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위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이 공식화된 가운데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예고된' 불협화음을 조율하는 것이 과제라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능이 환경부로 이관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예고되는 중이다. 특히 원전 업계는 원자력 정책이 여러 부처로 분산되면서 비효율성이 심화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산업계 역시 산업 경쟁력의 위축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난 7일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방안’에 따르면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실 산하 에너지 기능을 통합해 환경부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한다. 자원 산업과 원전 수출 기능은 산업부에 존치, 산업통상자원부의 명칭은 ‘산업통상부’로 변경한다.

정부 관계자는 “에너지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을 환경부가 맡고, 자원과 수출은 산업부가 담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서울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에서 환경부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서울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에서 환경부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대적 개편에 관할도 대폭 수정…공기업 “혼란”

에너지 공기업들의 소관 부처도 대폭 변경된다.

한국전력과 발전5사(남동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 한국수력원자력 등 20여 개 공기업이 환경부 소속으로 이관된다. 석유공사·가스공사·광물자원공사 등 자원 공기업은 산업부에 잔류할 예정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전 5사의 통폐합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업계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차기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이끌게 될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폐지한다는 공약을 현실로 만들려면 석탄화력발전이 주력인 5개 발전 공기업을 어떻게 구조조정할지 가급적 이른 시점에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한국전력 자회사들을 묶고 (규모를) 줄이고, 해상풍력 등 다른 재생에너지 사업을 맡을 수 있게 전환하는 등 ‘정의로운 전환’을 포함해 로드맵 마련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발전 5사는 현재 각 지역에 분산돼 있는 상태로, 김 장관의 발언에 따르면 규모를 축소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업장 분류와 고용 문제 등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발전사 내부에서도 통폐합의 방향성 등에 관한 구체적인 준비나 지시가 내려온 것이 없어 혼란스러운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새울 1·2호기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새울 1·2호기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원전 업계, ‘삼원화’ 우려에 반발 거세

원전 업계의 ‘삼원화’는 가장 큰 화두다.

기존 원자력 정책과 관련해 연구개발(R&D) 부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건설·운영·수출 부문은 산업부가 관리해 왔다. 그러나 개편 이후엔 산업부가 맡던 건설·운영 부문을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맡게 되며, 특히 정부의 원전 사업을 맡고 있는 한수원은 총 3개의 부처에 소속된다.

잡음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원자력학회는 “이미 기존 구조에서조차 정책적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개편안”이라고 꼬집었다.

학회는 성명문을 통해 “부처 간 칸막이를 높여 정책 수립을 가로막고, 정책 실패 시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적 폐해를 낳을 것”이라며 “분절된 정책과 조직은 국제 에너지 협상에서도 국가 전체 협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인공지능(AI) 혁명, 데이터센터 확충, 전기차 보급 확대 등으로 국가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만큼 대규모 기저 전력 확보는 국가 최우선 과제”라며 “원전 건설·운영을 환경 규제 중심의 부처에 맡기는 것은 안정적 공급보다 규제를 앞세워 필연적으로 원자력 산업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수원 노조도 강경 모드다. 에너지 정책의 환경부 이관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창호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개편안이 통과하게 된다면 에너지 산업이 붕괴하고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라며 “원자력이 각 부처로 쪼개져 지휘·감독을 받게 된 상황인데 수출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라고 규탄했다.

이 같은 비판이 계속되자 김성환 장관은 “저를 탈원전주의자로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며 “원전을 기저 전원으로 하면서 재생에너지를 빨리 늘리고 석탄·석유·액화천연가스(LNG)를 빨리 전력원에서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출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출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산업계와 타협점 잘 찾아야”

산업계 역시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다.

그간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두고 환경부와 산업부의 의견 마찰은 계속된 바 있다.

김정관 산업부장관은 지난 8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직 개편 논의 과정에서 가뜩이나 어려운 산업 경쟁력이 더 악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걸 인식해 반대 의견을 제시해 왔다”며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국정기획위원회는 산업부의 에너지정책실과 환경부 기후정책실을 합쳐 기후에너지부로 신설하거나,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을 환경부로 넘겨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재편하는 방안을 놓고 끝까지 고심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자 시절부터 김 장관은 “에너지와 산업은 밀접히 연결된 ‘불가분의 관계’”라며 사실상 반대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해 왔다.

김 장관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 이후의 산업부 역할과 관련해 “에너지 부문에서 아예 손을 떼는 건 아니다”며 “산업계의 우려가 기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업계에서는 대규모 개편이 이뤄지는 만큼 양 축을 이루고 있는 ‘산업’과 ‘환경’ 측면의 의견을 골고루 수용할 수 있도록 ‘타협점’을 찾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양립하기 어려운 두개의 키워드가 조화를 이루며 융합하려면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탄소중립 관점에선 환경부와 에너지 정책을 통합하는 것은 맞는 방향이지만 에너지와 밀접하게 엮인 산업, 그리고 경제 성장 부분에서도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신설되는 부처의 핵심 아젠다는 탈탄소와 산업·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