '데이터 플라이휠'
‘데이터 플라이휠’ 혹은 ‘데이터 시뮬레이션 팩토리’는 퀄컴 자율주행 기술의 심장이다. 전 세계에 운행 중인 차량으로부터 실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해 자사의 자율주행 및 ADAS 기술을 지속적으로 학습시키고 개선하는 선순환 시스템이다.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퀄컴의 AI 모델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 자율주행 성능을 향상시키고, 개선된 소프트웨어는 다시 OTA를 통해 차량에 배포된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마치 무거운 바퀴(Flywheel)가 한번 돌기 시작하면, 관성에 의해 계속해서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기술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사가르 부사장은 “데이터 시뮬레이션 팩토리는 AI 데이터 플라이휠"이라며 "이를 통해 전 세계에 산재되어 있는 데이터들을 계속해서 수집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 세계 도로를 달리는 퀄컴 탑재 차량들이 수집한 데이터는 클라우드 기반의 강력한 도구를 통해 분석되고, 이는 다시 소프트웨어 스택을 개선하고 똑똑하게 만드는 데 사용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개선된 소프트웨어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 무선 업데이트(OTA)를 통해 다시 모든 차량에 적용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동차는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한다. 사가르 부사장은 “OEM의 경우 차량의 끊임없는 진화를 추구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뛰어넘는다. 철저히 제조사의 입장에서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값비싼 센서를 추가하는 대신 기존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로 최대한 활용, 제조사의 원가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주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스냅드래곤 오토모티브 카인포테인먼트. 사진=최진홍 기자
스냅드래곤 오토모티브 카인포테인먼트. 사진=최진홍 기자

경쟁의 판도를 바꾸는 세 가지 열쇠
오토모티브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다. 특히 스냅드래곤 라이드가 속한 시장의 경우 막강한 라이벌들이 상당히 많다.

먼저 엔비디아다. 자사의 핵심 역량인 GPU 기반 초고성능 컴퓨팅 파워를 앞세워 자율주행 시장의 ‘게임 체인저’를 자처한다. ‘중앙 집중형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여러 ECU(전자제어장치)에 분산된 기능을 ‘드라이브 토르’와 같은 강력한 슈퍼칩 하나로 통합해 차량 전체를 지휘하는 방식으로 질주하고 있다.

드라이브 토르는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계기판 등 모든 기능을 단일 칩에서 처리할 수 있는 2000TOPS(초당 2000조회 연산)급의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자동차 제조사의 개발 과정을 단순화하고 비용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차세대 운영체제(MB.OS)의 두뇌로 채택됐으며 볼보 재규어 랜드로버는 물론 중국의 샤오펑 지리 리 오토 등 다수의 전기차 스타트업이 드라이브 토르 채택을 공식화한 바 있다.

모빌아이는 ‘경험’과 ‘데이터’의 존재감이 강하다. 전 세계 수많은 양산차에 탑재된 ‘EyeQ’ 칩셋과 수십억 킬로미터에 달하는 실제 주행 데이터를 통해 축적한 정교한 비전 인식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ADAS 솔루션 ‘슈퍼비전’을 넘어 ‘핸즈프리’를 지나 ‘아이즈오프’를 지향하는 자율주행 솔루션 ‘쇼퍼’와 ‘드라이브’로 라인업을 확장 중이다. 폭스바겐 그룹 포드 등 기존 고객사들의 높은 충성도를 바탕으로 ADAS 시장의 압도적 점유율을 자율주행 시대로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맞서는 퀄컴은 세개의 검을 빼들었다. 실제로 사가르 부사장은 경쟁이 치열한 자율주행 솔루션 시장에서 퀄컴이 가진 명확한 차별점으로 ‘안전성’ ‘개방성’ ‘성능’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첫 번째 키워드는 타협이 불가능한 절대가치인 ‘안전’이다. 

그는 “BMW와 공동으로 개발한 세이프티 스택의 경우 출시하는 모든 국가들의 규제를 다 준수한다”면서 “유럽의 DCAS(Driver and Automation Control Assessment) 승인을 최초로 받은 스택이면서 NCAP(신차 안전도 평가), FMVSS(미국 연방 자동차 안전 표준) 규제도 모두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OEM 입장에서 가장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각국의 안전 규제 문제를 퀄컴이 이미 해결해 놓았다는 의미다.

두 번째 키워드는 기술 종속을 거부하는 퀄컴의 철학, ‘개방성’이다. 

그는 “퀄컴의 플랫폼이 OEM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역시 오픈 플랫폼이라는 점”이라며 “그렇기에 OEM들이 유연하게 맞춤화를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퀄컴의 오토모티브가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의 공급망을 교란하는 가운데, 거대 기술 기업에 의해 자동차 산업이 하청 기지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는 제조사들에게 ‘선택의 자유’와 ‘기술 주권’을 보장해주는 영악한 전략이다.

마지막 키워드는 극한의 상황을 지배하는 ‘성능’이다. 그는 “자율주행 솔루션의 경우 조명이 없는 환경에서도 잘 달리고, 레이턴시(지연 시간)도 낮은 편이기에 복잡한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훨씬 대응을 잘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자동차의 시스템 아키텍트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궁극적인 목표인 레벨4 자율주행에 대해서는 “개발자와 OEM들이 레벨4 차량을 개발을 할 수 있도록 고성능 솔루션을 많이 개발하고 있다”면서 “현지의 규제 등이 존재하기에 많은 시스템 개발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기술 개발은 물론 현실적인 규제 문제를 동시에 풀어나가겠다는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