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리던 자체 개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가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유출된 차세대 엑시노스 2600의 성능 테스트 결과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갤럭시S25에 전량 탑재됐던 스냅드래곤의 퀄컴과 '비벼볼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갤럭시 S26 시리즈의 두뇌를 차지하기 위한 양사의 치열한 경쟁이 다시 한번 불붙을 전망이다.
엑시노스의 부활은 단순히 삼성전자 내부의 부품 수급 문제를 넘어 스마트폰 원가 경쟁력 확보와 시스템 반도체 사업 전반의 위상 회복이라는 중차대한 의미가 있다. 물론 퀄컴 역시 조만간 차세대 스냅드래곤 칩셋 발표를 앞두고 있어 엑시노스 2600의 성능적 우위를 단언할 수 없지만, 길었던 부진의 터널을 지나 다시금 경쟁의 무대로 돌아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롤러코스터 엑시노스
엑시노스의 역사는 2010년 '허밍버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플과의 협력으로 아이폰 4의 심장인 A4 칩을 설계했을 만큼 당시 삼성전자의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며, 여세를 몰아 2011년 '똑똑하고 푸르다'는 의미를 담은 엑시노스 브랜드를 공식 출범해 고성능·저전력 AP 시장 제패를 향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사가의 정점은 2015년 독자 CPU 코어 '몽구스(Mongoose)' 개발 프로젝트와 함께 찾아왔다. 퀄컴의 독주를 막고 기술 독립을 이루기 위한 과감한 승부수다. ARM의 설계도를 그대로 쓰는 대신, 직접 수정할 수 있는 고도의 아키텍처 라이선스까지 확보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야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몽구스' 코어는 시간이 갈수록 ARM의 표준 코어 대비 전력 효율과 성능 면에서 뒤처지기 시작했고 결국 2019년 삼성은 프로젝트를 공식 중단하며 백기를 들었다. 막대한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며 엑시노스는 기나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2022년 출시한 엑시노스 2200은 심각한 발열과 성능 저하 문제로 소비자들의 혹평을 받았다. 여기에 고의적인 성능 저하를 유발한 '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GOS)' 사태까지 터지며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2023년, 갤럭시 S23 시리즈 전 모델에 퀄컴의 스냅드래곤 칩을 탑재하는 결단을 내렸다. 경쟁자이자 동맹인 퀄컴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 뼈아픈 순간이었다.
다만 10코어 CPU 구조와 개선된 4나노 공정, PC 그래픽의 강자 AMD와 손잡고 개발한 '엑스클립스(Xclipse)' GPU를 통한 레이 트레이싱 매력, 강력한 AI 기능, 차세대 3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의 엑시노스 2500 등을 바탕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갤럭시S25에 엑시노스 2500이 담기지는 못했지만 갤럭시Z플립7에 전량 탑재되며 판을 흔들고 있다.
'환골탈태'
3일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스마트폰 성능 측정 사이트 '긱벤치'에 엑시노스 2600으로 추정되는 AP 테스트 결과가 게시, 싱글코어 3,309점 및 멀티코어 11,256점을 기록했다. 불과 수개월 전 같은 테스트에서 기록했던 싱글코어 평균 2,575점, 멀티코어 평균 8,761점에서 크게 향상된 수치로, 단기간에 삼성전자가 성능 개선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점수가 경쟁자인 퀄컴의 차세대 칩셋 '스냅드래곤 8 엘리트 2세대(가칭)'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갤럭시 S26 엣지 모델에 탑재될 것으로 보이는 해당 칩셋은 동일 테스트에서 싱글코어 3,393점, 멀티코어 11,515점을 기록해 두 칩셋 간의 격차가 오차 범위 수준으로 좁혀졌다. 과거 성능과 발열 문제로 '엑시노스는 스냅드래곤의 하위 호환'이라는 오명을 썼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엑시노스의 부활을 위한 포석을 꾸준히 깔아왔다. 올해 하반기 출시한 폴더블폰 '갤럭시 Z 플립 7'에 엑시노스 2500을 전량 탑재한 것이 대표적이다. 플래그십 폴더블폰 라인업에 엑시노스가 적용된 의미있는 사례며 이달 공개될 준프리미엄 모델 '갤럭시 S25 FE'에도 엑시노스 2400을 탑재하는 등 엑시노스 채택 범위를 부쩍 확대하며 생태계 확장에 나서고 있다.
한편 엑시노스 2600의 눈부신 성능 향상 뒤에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최첨단 미세공정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엑시노스 2600은 업계 최초로 2나노미터(nm)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이 적용되는 플래그십 AP다. GAA는 기존 핀펫(FinFET) 구조보다 전류 흐름을 더욱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전력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는다.
삼성 파운드리의 2나노 공정 기술력은 최근 테슬라의 차세대 인공지능(AI) 칩 'AI6'를 수주하며 시장의 신뢰를 얻은 바 있다. 22조 원 규모의 대형 계약을 통해 기술 안정성과 양산 능력을 입증받은 만큼, 자사의 핵심 제품인 엑시노스 2600에도 동일한 공정을 적용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실적발표회에서 "엑시노스 2600은 전작 대비 신경망처리장치(NPU) 성능을 큰 폭으로 향상시켜,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적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엑시노스의 성공적인 복귀는 삼성전자 내부적으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엑시노스는 시스템LSI 사업부가 설계하고 파운드리 사업부가 생산하는,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역량이 총결집된 제품이다. 당장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경험(MX) 부문은 퀄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구매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모바일 AP는 스마트폰 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품 중 하나이기에 엑시노스를 성공적으로 병행 채택할 경우, MX 사업부는 상당한 원가 절감을 통해 영업이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
DS 부문에 엑시노스의 부활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대규모 적자를 이어오던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 입장에서 안정적인 대규모 공급처를 확보하며 수익성과 가동률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파운드리 1위 TSMC를 추격해야 하는 파운드리 사업부 입장에서 자사의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자체 생산 칩을 탑재한다는 상징성과 실제 양산 경험은 고객 유치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증권가에서도 엑시노스의 부활이 삼성전자 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3분기 DS 부문 영업이익은 4조 2천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737% 증가할 것"이라 전망하며 "비메모리 부문에서 엑시노스 2500과 이미지센서 판매 증대 효과로 인해 영업적자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넘어야 할 산은 여전…'성능' '안정성'이 관건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벤치마크 결과만으로 엑시노스가 퀄컴을 완전히 압도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수는 퀄컴의 차세대 칩셋이다. 퀄컴은 오는 10월 '스냅드래곤 서밋'을 열고 새로운 AP를 공개할 예정이며, 일각에서는 이번에 유출된 스냅드래곤 8 엘리트 2세대의 테스트는 일부 성능이 제한된 조건이라 비교 자체가 큰 의미는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레드매직 11 Pro에 탑재된 스냅드래곤 프라임 코어가 4.74GHz보다 낮은 클럭으로 실행된 것이 확인된다. 스냅드래곤 엘리트 5세대가 공개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가운데 엑시노스의 기술 장악력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많다.
심지어 벤치마크 점수가 스마트폰의 실제 사용자 경험(UX)을 모두 대변하지는 않는다. 순간적인 최대 성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전력 대비 성능(전성비)과 발열 제어, 그리고 성능 지속력이기 때문이다.
과거 엑시노스는 고사양 게임 등 높은 부하가 걸리는 작업을 장시간 실행할 때 발열로 인해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스로틀링' 문제로 비판받은 바 있다. 2나노 신공정을 통해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를 얼마나 개선했는지가 엑시노스 2600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여기에 과거의 발목을 잡았던 수율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MX 사업부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물량을 적기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파운드리 공정의 수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갤럭시 S26에 엑시노스 탑재 여부와 비중이 결정되기까지 남은 2~3개월 동안 DS와 MX 부문이 긴밀히 협력해 성능을 최적화하고 안정성을 검증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시장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높은 벤치마크 점수를 넘어, 실제 사용 환경에서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