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의료정책연구원이 주최한 강연에서 서울고등검찰청 안성수 검사가 한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과연 사회에 유익한가.” 이 질문은 단순히 법조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 실제로 마주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습니다.
의료를 둘러싼 법 규정은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많습니다. 법에서 요구하는 ‘최선의 처치’라는 표현만 봐도 그렇습니다. 환자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선택지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뒤늦게 결과만 보고 ‘최선이 아니었다’며 책임을 묻는다면 어느 의사가 안심하고 적극적으로 진료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불확실성은 결국 방어적인 진료로 이어지고, 환자가 잃는 것이 더 많아집니다. 최선의 결과를 내려는 진료를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생기지 않을 진료를 하는 데 의료진의 신경이 집중됩니다.
형벌 조항의 해석이 일관되지 않은 점도 큰 문제입니다. 같은 상황인데도 판사나 검사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의료인에게 큰 불안을 줍니다. 법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현재 제도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괜히 문제 될 만한 건 하지 말자”는 말이 자주 오가고, 이는 결국 환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안고 있습니다. 아무리 신중하게 판단해도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과실로 단정한다면, 의료는 위축되고 새로운 시도는 사라지게 됩니다. 전문가의 불완전한 선택까지 모두 형사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는 결국 환자에게 더 큰 손해를 안기게 됩니다.
안성수 검사는 “처벌 강화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과도한 처벌은 오히려 사건을 숨기게 만들고, 개선의 기회를 늦춥니다. 의료사고를 경험한 의료인이 자율적으로 보고하고 함께 배우는 분위기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구조는 실수를 드러내기보다 감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드러내야 고칠 수 있는데, 여전히 반대 방향으로 제도가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처벌보다 학습과 개선을 우선하는 제도입니다. 독립적인 환자안전 조사 기구를 마련하고, 의료인이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합니다. 의료는 완벽할 수 없지만, 그 불완전함을 솔직히 드러내고 개선의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면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더 안전한 환경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법은 결과가 아니라 행위를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합리적인 판단을 존중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불완전성을 곧바로 죄로 단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형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의료 현장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불행합니다. 그러나 실수를 학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회라면 안전은 높아지고 신뢰는 단단해질 것입니다. 햇살이 비치는 날은 기다려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목소리를 내고 제도를 바꿀 때 비로소 찾아올 것입니다.

※ 김진오 뉴헤어모발성형 외과 원장은 진료와 연구를 병행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매일 만나며, 국내외 학술지에 연구 논문을 꾸준히 발표한다. 진료실 밖에서는 35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 ‘뉴헤어 프로젝트’, 블로그 ‘대머리블로그’, 저서 ‘참을 수 없는 모발의 가벼움’ · ‘모발학-Hairology’ 등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현재 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 및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학술이사로 활동 중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처방전 없는 이야기’에서는 진료실 안팎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의학·의료 정책·사람에 관한 생각을 담백하게 풀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