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야…."
인공지능(AI)이 단 몇 초의 음성 데이터만으로 만들어낸 자녀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다급하게 들려온다. 이성적으로는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장 원초적인 신뢰를 자극하는 목소리 앞에 부모의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최근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딥페이크 보이스피싱'의 현실이다.
이처럼 AI가 창과 방패가 되어 격돌하는 디지털 범죄의 최전선에서 KT가 '신뢰'를 지키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KT는 15일 향후 5년간 정보보호 분야에 1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보안 체계를 전면 혁신한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설비 투자를 넘어 AI 시대에 통신사가 고객과 사회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통감하고 '가장 안전한 디지털 라이프'를 구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딥보이스까지 걸러내는 '보컬 DNA' 분석 기술
이번 투자의 가장 강력하고 상징적인 결과물은 올 하반기 상용화될 'AI 보이스피싱 탐지 2.0' 서비스다. 기존의 문맥 분석을 뛰어넘어 목소리의 고유한 특징인 성문(聲紋) 즉 '보컬 DNA'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기술이다.
성문은 사람의 지문처럼 개인마다 다른 수십 가지의 고유한 음성 주파수 특성을 의미하며 AI가 겉모습은 흉내 낼 수 있어도 이 본질적인 특징까지 완벽히 복제하기는 어렵다. KT의 AI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협력해 확보한 2만5천 건 이상의 방대한 음성 데이터를 학습해 진짜와 가짜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낸다.
이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통신사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설치하는 앱은 이미 수신이 완료된 음성 신호를 분석하지만 KT의 서비스는 통신망의 관문 단계에서 통화 자체를 분석한다. 이는 집 현관문 앞에서 강도를 막는 것과 집 안에 들어온 강도를 막는 것의 차이만큼 크다. KT는 이 기술로 탐지 정확도를 95%까지 끌어올려 연간 2천억원 이상의 잠재적 범죄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AI가 방패가 되는 '선제적 방어 시스템'
KT의 AI 방패는 보이스피싱을 넘어 디지털 생활의 모든 위협으로 확장된다. 이미 통신사 중 유일하게 도입한 '실시간 AI 키워드 등록 시스템'은 수백만 건의 스팸 신고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학습해 새롭게 등장하는 스팸 키워드를 즉시 찾아내 차단한다. 그 결과 전체 등록 키워드의 5.5%에 불과한 AI 생성 키워드가 전체 스팸의 45.9%를 막아내는 경이로운 효율을 보여주고 있다.
자체 개발한 'AI 클린메시징시스템(AICMS)'도 눈길을 끈다. 의심스러운 URL이 포함된 문자를 받으면 이를 가상의 안전한 환경(샌드박스)에서 미리 열어본다. 악성 코드가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고 안전할 때만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디지털 방역' 시스템이다. 이처럼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와 양으로 쏟아지는 디지털 위협을 오직 AI만이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
'신뢰'라는 무형자산에 대한 베팅
1조원이라는 투자 규모는 KT가 AI 시대에 기업의 존립 기반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한 결과다. 미래의 AICT(AI+ICT) 기업에게 데이터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그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는 기업 가치의 핵심이다. 이번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KT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견고한 '해자(moat)'를 파는 전략적 베팅이다.
이를 위해 KT는 'K-Security Framework'라는 독자적인 보안 체계를 가동한다. 이는 방어만 하는 '블루팀'과 공격자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침투를 시도하는 '레드팀'을 함께 운영하며 실전과 같은 모의 전쟁을 365일 벌이는 것이다. 또한 '절대 믿지 말고 항상 검증하라'는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원칙을 전사적으로 완성한다. 과거의 보안이 성벽을 쌓고 일단 안에 들어오면 모두를 믿는 '성곽 모델'이었다면 제로 트러스트는 성문 안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철저한 검문 모델이다.
KT Customer부문장 이현석 부사장은 "지금 이 정도면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더 이상 고객의 신뢰를 지킬 수 없다"며 "KT는 고객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기존의 대응 방식에서 벗어나 선제적 보안의 새로운 기준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는 통신 서비스가 단순히 연결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고객의 디지털 생활 전체를 책임지는 '안전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담은 약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