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뒤엎어진다. 한때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표 정책으로 여겨졌던 전기차 세액공제(30D)가 사라진다. 신차 7500달러(약 1037만원), 중고차 4000달러(약 553만원)을 지원해 주던 보조금 정책이 끝나며 캐즘을 벗어나는 듯 했던 전기차 시장에 다시 혼란이 올 것으로 보인다.

1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바이든 행정부 시절 IRA를 통해 오는 2032년까지 제공하기로 했던 신차·중고 전기차 세액공제를 오는 9월 30일까지만 제공할 예정이다.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 입법 과제를 담은 대규모 감세법(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의 청정에너지 인센티브 단계적 폐지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자동차 업계는 세액공제 폐지 시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최대 37%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폭스바겐 ID.5. 사진=폭스바겐코리아
폭스바겐 ID.5. 사진=폭스바겐코리아

美 전기차 구매 보조금 9월까지만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콕스 오토모티브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7월 미국에서 판매된 신규 등록 전기차는 13만대를 넘겼다. 지난해보다 20% 증가했으며 6월보다 26.4% 증가한 수치다. 보조금 폐지에 전기차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급하게 차를 산 탓이다.

지난해 12월(13만6000대)에 이어 월간 기준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판매량으로 전기차 판매 비중은 전체 승용차의 9.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7월 신규 전기차의 평균 가격은 5만5689달러로 6월 평균 가격 5만6915달러보다 2.2% 떨어졌다. 콕스 오토모티브는 자동차 제조업체와 딜러들이 정부 지원금 감소에 앞서 재고 정리에 나서면서 7월 전기차 구매 인센티브가 많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포드 마하-E. 사진=포드
포드 마하-E. 사진=포드

치솟던 전기차 판매량에도 급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다. 콕스 오토모티브는 "2025년 상반기 중고차를 포함한 전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한 60만7089대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도 "3분기는 기록적인 판매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지만, 전기차 시장이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면서 4분기에는 급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 통계상으로도 2분기 등록된 신규 전기차는 총 31만839대로 전년 동기 33만1853대보다 감소했다.

오는 9월까지가 보조금 지급의 데드라인인 만큼 전기차 구매를 원하는 사람은 3분기 안에 차를 구매할 것이고 그 이후에는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는 게 콕스 오토모티브의 예상이다.

포드 F-150 라이트닝. 사진=포드
포드 F-150 라이트닝. 사진=포드

'No Mercy' 현대차그룹, 4분기 매출 더 고달파지나

당장 현대차그룹의 예상 손해는 막심하다. 올해 2분기 관세로 영업이익 상 큰 손해를 봤던 현대차그룹은 다가오는 4분기에도 트럼프 리스크를 온전히 안아야 하는 비상사태에 놓였다.

지난 1,2분기 현대자동차 경영 실적 발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에서 5만6000대의 차량 중 6.3%(약 3500대 가량) 의 전기차를 팔았고 2분기 7만9000대 중 10.2% (약 8058대 가량)을 팔았다. 1분기는 전년 대비 0.8%포인트, 2분기는 전년 대비 1.8%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한국경제인협회와 콕스 오토모티브의 통계·보고서에도 지난해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 코나 등의 판매 대수는 6만대 가량으로 총매출은 약 25억2400만 달러(약 3조 4896억 8240만원) 가량이었다.

더 뉴 아이오닉 6. 사진=현대자동차
더 뉴 아이오닉 6. 사진=현대자동차

올해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이 줄어든 기아도 지난해 EV9, EV6, 니로를 합쳐 25억 6700만 달러(약 3조5486억2080만원)의 매출을 거뒀었다. 제네시스까지 합치면 모두 52억 8400만 달러(약 7조 3035억 4480만원)를 전기차 판매 매출로 벌어들였기에 OBBBA로 인한 예상 매출 감소는 더 출혈이 크다.

한경협은 OBBBA 시행으로 전기차 기업의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생산 기반 유지와 투자 지속을 위해서는 정책 기금과 세제 혜택 등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아 EV9. 사진=현대차그룹
기아 EV9. 사진=현대차그룹

내연기관 나들목에 선 유럽-미국… 유로7, 전기차 독무대 만드나

미국의 정책 방향은 '내연기관의 종말'이라고 불리는 유럽연합(EU)의 '유로7'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어 기업들의 전략 셈법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오는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할 예정인 EU는 내년 후반 유로7이 적용되면 사실상 전기차의 독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 7이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모두를 대상으로 배출가스와 미세입자 등 환경 규제를 역대 가장 강하게 설정한 최신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를 뜻한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유럽 내 전기차는 지난해 대비 신규 등록이 34% 증가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폭스바겐 ID.3, ID.4, ID.7이 도합 9만 6000여대 팔렸고 체코 슈코다도 3만대가 넘게 팔렸다. 테슬라 모델Y는 4만5000대, 기아 EV3는 2만9000대 이상 판매됐다.

기아 EV3. 사진=기아 유럽법인
기아 EV3. 사진=기아 유럽법인

기아의 판매 실적 통계상으로도 지난해 상반기 대비 올해 상반기 서유럽 시장 전기차 점유율이 지난해 상반기 12.3%에서 올해 19.8%로 7.5%포인트 상승했다.

다만 변수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유로7의 내용이다. 전기차도 브레이크·타이어 마모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엄격히 규제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배터리 내구성(성능 유지율)도 최초로 법적으로 정량화해 관리하게 된다.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 벤츠 최고경영자(CEO)는 "2035년 내연기관 판매를 전면 금지 계획은 너무 성급하다”라며 "현실 점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전속력으로 벽을 향해 달려가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경협 이상호 경제산업본부장은 “불확실한 글로벌 정책 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안정적 생산 기반 유지와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의 선제적 재정 지원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라며 “전기차 산업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기금·세제 혜택이 결합한 종합적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