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이번 주 내로 신규 대형 원자력발전소 및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 계획을 포함한 국정운영 방향을 발표할 가능성이 커지며 ‘K-원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형 차세대 SMR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의 독자 개발에 속도를 내며 글로벌 원전 시장으로의 도약 전략을 펼치는 분위기다.
11일 정부와 원전 업계에 따르면 오는 14일 활동 종료를 앞둔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국정운영 계획 보고를 완료했다.
앞서 지난 6월 원전 가동 승인 심사 등 업무를 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국정위에 i-SMR 개발에 대응한 안전 규제 기반을 적기에 마련한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업무보고 내용은 밝혀진 바 없으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포함됐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원전 업계는 그간 이 대통령의 발언이나 정부 기류를 보아 이번 국정위 발표를 계기로 신규 원전 도입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안전 확보를 전제로 한 원전 사용에 긍정적 입장을 표명하며 합리적 ‘에너지 믹스’를 강조해 오고 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 역시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11차 전기본에 따른 신규 원전 건설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지난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은 총 2.8GW(기가와트) 규모의 대형 원전 2기와 SMR 1기를 2037~2038년에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형 ‘i-SMR’, 최신 기술 집약하며 개발 속도

국정위는 지난 7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연구개발 및 진흥 정책을 새 정부 국정과제 초안에 포함한 바 있다. 특히 여기에 포함된 i-SMR은 기존 SMR과는 차별화된 ‘한국형’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SMR은 소규모 전력 수요분산이나 공장 및 데이터센터·수소생산 등 신산업과 연계 가능한 미래 원전 모델로, 에너지 독립과 탄소중립의 대안으로 꼽힌다. 기존 설비용량 1.0~1.4GW의 대형 원전 용량을 0.2GW 전후로 축소해 건설 기간과 비용 부담을 줄이고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원전 시장의 기대를 받고 있다.
한국은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유수의 기업들과 독자적인 차세대 원전 모델인 ‘i-SMR’을 개발하는 데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형 i-SMR은 일체형 원자로 설계로 냉각재 상실 사고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했으며, 비상 상황에서 전기나 조작 없이도 가동을 중지할 수 있는 혁신적 피동 안전계통을 도입해 안전성을 확보한 것이 강점이다. 중대사고 발생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배제하고, 폐연료 및 방사능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등 최신 기술이 집약되고 있다.
정부는 2028년까지 i-SMR 개발을 마치고, 2035년~2036년 중 국내 첫 SMR을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정부의 i-SMR 개발을 계기로 삼아 원전 산업 생태계 전반의 입체적인 로드맵을 더욱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원전 강국이었던 한국은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건설 중이던 원전 공사 중단, 노후 원전 조기 폐쇄 등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산업에서 크게 위축된 바 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최근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며 데이터센터 설립 등 대규모 전력 수요 증가함에 따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및 비용 한계는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분위기도 비슷하다.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의 길을 걸었던 유럽은 에너지 안보 위기와 탄소 중립이라는 두 가지 현실적 과제 앞에서 다시 원자력 발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탈원전의 상징이었던 스웨덴과 벨기에가 정책을 공식 폐기했으며, '최초의 탈원전 국가' 이탈리아에서도 원전 재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은 "원자력은 안전하고 깨끗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라며 원전 건설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만성적인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이 필수적인 선택지라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5월 25일(현지시간) 원자력 산업 기반 활성화 등 4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원자력 르네상스'를 공식 선언, 미국의 에너지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행정명령에는 에너지부(DOE)가 설계를 마친 신규 대형 원자로 10기를 2030년까지 건설하고,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현재의 4배로 확대하는 야심 찬 목표가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는 원자력 시대"라며 "이것은 미국을 '진짜 파워'로 다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원자력 발전을 미국 에너지 우위, 경제 재활성화, 국가 안보의 핵심 초석으로 삼겠다는 비전을 공식화했다. 침체된 자국 원자력 산업을 부활시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국 및 러시아 등 경쟁국들에 대한 미국의 기술적·산업적 리더십을 재확립하려는 '미국 우선주의' 의제 연장선이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신산업 연계성 및 안정성 등의 강점으로 SMR이 각광받는 추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글로벌 진출 ‘K-원전’ 입지 굳히기…투 트랙 전략

정부도 바짝 드라이브를 건다는 방침이다. i-SMR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는 데는 글로벌 SMR 시장에선 독자적 기술로 선점하면서도 대형 원전 시장에서 미국과 협력하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을 펼치겠단 포석도 담겼다.
이번 i-SMR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한수원은 지난 체코 원전 입찰 과정에서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지적재산권 분쟁을 겪으며 해외 대형 원전 사업 진입 장벽을 느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의 한국형 원전(APR1400) 기술이 자사의 특허 기반이라고 소송을 제기, 양사는 2년 넘게 다투다 지난 1월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협력키로 합의하며 분쟁은 일단락됐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지난 5월 체코 현지 간담회에서 “유럽 시장은 법률적으로 복잡해 동네에서 입찰로 뚫고 들어가다 한수원의 힘을 다 뺄 수 있다”며 “그럴 바엔 SMR 시장을 뚫자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계기로 한수원은 i-SMR을 앞세워 핀란드·스웨덴·체코 등 유럽 국가를 비롯해 태국·요르단 등과 업무협약을 맺으며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다.
노르웨이 현지에선 트론헤임슬레이아 원자력과 함께 i-SMR 도입을 위한 공동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다. 한수원은 노르웨이 입찰에 성공해 유럽 시장 진출의 초석을 다진다는 방침이다.

한편, 정부가 이번 주 내로 신규 원전 도입을 발표하게 되면 한수원의 주도로 부지 선정, 설계 인가, 실증 단계가 속전속결로 진행될 전망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수원이 부지 선정을 위한 준비는 모두 마친 상황이어서 명확한 지침만 나오면 에너지부 신설 이슈가 있더라도 부지 선정 일정을 바로 추진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