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테크니온 공과대학교(Technion – 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가 오는 24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CIPA 2025 워크숍을 총괄하는 가운데 국내외 시민단체 및 인도주의 과학연구 그룹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당장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 등 시민단체는 물론 'KAIST 연구자 모임'까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전범 협력기관'인 테크니온을 초대해 집단학살 국가를 정상화하는 수순을 밟지 말아야 한다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공동 민원을 넣자는 제안까지 한 상태다.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도대체 테크니온은 무엇이며 그들에 반대하는 이들은 무엇을 목격하고 있는가. 여기에는 기술 발전에 따른 오래된 인류의 고민과 더불어 빠져나올 수 없는 역사의 질곡이 고차 방정식으로 얽혀있다.

혁신의 불꽃
테크니온은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건국되기(1948년) 전인 1912년에 설립, 1924년 문을 열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같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설립을 주도했으며 자원이 부족한 척박한 땅에서 미래 국가의 생존과 번영은 오직 기술 자립에 달려 있다는 일념으로 탄생했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인 시오니스트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의 유일한 천연자원인 '국민의 두뇌'를 개발하고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설계된 곳이다.
60개의 연구센터와 12개의 대학 부속 병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글로벌대학순위에서 세계 317위, 아시아 대학 중 57위, 이스라엘 대학 가운데 4위에 올랐다. 특히 이공계열이 강하며 2025년 타임스 고등교육(THE) 세계 대학 순위에서는 컴퓨터 과학 분야 101-125위권에 올라 이스라엘 내 1위를 차지했다.
이스라엘과 중동에서 최상위권 대학이라는 뜻이다. 2004년과 2011년에 걸쳐 3명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엔비디아 임직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테크니온은 이스라엘 경제, 특히 '실리콘 와디(Silicon Wadi)'로 불리는 하이테크 클러스터의 핵심 동력이다. 이스라엘 기술 산업 창업자 및 경영자의 70% 이상이 테크니온 출신이며, 이스라엘 100대 기업 CEO의 대다수가 졸업생이다.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의 80%를 테크니온 졸업생이 이끌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테크니온 졸업생들이 하이기술 산업에서 창출하는 연간 생산액은 최소 210억 달러로 추산된다.
테크니온은 모험과 혁신의 기술 산업을 이끄는 리더로 활동하며 소프트웨적 측면의 진화도 이끌고 있다. '후츠파(Chutzpah)'로 대표되는 권위에 도전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문화가 대표적이다. 또 노벨상 수상자인 단 셰흐트만 교수가 30년 넘게 기술 기업가 정신에 대한 강좌를 운영하고 있으며 '테크니온 드라이브 액셀러레이터(Technion DRIVE Accelerator)'와 같은 인큐베이터 및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도 잘 구비되어 있다.

죽음의 천사
테크니온은 이스라엘 기술 영역을 이끄는 핵심 두뇌이자 글로벌 기술 시장에도 화두를 던지는 인사이트 플랫폼이다. 꺼지지 않는 혁신의 불꽃이다. 그러나 그 혁신의 불꽃 아래에는 끔찍한 죽음의 천사가 춤을 추고 있다. 잔인한 미소와 함께 피의 제전을 찬미하고 있다. 기술 혁신이라는 거대한 제단 위로 팔레스타인의 피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테크니온의 기술 발전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극의 한중간에 박혀 있다. 라벤더 AI 시스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라벤더 AI는 식별 프로그램이다. AI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의 군사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모든 인물을 식별하고 잠재적인 폭격 대상으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엘리트 정보 부대인 '8200 부대'가 개발했으며 여기에 테크니온 등도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라벤더 AI는 윤리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IDF가 인간 표적의 범위를 계급이나 군사적 중요성과 무관하게 하마스 군사 조직원 전체로 확대함에 따라 비인도적인 살상 프로토콜 시스템이 구축됐다는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국제인도법의 핵심 원칙들이 체계적으로 무시되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당장 전쟁 초기 IDF는 라벤더 AI가 식별한 하급 무장 조직원 1명을 제거하기 위해 최대 15명에서 20명의 민간인 살해를 허용하는 전례 없는 방침을 세워 국제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분석에 따르면 라벤더 AI는 '긍정적 비표지 학습(Positive Unlabeled Learning, PU learning)'이라는 준지도 학습(semi-supervised machine learning) 기법을 사용해 인간 표적을 설정하고 있으며 90%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는 더욱 서늘한 공포일 뿐이다. 동시에 10%의 오류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건물을 표적으로 삼는 또 다른 AI 시스템인 '가스펠(The Gospel)'과 함께 이스라엘 최악의 비윤리적 AI 시스템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같은 주요 인권 단체들은 라벤다 AI를 두고 "수천 명의 가자 지구 민간인 사망을 야기한 도구"라 비판하기도 했다.

"무덤 위에서 연구하지 말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잔인한 흉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터전이 무너지고 피와 살점이 튄다. 아이들은 울부짖고 있으며 인류는 극한의 지옥으로 스스로를 밀어넣기에 바쁘다. 다만 그 공포스러운 미장셴의 책임을 테크니온에게만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진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믿음과, 이스라엘이라는 특수성 짙은 국가의 무게를 마냥 가볍에 여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이스트 연구자 모임은 묻는다. 이들은 20일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과학기술이 정말 가치중립적일까?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직접 무기가 되지 않는다고 책임이 없을까?"라고. 그리고 스스로 답했다. "무덤 위에서 연구하지 말라. 학문은 생명을 살려야지, 살상을 정교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고. 기술의 발전과 가치중립성, 그리고 윤리적 잣대에 대한 고통스럽고 잔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과 답이다.
이들은 나아가 "전쟁과 학살에 연루된 기관에 우리가 무대를 내어줘도 괜찮은가? 테크니온과 같은 대학이 학술 교류의 장에 서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폭력과 학살을 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우리 학문이 누군가의 무덤이 되게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아직 우리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지금도 사람은 죽고 있다. 기술 발전이 인류 진화의 명백한 퍼즐이라는 순수한 믿음 아래에서. 우리의 그 끔찍한 게으름의 긴 그림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