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이 11일 자회사 언노운 월즈 엔터테인먼트의 경영진 교체와 '서브노티카2' 출시 일정 연기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해임된 언노운 월즈 창업자 찰리 클리블랜드가 최근 소송 제기로 맞불을 놓은 후라 시선이 집중된다.
단순한 비즈니스 갈등 표출의 단계를 넘어선다는 평가다. 성공적인 인디 개발 신화가 거대 자본과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어두운 균열을 드러낸 사건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무엇보다 34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어닝아웃(Earn-out)’ 보상금을 둘러싼 양측의 엇갈린 주장은 이제 게임 산업 M&A 역사에 기록될 중대한 분석 사례가 될 전망이다.
사건의 재구성
크래프톤의 성명은 ‘1200만 서브노티카 이용자에게’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며 이는 분쟁의 본질이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강조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성명의 핵심은 ‘책임 방기’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초기 인수금 5억달러와 별개로 성과급 2억5000만달러의 약 90%를 전 경영진 3인에게 할당하며 ‘서브노티카2’의 성공적인 개발을 기대했지만 이들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래프톤은 ‘개인 영화 프로젝트’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며 찰리 클리블랜드의 도덕적 해이를 직접 겨냥했다. ‘문브레이커’ 실패 이후 프로젝트에 복귀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주장과 맞물려 리더십의 공백이 개발 지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지적하는 셈이다. 크래프톤은 스스로를 IP의 가치를 지키고 남은 개발팀의 노력을 보상하려는 ‘책임 있는 관리자’로 포지셔닝하며 찰리 클리블랜드의 행동을 무책임한 비즈니스 공백으로 몰았다.
찰리 클리블랜드도 기세가 등등하다. 1일(현지시간) 해고된 후 ‘소송 제기’를 통한 단호한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레딧을 통해 ‘내 인생의 역작’ ‘우리 영혼은 게임이 준비됐다는 것을 안다’ 등 감성적인 표현의 성명을 발표하며 판을 흔들었다.
자신이 돈 때문에 게임을 만드는 장사꾼이 아니라 작품에 영혼을 바친 창작자임을 호소하는 전략이다. 그는 성과급의 90%를 독식하려 했다는 크래프톤의 주장을 ‘전혀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일축하며 과거에도 팀과 이익을 공유해왔다고 강조했다.
거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창작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당한 피해자의 서사다. 그는 출시 연기가 게임의 완성도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성과급 지급을 회피하기 위한 크래프톤의 ‘의도적인 계약 불이행’이라고 주장하며 크래프톤에 맞서는 투사의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투영하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분쟁의 핵심은 ‘어닝아웃’이라 불리는 성과 연동 보상금 제도에 있다. 인수 후에도 창업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도록 설계된 ‘황금 수갑’이지만 동시에 목표 달성 여부나 경영 방식을 두고 갈등이 터져 나오는 가장 흔한 도화선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은 ‘서브노티카2’의 상태에 대한 극명한 시각차로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크래프톤은 현재 빌드가 콘텐츠 볼륨 부족 등 ‘품질 미달’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클리블랜드는 ‘서브노티카’ 시리즈의 성공 공식이었던 ‘얼리 액세스’를 시작하기에 충분한 상태라고 맞서는 셈이다.
‘품질’이라는 주관적인 잣대가 계약 이행의 정당성을 다투는 무기가 된 셈이다.
한편 법정 다툼이 시작된 이상 이제는 입증의 책임 문제가 남는다. 크래프톤은 전 경영진의 책임 방기와 리더십 부재가 실제로 프로젝트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해야 할 전망이다. 경영진 교체가 IP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클리블랜드 측은 크래프톤의 출시 연기 결정이 품질 문제가 아니라 오직 성과급 지급을 회피하려는 ‘악의적인 의도’에서 비롯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매우 어려운 법적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게임 IP 자체와 팬들이라는 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개발사와 퍼블리셔의 공개적인 분쟁은 게임의 미래에 대한 신뢰를 뿌리부터 흔든다"며 "팬 커뮤니티는 존경하던 창작자의 편에 서야 할지 IP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거대 자본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깊은 혼란에 빠진 상태"라고 말했다. 일부는 불매 운동을 거론하고 일부는 소송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서브노티카’라는 이름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는 점이다. 소송의 결과와 무관하게 이 과정 자체가 팬들에게는 큰 실망과 피로감을 안겨줄 전망이다.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이 훼손된 상황에서 과연 ‘서브노티카2’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아가 이번 사태는 게임 산업 내 인수합병이 가진 내재적 위험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창의성을 기반으로 성장한 자율적인 개발 문화와 실적과 마일스톤을 중시하는 거대 기업의 시스템이 충돌할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