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미국과 1000억달러 규모의 ‘에너지 계약’을 맺으며 상호관세율을 합의한 가운데 각 에너지 품목의 일부 수입 확대가 필요해지며 정부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특히 민간 기업이 직접 구매하는 정유사들의 결정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0일(현지시간)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한국은 향후 4년간 1000억달러(약 140조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기로 했다. 대표 품목에는 LNG(액화천연가스), 원유, LPG(액화석유가스), 석탄 등이 포함됐다.
표면적으로 계약 금액은 상당한 규모다. 그러나 업계는 이번 협상으로 인한 추가적인 에너지 구매액이 예상보다 감당이 가능한 수준일 것이라고 보고있다.
실제 지난해 기준 한국의 미국산 에너지 수입액은 약 232억달러에 달한다. 세부 품목별로 보면 원유 142억달러, LPG 45억달러, LNG 31억달러, 석유제품 8억달러, 석탄 6억달러 등이다. 4년간 1000억달러를 금액은 연평균 250억달러 규모로 본다면 지금보다 연간 약 18억달러(약 2조5000억원) 늘리는 데 그친다.
기존 수입해오던 물량에서 일부만 미국산으로 대체하면 무리가 없는 셈이다.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기존 수입 패턴에서 미국산 비중을 일부 확대하는 성격이지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한국가스공사를 통한 LNG 품목의 추가 확대를 우선 순위로 둘 전망이다. 한국이 중동과 맺은 LNG 장기 구매 계약 일부가 만료될 예정인 만큼 미국산 LNG 도입 비중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한국석유공사를 통한 정부 비축유 역시 미국산으로 대체하거나 비중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 초부터 석유공사는 비축유의 일부를 미국산 원유로 대체하거나 추가 확보하는 계획을 추진해 온 바 있다.
정유사도 복잡해진 계산법…중요한 ‘키’ 쥐게 될지도

국가간의 합의로 맺어진 에너지 계약이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원유를 직접 구입하는 국내 정유사들에게도 중요한 ‘키’가 쥐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나 한국석유공사와는 달리, 정유사는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기에 경제성 측면서 이견이 있다.
특히 이번 합의로 공급받을 미국산 원유의 경우 중동산에 비해 배럴 당 가격은 저렴한 편이지만 운송 거리가 멀어 그 만큼의 해상 운임 부담을 짊어질 수 있다. 복잡한 셈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민간 기업도 복잡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31일 SK이노베이션은 실적 발표를 통해 “원유 수입 증대를 위해선 경제성이 맞아야 하는데 구체적 조건이 제시된 바가 없어 경제성 검토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SK E&S는 국내 민간 기업 중 미국 LNG 수입량이 가장 많은 편이고, CB가스전을 고려하면 충분한 물량이 이미 확보된 상황이라 추가 소싱은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정부가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정유사들은 정제마진, 조달가격, 운송비, 공급안정성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원유 수입처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는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민관이 뜻을 하나로 모아 원만한 수급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민간 기업인 정유사들은 정부 정책에 따라 강제로 구매한다거나 하지 않고,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원유 도입을 고려할 것”이라면서도 “SK이노베이션의 발표에서 나왔듯 추가적인 것도 더 고려 해볼 가능성이 존재한다 정도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