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극한의 폭염’이 한반도를 덮친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택배업계는 인명 사고 근절을 위해 철저한 대비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대표적으로 CJ대한통운, 한진, 쿠팡 CLS 등 주요 기업들은 작업중지권 부여한 한편, 물류센터 현장 점검, 실질적 휴식권 보장 등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상 기후로 매년 더 더워지는 날씨에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폭염 속 택배노동자 3명 연달아 사망

지난 11일 오후 3시 30분께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의 한 빌라촌에서 배달기사가 짐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3시 30분께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의 한 빌라촌에서 배달기사가 짐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일 기상청에 따르면 당분간 전국 대부분 지역에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내외로 올라 무덥겠고, 일부 지역에 열대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폭염특보가 발효된 경기남부와 충남권, 전라권, 경북권(대구), 경남권(창원·김해), 강원동해안,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으로 올라 매우 무더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기상청은 고온으로 인해 온열 질환 발생 가능성이 높으니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한동안 불볕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택배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주로 실외에서 장기간 노동하는 택배노동자의 특성상 온열 질환에 더욱 취약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4일과 7일 그리고 8일 택배업계 종사자 3명이 잇따라 사망했다. 사망한 택배기사는 모두 CJ대한통운 소속으로 업무 이후 본인 차량과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아직 조사가 더 필요한 상황이나, 노동계에서는 연이은 폭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특히, 최근 ‘주 7일 배송’이 택배업계 전반으로 확산한 것도 택배기사의 업무 강도를 더욱 키웠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국노총은 측은 “주 7일 배송 사업을 시작하면서 충분한 인력 충원이나 ‘백업기사’ 시스템 없이 기존 택배노동자들에게 추가 노동을 전가했다”라며 “휴일에는 분류 인력 투입 없이 택배기사가 직접 분류에 참여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는 택배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극단적으로 높이고 배송 지역 확대로 과로와 산업재해를 부추겼다”라고 촉구했다.

택배사, 자구책 모색 나서

사진=한진
사진=한진

상황이 이렇자, 주요 택배 기업들은 노동자 보호를 위한 자구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먼저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에게 자율적으로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고, 지연 배송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고객사에도 배송 지연에 대한 양해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할 계획이다. 또 기저질환이 있는 고위험군 택배기사들은 협의를 통해 혹서기 업무량을 줄여나갈 방침이다. 이와 함께 다음 달 14~15일은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해 모든 택배기사가 배송을 멈추고 휴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진도 일부 지역에서 택배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다며 고객들의 양해를 요청했다. 아울러 택배노동자의 안전한 근무환경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전메가허브 터미널에 냉방기를 증설해 쾌적한 작업 환경을 조성했으며, 작업장 온도가 영상 33도를 초과할 경우 ‘50분 근무, 10분 휴식’ 원칙을 적용하고 관련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또 가장 무더운 시간대를 피해 배송할 수 있도록 탄력적인 근무 운영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업계 처음으로 ‘백업기사’ 시스템을 도입해 배송기사들이 주 5일 이하 배송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직영 배송 인력인 ‘쿠팡 친구’를 활용해 택배노동자들이 별도의 용차(외부 택배기사)를 구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밖에도 올해부터 주 6일 배송을 선택한 주간 배송 기사들도 반기마다 최소 1회 이상 연간 최소 2회 이상 쉬는, ‘의무 휴무제’를 도입했다.

노동계 “정부가 직접 대책 마련해야 해”

지난 11일 진행된 폭염 속 택배노동자 사망 사고 규탄·규개위 폭염 대책 보완 촉구 기자회견 현장 모습. 사진=한국노총
지난 11일 진행된 폭염 속 택배노동자 사망 사고 규탄·규개위 폭염 대책 보완 촉구 기자회견 현장 모습. 사진=한국노총

이렇듯 주요 택배 기업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자구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매년 반복되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1일 진보당 정혜경 의원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폭염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장시간 야외 활동을 하는 택배노동자들에게 폭염은 생명과 직결된 재난이라며 폭염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의원은 “택배 상차 작업이 이뤄지는 서브터미널, 캠프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부족하다는 제보가 끊이질 않는다”라며 “사람 잡는 택배회사들의 시스템에 정부가 직접 개입해 긴급점검·긴급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이후 정 의원과 대책위는 대통령실에 ▲지연 배송에 따른 불이익 조치 금지 ▲택배 터미널과 물류센터 긴급 냉방 대책 마련 ▲폭염 시기 분류작업 수행 금지 ▲폭염 시 집하와 배송 외의 업무 금지 등의 대한용이 담긴 서한을 전달했다.

같은 날 한국노총도 국회 소통관에서 ‘폭염 속 택배노동자 사망 사고 규탄·규개위 폭염 대책 보완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노동자에 대한 별도의 보호조치를 강력히 요구했다. 

김사성 한국노총연대노조 택배산업본부 위원장은 “정부와 국회는 택배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즉각 마련하고, 책임 있는 기업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기업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라며 “한국노총은 더 이상 단 한 명의 소중한 생명도 잃지 않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강력한 투쟁을 이어 나갈 것을 엄중히 엄중히 선언한다”라며 “정부와 택배사업자들에게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택배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조속히 강구하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17일부터 체감온도 33도 이상 폭염에서 작업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의무화하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 이는 지난 11일 폭염 작업 안전 수칙이 담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규제개혁위원회 규제 심사를 통과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라이더, 택배노동자 등 이동노동자는 이번 개정안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택배·배달 노동자들은 일하는 형태와 장소 등이 일반 근로자들과 달라 대책을 똑같이 적용하기 어렵지만, 이들을 폭염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라며 “이분들에 대한 보호 방안을 시행 규칙에 어떻게 담을 수 있을지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