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각각 상징하는 두 거인이 손을 잡았다. 쿠팡의 독주와 중국계 이커머스(C커머스)의 거센 공습에 맞서기 위해 네이버와 롯데 유통군이 인공지능(AI)을 고리로 한 전격적인 동맹을 선언했다. 네이버의 최첨단 AI 기술과 롯데의 방대한 오프라인 유통망을 결합해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새로운 쇼핑 경험을 창출하고 시장의 판도를 다시 쓰겠다는 야심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와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은 지난 5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1784 사옥에서 만나 온오프라인 유통의 AI 전환(AX) 혁신을 위한 공동 협력 방안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 단순한 업무 협약을 넘어 양사의 생존과 미래 성장이 걸린 이번 만남은 국내 유통 시장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중대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사진=네이버
사진=네이버

양사의 협력은 구체적이고 광범위하다. 핵심은 네이버의 AI 클라우드 등 기술력을 롯데마트 하이마트 등 롯데의 오프라인 매장 운영 프로세스 전반에 이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쇼핑 MD(상품기획) 운영 경영지원 등 4개 부문에 특화된 '유통 AI 에이전트'를 단계적으로 개발하고 매장과 물류센터 현장에 순차 적용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AI가 매장 내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자동으로 발주를 넣고 고객의 쇼핑 동선을 분석해 최적의 상품 진열을 제안하는 식이다. 이는 오프라인 유통의 고질적인 비효율성을 AI 기술로 해결하려는 시도다.

디지털 마케팅 협력도 강화된다. 네이버클라우드의 AI 마케팅 솔루션 'NCLUE'를 롯데의 오프라인 매장 디스플레이 광고와 결합해 고객 분석과 광고 타겟팅의 정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인다. 온라인에서의 고객 검색 기록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맞춤형 광고를 노출하는 등 온오프라인 데이터가 결합된 새로운 마케팅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커머스와 결제 부문의 협력은 당장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예고한다. 롯데마트·슈퍼에서 네이버페이로 결제 시 10%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공동 프로모션을 연말까지 진행해 양사 고객의 교차 사용을 유도한다. 나아가 세븐일레븐 등 롯데의 촘촘한 오프라인망을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의 '지금배달' 서비스와 연계해 퀵커머스 경쟁력을 강화하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들을 위한 팝업스토어를 롯데 매장에 여는 등 시너지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이번 협력의 배경에는 양사의 절박함이 깔려 있다. 롯데 유통군은 막강한 오프라인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전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쿠팡에 주도권을 내줬다. 네이버는 국내 최대 온라인 플랫폼이지만 자체적인 물류 및 배송 인프라의 부재로 쿠팡의 '로켓배송'에 맞서는 데 한계를 보여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C커머스가 초저가 공세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오자 더 이상 각개전투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양사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롯데는 네이버의 AI와 플랫폼 경쟁력을 수혈해 '디지털 혁신'을 단숨에 이뤄내고 네이버는 롯데의 전국 매장과 물류센터를 '도심형 물류거점(MFC)'으로 활용해 배송 경쟁력을 확보하는 '윈윈' 전략을 선택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팀네이버의 첨단 기술 역량과 롯데 유통군의 오프라인 인프라를 결합해 새로운 AI 쇼핑 혁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AX 생태계 성장을 이끌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은 "롯데 유통군이 지닌 국내 최대 오프라인 인프라와 네이버의 디지털 AI 혁신 역량을 결합해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길 기대한다"며 "롯데 유통군이 '고객의 첫 번째 쇼핑 목적지'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유통 3.0 시대에 각자의 영역에서 왕좌를 지켜온 두 거인의 동맹이 어떤 파괴력을 보여줄지 국내 유통업계의 모든 시선이 이들의 다음 행보에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