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극지연구소에 제안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차세대 쇄빙연구선 조감도.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이 극지연구소에 제안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차세대 쇄빙연구선 조감도. 사진=한화오션

북극의 바다에 새로운 길이 생긴다.

그간 지구의 장벽 역할을 해왔던 극지 바다다. 높은 파도와 거대한 유빙, 혹한이 선박의 운항을 막아왔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며 유빙이 녹고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다. 제 사회가 새로 생길 항로의 이권에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한국 역시 정부 차원 북극항로 개척추진단을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꿈과 희망의 북극항로, 경제성은? 

북극항로는 현재 대안 항로의 개념으로 각광 받는다. 배경엔 2020년대 들어 복잡해진 바닷길이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흑해 항로의 안전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틀어막히며 글로벌 식량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2023년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벌이면서 인근 수에즈 운하가 통제됐다. 이스라엘에 반발한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인근을 지나가는 선박을 무차별 공격하자 선사들은 해당 항로를 지나지 않게 됐다.

동시에 환경 부담도 커졌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 해운 ‘넷-제로’ 달성 목표를 선언하며 탄소 저감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저속 운항’과 ‘운항 시간 단축’이다, 기존 항로보다 더 짧은 항로의 필요성도 대두된 이유다.

이런 상황에 북극항로의 부상은 각국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북극해를 지나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해운 항로를 총칭한다. 북미·유럽을 잇는 캐나다 해역의 북서항로와 아시아·유럽을 잇는 러시아 해역의 북동항로로 나뉜다.

지정학적 위기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타 노선보다 더 짧은 운항 거리가 강점이다. 대한민국 부산-네덜란드 로테르담 노선의 경우, 기존의 수에즈운하 경유 노선의 길이가 2만100km에 30일의 운항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북극항로를 이용한다면 길이 1만2700km에 운항일수 20일로 대폭 단축된다. 기존 노선 대비 연료 소모량을 크게 줄여 경제 효과와 더불어 탄소 저감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셈이다.

이점이 명확한 만큼 국내 정치권에서도 북극항로 이권 확보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공약으로 부산의 해양수도화와 함께 북극항로 개척을 내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부산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꼽고 북극항로 개척추진위원회까지 출범시켰다.

동시에 한국 조선업계와 협력도 강화 중이다. 북극 탐사에 필수적인 쇄빙선 건조를 한화오션에 맡겼다. 해양수산부에서 추진하는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사업에 한화오션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총 톤수 1만6560톤급 선박 건조를 추진한다. 국내 최초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두 배 크기다.

그렇다면 북극항로는 정말 개척만 한다면 경제적·안보적으로 희망찬 미래만 가득할까.

실질 수혜업종이 될 예정인 해운업계에서는 북극항로 개척 움직임을 다소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당장 대한민국 주력 분야인 정기선 컨테이너선 사업의 경우 실질적 이득은 거의 볼 수 없다는 시선이다.

세계 1위 해운사인 스위스의 MSC와 2위 덴마크 머스크, 3위 프랑스 CMA CGM은 모두 북극항로 이용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구온난화로 환경이 파괴돼야만 이용가능한 항로며, 비용 절감이 어렵다는 이유다.

특히 비용 문제가 크다. 컨테이너 정기선사는 단순히 항구에서 물건을 싣고, 최종 목적지까지 직항해 물건을 내리는 방식의 운항은 하지 않는다. ‘중간 기항지’에 들려 환적(목적지가 아닌 항구에서 다른 선박에 화물을 옮겨 싣는 일)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 부산항 역시 싱가포르항에 이은 세계 제2 환적항구로써 해마다 수많은 선박이 입항한다. 상술한 부산-로테르담 항로 역시 중간 길목에 닝보, 탄중펠레파스,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동남아시아권 기항지들이 즐비하다.

반면 북극항로는 러시아를 제외하곤 마땅한 중간 기항지가 없다. 필연적으로 러시아 의존도가 커진다.

더불어 ‘정기’선사임에도 정기 운항을 하기 힘들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유빙이 녹는다지만, 안전한 운항을 위해선 겨울을 제외한 시기에만 운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바다처럼 1년 내내 운항이 가능해지면, 국제적 해수면 상승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게 된다.

전준수 서강대 석좌교수는 “북극항로가 개척되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이 뒤따를 것처럼 언급되지만, 인류를 위해서는 될 수 있는 한 늦게 열리는 게 좋다”며 “북극 항로가 열리면 전 세계 선사들이 몰려들어 서유럽 노선을 만들 것처럼 말하지만, 현재 해빙 수준으로는 불가능하고 아무리 빨라야 20년 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비정기선인 벌크 분야에서는 이득이 발생할 수 있다.

벌크선사 관계자는 “벌크업은 화주 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물건을 운송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만큼, 항차마다 화물도 다르고 목적지도 다르다”며 “중간 기항지가 없으니 컨테이너 정기선보다 비교적 항로 설정이 자유롭고, 정시성도 크게 요구되지 않아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북극항로를 이용하기도 쉽다”고 설명했다.

부산-로테르담 수에즈 항로와 북극항로 비교도. 사진=두산백과
부산-로테르담 수에즈 항로와 북극항로 비교도. 사진=두산백과

미·중·러 다툼에 한국 등 터질라

북극항로 참여의 가장 큰 우려점은 정치 외교적 문제다. 미·중·러 패권싸움이 북극항로에서 벌어지는 탓이다.

특히 러시아의 주도적 항로 개척과 권한 행사는 잠재적 위협으로도 다가온다.

러시아는 수백 년간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다. 막대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미국보다 떨어지는 대외 영향력이 근본적으로 해상 장악력 부족에서 기인한다는 평가였다. 마침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며 러시아 역시 북극항로 개척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국가계획과 재정을 활용해 북극항로 상용화에 필요한 법·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항만, 도로, 철도 등 교통 인프라를 재건하고 있으며, 쇄빙선을 포함한 선박 건조에도 열중하고 있다. 그 결과로 2014년 기준 400만톤이었던 북극항로 물동량이 2022년엔 3400만톤을 기록하며 8.5배가량 증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대러시아 무역 제재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신규 공급망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를 북극항로로 낙점했다.

문제는 이런 러시아의 움직임이 러-중 관계 강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코트라 블라디보스톡 무역관에 따르면 2024년 9월 기준 북극항로 통과 화물량은 사상 최대치인 238만톤이며, 그중 95%를 러시아-중국간 교역이 차지했다. 통과 화물의 62%는 원유(147백만톤), 27%는 벌크 화물(67만톤), 6%는 컨테이너 화물(15만톤)이다.

교역 물품에서 미뤄볼 때, 중국과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통해 서로 윈-윈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러시아 제재로 송유관을 통한 대유럽 원유 수출이 흔들리는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통해 중국에 원유를 팔아 이득을 취한다.

마침 중국은 2023년 원유 소비량이 2022년 대비 10% 증가하는 등 자국내 생산량 대비 소비가 증가하며 에너지 자립도가 점차 떨어지는 추세다. LNG와 원유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우수한 에너지 자립도를 유지하는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원유 공급망 마련이 필수다. 때맞춰 북극항로로 진출하는 러시아가 최고의 파트너가 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관련 태스크포스(TF) 발족식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관련 태스크포스(TF) 발족식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UPI연합뉴스

미국의 심기를 자극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24년 12월부터 그린란드 인수를 주장해 왔다.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를 그린란드 수도인 누크로 보내고, “그린란드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해 군사적 경제적 강수도 고려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배경에는 안보 문제가 엮였다. 러시아와 중국의 안보 위협을 견제할 수단으로 북극항로 거점이 필요하다는 시선이다. 실제 미국은 그린란드 북서부에 최북단 전초기지 ‘피투픽 공군 기지’를 운용 중이다.

현시점 북극항로 개척 참여가 미·중·러 패권싸움에 간접적으로 엮일 수 있다는 우려를 사는 이유다.

지금으로썬 북극항로를 통한 에너지 공급망 다양화도 노리기 어려워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8월 5일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관련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산 원유 거래국에 추가 관세 부과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기업에 대한 관세율이 최대 100%에 달할 수 있다”며 러시아 에너지 시장 확대를 견제한 바 있다.

한국은 호르무즈해를 통해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전체 72%로 높다. 최근 중동 소요사태로 원유 공급망이 위협받은 만큼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다만 최근 미국과 관세 협정 일환으로 미국산 에너지 1000억달러 구매 약속한 만큼, 북극항로를 통한 러시아산 원유 공급망 확보는 당분간 요원한 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