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롯데와의 AI 동맹이라는 '답'을 찾은 과정은, 한마디로 말해 과거의 성공과 실패에서 얻은 값비싼 학습의 결과물이다. 

특히 2021년 대한민국 유통업계를 뒤흔들었던 신세계그룹과의 '혈맹'은 네이버의 협력 전략이 어떻게 진화하고 성숙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다. 당시의 실패 경험은 현재 네이버의 '개방형 연합군' 전략을 더욱 정교하고 날카롭게 다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성숙 당시 네이버 대표가 신세계와 협업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한성숙 당시 네이버 대표가 신세계와 협업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신세계와의 만남
네이버와 신세계그룹은 2021년 약 25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지분 맞교환을 단행하며 온·오프라인을 통합하는 거대 유통 연합의 출범을 알렸다. 

시장은 온라인 트래픽의 제왕 네이버와 오프라인 유통의 상징 신세계의 만남을 '쿠팡 대항마'의 탄생이라 칭하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기대했다. 그리고 네이버는 신세계백화점의 명품·패션 상품군과 이마트의 막강한 신선식품 소싱 능력, 그리고 전국적인 오프라인 물류 거점을 통해 자사 커머스의 질적 도약을 꿈꿨다. 신세계 역시 네이버의 압도적인 플랫폼 파워와 기술력을 활용해 더디기만 하던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자 했다.

문제는 시너지의 파괴력이다. 막상 '세기의 결합'이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초라했기 때문이다. '혈맹'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무색하게 양사의 협력은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마트의 장보기 상품이 네이버에 일부 연동되고 라이브 커머스 등 단편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됐지만, 양사의 플랫폼과 데이터, 물류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심층적인 통합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동상이몽(同床異夢)'에 있었다. 양사는 한 배를 탔지만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세계그룹의 최우선 과제는 네이버와의 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이 아닌, 자사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인 'SSG닷컴'을 독자적으로 키워내는 것이었다. 네이버와의 협력을 SSG닷컴으로 트래픽을 유입시키는 보조 수단 정도로 여겼을 뿐 네이버 생태계에 깊숙이 편입되어 종속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이는 네이버의 개방형 생태계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또한, 네이버의 수평적이고 빠른 기술 기업 문화와 신세계의 전통적인 유통 대기업 문화 사이의 간극도 시너지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했다. 결국 2500억원의 지분 교환은 양사의 협력 의지를 과시하는 상징적인 제스처에 그쳤을 뿐, 실질적인 화학적 결합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결국 신세계와의 경험은 네이버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거대하고 포괄적인 '전략적 동맹'이라는 구호만으로는 결코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 진정한 파트너십은 서로의 가장 절실한 필요(Needs)를 정확히 채워주는 '실무 중심의 구체적인 협력'이어야 한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사진=갈무리
사진=갈무리

실무를 중심으로 만든 개방형 생태계
네이버의 협력 전략은 180도 달라졌다. 말 그대로 실무를 두고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연결의 선'을 꿰어내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신선식품 새벽배송의 선구자 컬리와 맺은 '핀셋 동맹'이다. 판은 적절히 만들어졌다. 네이버는 쿠팡의 '로켓프레시'에 대항하기 위해 프리미엄 신선식품과 새벽배송 역량이 절실했고,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장 컬리는 네이버의 막대한 이용자 기반이 매력적이었다. 양사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네이버는 신세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거창한 지분 교환이나 포괄적 협력 선언 대신 즉각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부터 시작했다. 

자사의 새로운 AI 기반 쇼핑앱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에 컬리의 상품과 서비스를 그대로 이식한 '컬리N마트'를 오픈한 것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상품 목록을 연동하는 것을 넘어 네이버 플랫폼 안에서 컬리 특유의 프리미엄 장보기 경험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방식으로, 기술적·운영적 통합 수준이 매우 높았다. 나아가 컬리의 물류 전문 자회사인 '컬리넥스트마일'을 '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NFA)'에 합류시켜, 네이버의 수많은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들까지 컬리의 검증된 콜드체인 새벽배송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모든 것을 다 잘해보자'는 막연한 목표 대신, '신선식품'과 '새벽배송'이라는 네이버의 명확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컬리의 역량을 핀셋처럼 정확하게 뽑아 활용한 전략이다. 

그 진화의 연장선상에서 롯데와의 AI 동맹은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번 협력 역시 과거 신세계와의 방식이 아닌, 컬리와의 성공 모델을 더욱 발전시킨 형태기 때문이다. 

'유통 전반의 AI 전환(AX)'이라는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네이버는 AI 기술과 플랫폼 운영 노하우를, 롯데는 오프라인 인프라와 상품 데이터를 제공하는 명확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결국 네이버의 파트너십 전략은 신세계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며 한층 더 영리하고 강력해졌다. 뜬구름 잡는 선언 대신 서로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실용적 연합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롯데와의 AI 동맹은 바로 그 진화의 정점에 있으며, 이는 네이버가 꿈꾸는 '개방형 연합군'이 쿠팡의 '폐쇄형 제국'을 넘어설 수 있다는 고도화된 전략과 자신감의 표현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