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각사
사진=각사

초저가 공세로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키워온 C커머스가 암초에 부딪혔다. 잇따른 안정성 문제와 저작권 시비에 성장률이 둔화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 정부에서도 C커머스에 대한 조처를 취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오며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주요 기업들은 품질 강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자구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C커머스, 성장 한계 부딪혔나

안전성 검사 결과 부적합 판정 받은 중국 직구 어린이 여름 옷과 신발. 사진=서울시
안전성 검사 결과 부적합 판정 받은 중국 직구 어린이 여름 옷과 신발. 사진=서울시

29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서 최근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C커머스 기업들의 성장이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 1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각각 912만4000여명과 823만4000여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 6월 두 플랫폼의 활성 이용자 수는 알리익스프레스 905만2000여명(0.79%), 테무 799만9000여명(2.85%)으로 6개월 새 소폭 감소했다. 이는 두 플랫폼 모두 지난해 한 해 동안 각각 200만명가량 MAU를 올린 것과 대비된다.

C커머스가 정체기 접어든 데에는 안정성 논란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채널에서 구매한 상품에서 기준치를 웃도는 유해·발암물질이 검출되며 논란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지난달 장마철을 앞두고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서 판매한 어린이 우산과 비옷, 장화 등 35개 제품의 안전성을 검사한 결과 11개 제품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 물질이 나오거나 안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는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국내 기준치 대비 443.5배 초과한 제품도 있었다.

지식재산권(IP) 침해 논란도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알리익스프레스는 29일 현재 ‘케이팝 데몬 헌터스’ 굿즈를 비롯해 코스프레 의상을 판매하는 중이다. 케이팝 데몬헌터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넷플릭스 접속을 전면 차단하고 있는 중국에서 불법 경로를 통해 소비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끈 ‘오징어게임’ 관련 굿즈도 C커머스를 통해 유통된 바 있다. 이와 함께 국내 패션 브랜드 제품을 본떠 제작하거나 K브랜드의 화보 사진을 도용하는 등의 저작권 침해 문제도 꾸준히 지적되는 중이다.

잇따른 논란에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가격이 높더라도 품질이나 신뢰도가 높은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을 이용하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작성한 ‘중국 유통 플랫폼의 글로벌 확장과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 54.8%가 가격이 비싸도 믿을만한 국내 쇼핑몰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테무 사용자의 절반 이상은 상품의 품질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C커머스에서 구매한 상품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불만족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60.7%에 달했다.

정부 제재에 기업들 자구책 마련 서둘러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렇듯 소비자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자, 정부에서도 조만간 이들 기업에 대한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15일 진행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전자상거래의 국내 점유율 증가에 따른 부작용이 많다는 질의에 “패션, 지적재산(IP) 등 분야의 저작권 문제를 신경 써 면밀하게 조치하기 위해 적극 논의하겠다”라고 대답한 바 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기만 광고를 이유로 테무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57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클릭 몇 번만으로 쉽게 현금성 포인트를 받을 수 있을 것처럼 광고했지만 실제로는 테무 앱에 지인을 여럿 가입시켜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웠고 이 내용은 쌀알만 한 크기의 ‘규칙’을 눌러봐야만 알 수 있었다며 이유를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테무를 제재한 첫 번째 사례”라며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해외 업체들이 표시광고법과 전자상거래법상 의무를 준수하도록 해 소비자의 피해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기업들도 자구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먼저 테무는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IACC 2025 연례회의’에서 지식재산권 보호 협력 강화와 온라인 위조 방지 노력 확대를 목적으로 국제위조방지연합(IACC)과 MOU를 체결했다. 협력의 일환으로 테무는 IACC가 최근 출범한 ‘마켓플레이스 자문위원회(MAC)’의 창립 구성원으로 합류했다. MAC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결제업체, 브랜드 소유자들이 서로 협력하고 인사이트를 공유하며 온라인에서 확산하고 있는 위조 상품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협력의 장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테무는 최근 제품 안정성과 품질 강화를 목적으로 국가 공인 인증기관인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과 MOU를 체결했다. 해당 협약은 테무가 올해 초 KOTITI 시험연구원과 맺은 품질 검사 협약에 이어 국내 인증기관과 체결한 두 번째 파트너십이다.

알리익스프레스도 대응에 나섰다. 알리익스프레스 코리아는 지난 11일 사단법인 무역관련지식재산권 보호협회(이하 TIPA)가 해외직구 상품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를 위해 손을 잡았다. 협약에 따라 알리익스프레스는 TIPA와 피노키오랩이 공동 개발한 지식재산권 관리 시스템인 ‘TIMS’를 활용해 위조 상품으로 확인된 상품을 유통한 판매자를 식별해 처벌할 예정이다.

안정성 검증도 강화한다. 알리는 지난해 9월 한국수입협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국내 주요 시험검사기관(KTR·KCL·KOTITI·FITI·KATRI) 5곳과 함께 자발적 안전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사 결과 국내 KC 기준에 미달한 제품은 즉시 판매를 중단하고 재유통을 차단하는 조치가 이뤄진다.

문완식 건국대학교 교수는 “외국 기업이 국내 소비자의 기대 수준에 맞춰 자발적으로 안전 검사를 시행하고, 제기된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라며 “이러한 노력이 축적된다면 국내 시장에서 더욱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