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14일(현지시간) 향후 수십 년간 디지털 자산의 향방을 결정지을 '크립토 위크(Crypto Week)'의 막을 올렸다. 

공화당 주도로 진행되는 이번 회기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의 규제 공백을 메우고 명확한 운영 규칙을 수립하기 위한 3개의 핵심 법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된다는 설명이다. 시장은 규제 불확실성 해소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끓고 있으며, 비트코인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12만 달러 선을 넘보고 있다. 다만 민주당은 "소비자 보호와 금융 안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위험한 도박"이라며 강력히 반발, 치열한 정치적 공방을 예고하는 상황이다.

사진=갈무리
사진=갈무리

이번 '크립토 위크'의 성패는 세 가지 법안에 달려있다.

첫째는 '21세기 금융 혁신 및 기술 법안(FIT21)', 일명 '클래리티 액트(CLARITY Act)'다. 핵심은 오랫동안 '규제 회색지대'의 원인이었던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간의 관할권 다툼을 종식시키는 데 있다. 법안은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이에 부합하는 네트워크의 디지털 자산을 증권이 아닌 '디지털 상품(Digital Commodity)'으로 분류해 CFTC가 감독하도록 규정한다.

SEC의 강력한 규제에서 벗어나 업계가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 기관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SEC는 대부분의 가상자산을 미등록 증권으로 간주하며 소송을 남발해왔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원을 이미 통과한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해 달러 등 준비금을 1대 1로 보유하도록 의무화하고 재무 상태에 대한 정기적인 감사를 받도록 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준비금은 현금, 단기 국채 등 고도의 유동성 자산으로만 구성되어야 하며, 이를 담보로 한 재대출(rehypothecation)은 금지된다. 이는 테라-루나 사태와 같은 뱅크런을 방지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신뢰할 수 있는 지불수단으로 제도권에 편입시키기 위한 조치다.

마지막으로 '반(反) CBDC 감시 국가 법안'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직접 개인을 상대로 하는 소매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발행하지 못하도록 못 박는 법안이다. 정부가 개인의 모든 금융 거래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빅브라더' 논란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공화당의 의지가 담겨있다.

공화당은 이번 '크립토 위크'를 미국이 차세대 인터넷, 즉 웹3(Web3) 시대의 금융 패권을 장악할 기회로 보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프렌치 힐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은 "더 이상 모호한 규제로 혁신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며 "명확한 규칙을 제공해 소비자를 보호하고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해야 한다"고 법안 통과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가상자산 업계 역시 수억 달러에 달하는 로비 자금을 투입하며 의회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코인베이스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유럽연합(EU)이 MiCA 법안으로 앞서나가는 상황에서 미국이 뒤처질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의 주장은 다르다. '반(反) 크립토 부패 주간'을 선포하며 맞불을 놨다. 맥신 워터스 하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는 이번 법안들이 "월스트리트와 다를 바 없는 가상자산 업계에 대한 특혜"이며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규제 완화의 전철을 밟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들은 특히 '클래리티 액트'가 기존 증권법의 근간을 흔들고 심지어 일반 기업들마저 자산을 토큰화하여 SEC의 감독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가상자산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법안이 잠재적 부패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정치권의 격렬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압도적인 기대감으로 반응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규제 명확성이 기관 자금의 대규모 유입을 촉발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입어 12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월가의 시각은 보다 복합적이다. 일부 대형 투자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 법안 통과 시 잠재적인 단기 국채 수요 급증과 은행 예금 이탈 가능성을 주시하며 기회와 리스크를 동시에 저울질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규제의 문턱이 너무 높아 기관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웠다"면서도 "'클래리티 액트'가 통과되어 SEC와 CFTC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된다면 이는 가상자산을 대체 투자 자산군으로 편입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크립토 위크'는 단순한 산업 규제 논의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금융 주도권을 둘러싼 미국의 국가적 비전과 정치 철학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역사적인 현장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당장 이번 주 의회에서 내려질 결정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의 미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전망이다.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 그리고 규제 당국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워싱턴의 '운명의 한 주'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