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볕더위와 극한 호우가 반복되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유통업계의 마케팅 전략이 변하고 있다. 계절 맞춤형 상품을 전면에 내세웠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시즌 리스’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나아가 프리오더(pre oreder) 방식으로 역시즌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도 한다.

이상기후가 바꾼 유통 트렌드

현대백화점 판교점 '타임' 매장에서 고객들이 여름 카디건 제품을 쇼핑하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 판교점 '타임' 매장에서 고객들이 여름 카디건 제품을 쇼핑하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백화점

24일 기상청에 따르면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를 덮으며 기록적인 무더위가 주말에도 이어진다. 지난주 극한 호우로 경기도와 경상남도 지역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것을 고려할 때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도깨비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비단 최근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3월 하순 이례적인 고온에 이어 4월 중순에는 눈과 한파가 5월에는 저온 현상이 나타나며 극단적인 흐름이 반복됐다.

이렇듯 예측 불가능한 날씨가 이어지며 유통가의 마케팅 방식도 변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유통업계는 계절에 발맞춘 마케팅 전략을 펼쳐왔다. 장마철에 레인부츠를, 무더위를 앞두고 민소매와 수영복 등의 상품을 전면에 내세우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상 기후로 평년 기온을 웃돌거나 밑도는 날씨가 이어지며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고 있다.

한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백화점은 전년에 다음 연도의 마케팅 테마를 미리 계획해 놓는다”라면서도 “올해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지며 이에 발맞춰 새로운 행사를 진행하는 식으로 대응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프라인과 달리 백화점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제품을 판매해야 하다 보니 계절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소비 패턴 역시 변화하는 모습이다. 현대백화점이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를 통해 최근 2년간 ‘장마 패션’ 키워드에 대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카디건’과 ‘셔츠’ 언급량은 각각 327.8%, 274.7% 급증했다. 반면 ‘레인부츠’와 ‘방수재킷’은 각각 19.8%, 9.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실제 매출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현대백화점이 여름 세일 개시 이후 열흘간(6월 27일~7월 6일) 집계한 매출에 따르면 패션 카테고리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7%, 스포츠·아웃도어 카테고리는 21.1% 증가했다. 특히 이들 상품군에서 카디건·셔츠·바람막이 등 여름 아우터류 매출은 30% 이상 증가하며 전체 신장률을 크게 웃돌았다.

이 같은 추이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드러난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에이블리 빅데이터 분석 결과, 최근 3주간(7월 1~21일) ‘살 안타템’의 키워드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69% 증가했다. 특히, 올해에는 ‘살안타 카디건’(200%), ‘살안타 셔츠’(101%) 등 다양한 키워드로 검색하며 여름철 긴팔 상품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졌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여름철 자외선 차단은 물론, 실내 에어컨 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어 긴 기장의 상품, 이른바 ‘살 안타템’이 인기 상품에 등극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시즌 리스와 함께 역시즌 상품도 주요 마케팅 전략 중 하나다. 역시즌 마케팅은 패딩, 코드 등 겨울철 대표 상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일컫는다. 통상적으로 여름의 경우 변덕스러운 날씨와 여름 의류의 낮은 판매 단가에 비수기로 분류되는 만큼 이를 통해 비수기 시즌의 실적을 방어하겠다는 전략이다.

한여름에 니트·모피 행사 진행해

신세계 에스테이트(본점 신관) 3층 사바티에 모피 매장에서 모피를 쇼핑하고 있는 고객 모습. 사진=신세계백화점
신세계 에스테이트(본점 신관) 3층 사바티에 모피 매장에서 모피를 쇼핑하고 있는 고객 모습. 사진=신세계백화점

이렇듯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유통 기업들은 속속 관련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먼저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 전문기업 한섬은 다양한 기온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군 강화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프리미엄 여성복 브랜드 ‘타임’은 여름철 활용도가 높은 린넨 셔츠 물량을 전년 대비 50% 확대했다. 아울러 셔츠와 재킷의 장점을 결합해 만든 ‘셔켓’ 물량도 2배 가까이 늘렸다. 이외에도 캐시미어 전문 브랜드 ‘더캐시미어’는 여름 니트 생산량을 약 30% 확대했다.

이 같은 흐름은 뷰티와 가전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실내 냉방으로 인한 피부 건조로, 겨울철 주력 제품이던 고보습 스킨케어 제품이 여름 시즌에도 주목받으며 관련 상품군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3% 증가했다. 또 고온다습한 날씨로 인한 모발의 곱슬거림을 완화해 주는 샴푸·트리트먼트·헤어 에센스 제품 등의 매출도 20% 이상 증가했다. 이에 더해 아니라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려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건조기·제습기 등의 매출도 두 자릿수 이상 늘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기후 변화로 계절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고객들의 소비 기준도 계절 아이템에서 실용성 중심의 시즌리스 아이템으로 바뀌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기온 변화와 고객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트렌드를 반영한 스타일링을 제안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계절 경계가 흐려지는 흐름에 맞춰 수영복 등의 상품을 계절과 관계없이 판매하는 ‘계절 파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영복의 경우, 기온 상승과 야외 활동 수요 증가에 발맞춰 지난 2022년부터 봄 시즌 관련 팝업스토어를 기획해 운영하고 있다.

팝업스토어 외에도 고객의 연중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23년 전국 주요 점포에 총 6곳의 수영복 상설 매장을 개점했다. 그 결과, 수영복의 봄, 가을, 겨울 매출 신장률은 여름 대비 10~50%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신세계백화점은 7월 한 달간 본점과 강남점 등 전국 11개 점포에서 대규모 모피 ‘프리오더’ 행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 행사에는 구호, 델라라나, 동우, 사바티에, 진도 등 총 19개 브랜드가 참여하며, 브랜드별 스타일 수는 전년 대비 3배 확대된 150여 개로 구성했다.

프리오더는 여름철 미리 주문을 통해 겨울 시즌 신상품과 한정판 모피를 선점하고, 정가 대비 10~2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프리오더는 판로 확대는 물론, 수요를 예측해 재고를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프리오더가 집중되는 6~8월 신세계백화점의 모피 매출은 3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2년 24%, 2023년 56%, 2024년에는 147% 급증했다.

선현우 신세계백화점 패션담당은 “과거엔 겨울 직전에 급하게 모피를 사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여름 프리오더가 보다 합리적인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라며 “VIP 고객은 물론 대중 고객까지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선보여, 쇼핑 만족도를 한층 높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