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국가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급증하는 미래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못 박았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대대적인 확대를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전 정부에서 수립된 원전 중심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사실상 백지화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무게중심이 원전에서 재생에너지로 급격히 이동할 것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당장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가장 신속하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은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라며 “인프라와 전력망을 깔아 재생에너지 사업을 대대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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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신규 원전 건설의 비현실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데는 최소 15년이 걸리고, 지을 곳도 마땅치 않다”며 “수십 기가와트(GW)의 전력이 필요한데 이를 원전으로 감당하려면 30개 넘게 지어야 한다. 어디에 지을 것이냐”고 반문했다. 또한 차세대 원전으로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해서도 “아직 기술 개발이 안 됐다”고 선을 그었다.

올해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의 핵심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까지 대형 원전 2기와 SMR 1기를 새로 건설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35.2%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통령은 이 계획에 대해 “그대로 되지 않을 테니 통과된 것”이라며 사실상 이행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물론 이 대통령의 발언이 즉각적인 ‘탈원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동 기한이 지난 원전도 안전성이 담보된다면 연장해서 쓸 것이고 현재 짓고 있는 것도 잘 짓겠다”며 기존 원전의 활용 가능성은 열어뒀다. 그러나 정책의 우선순위가 신규 원전 건설에서 신속한 재생에너지 확대로 완전히 전환됐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정책 방향 전환은 김성환 환경부 장관의 발언에서도 예견된 바 있다. 김 장관은 지난 9일, 신규 원전 건설은 국민적 공론화를 거쳐 12차 전기본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실상 11차 전기본의 재검토를 시사했다. 에너지 정책 기능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되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 역시 이러한 정책 기조를 뒷받침한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원전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강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원전 건설에 최소 15년이 걸린다’는 전제부터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 최초 원전인 고리 1호기는 약 6년 만에 준공됐으며, 신고리 1·2호기는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공사가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새울 2호기조차 착공 후 약 12년 만에 완공됐다. ‘적기에 예산 내 시공(on time within budget)’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원전의 경쟁력이었다.

이기복 한국원자력학회장은 “국가 계획으로 세운 11차 전기본을 공론화를 핑계로 철회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15년 뒤에도 에너지 수요는 여전할 텐데, 미리 준비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결정이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하며 원자력 발전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럽 최고 법원이 최근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한 데 이어, 미국 역시 2050년까지 원전 용량을 현재의 4배 수준으로 늘리기로 하는 등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을 핵심 수단으로 재조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