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고령층의 건강 문제가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부상했다. 특히, 대장항문 질환은 노년기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여전히 '부끄러운 병'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검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고령층의 치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9일, 정순섭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장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주최한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강연자로 나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항문·대장 증상을 부끄럽게 여기는 노인들의 심리는 검진 회피로 이어지고, 그 결과 치료 시기를 놓쳐 건강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하며, 대장항문 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과 공감 중심의 의료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대장암, 치핵, 변비, 변실금 등 다양한 대장항문 질환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9.2%, 80세 이상은 4.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계는 대장항문 질환의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정 이사장은 뉴질랜드 연구에서 두려움과 창피함, 혐오감이 대장암 검진 회피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며, 미국 연구에서도 50세 이상 고위험군이 검진을 받지 않는 주된 이유로 '창피함'(42.3%)과 '검사 공포'(43.1%)를 꼽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고령층의 낙인 인식이 의료 회피, 치료 지연, 심리적 고립, 그리고 결국 건강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정 이사장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부끄러운 병이라는 인식을 탈피하고, 대장항문 질환을 일상 건강 이슈로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감 메시지 중심의 홍보, 디지털 맞춤형 홍보를 통해 정확한 정보와 이해를 돕고, 의료 현장에서의 공감 중심 커뮤니케이션과 프라이버시를 강화한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앱과 영상을 활용한 사전 교육은 환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장항문 질환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된다. 정 이사장은 "치핵은 대부분 수술이 필요 없고, 내치핵 1~2도는 약물과 생활 습관 개선으로 호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혈변이 반드시 치핵 때문만은 아니며 암의 신호일 수 있음을 경고하며 젊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내시경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변비 역시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대장암이나 갑상선 질환과 같은 전신 질환의 신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기 진단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되었다. 대장암은 초기 발견 시 90% 이상 완치 가능하며, 대장내시경은 조기 대장암 진단의 유일한 수단이다. 정 이사장은 50세 이상이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 국가 검진을 적극적으로 받을 것을 권장하며, 국내 대장내시경의 천공 발생률이 0.01%, 출혈이 0.06%로 매우 안전하다고 밝혔다. 고령자의 경우 변비약 남용이 장 기능 저하, 전해질 불균형,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대장항문 질환의 치료는 비수술적 치료와 최소침습 수술로 변화하고 있으며, 고령 환자도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고무밴드결찰술은 외래 시술로 가능하며 높은 치료 성공률을 보이며, 최소침습 수술은 빠른 회복과 낮은 합병증 비율이 장점이다. 

정순섭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장은 "대장항문 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전문가와 전문 학회가 협력하고, 환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공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이제 대장항문 질환을 '부끄러운 병'이 아닌 '건강 문제'로 인식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