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의 유심(USIM) 해킹 사태가 촉발한 '위약금 면제' 선언이 이동통신 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나비효과로 번지고 있다. SKT 가입자의 대규모 이탈, 즉 '엑소더스'가 현실화하자 KT와 LG유플러스는 공격적인 가입자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시장은 순식간에 과열 양상으로 치달았다.

결국 규제 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소비자 불안을 조장한다"며 '공포 마케팅'과 불법 보조금 문제에 칼을 빼 들고 이통3사 전체를 대상으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통신 시장에 퍼펙트 스톰이 불어오고 있다.

사진=S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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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도 넘은 마케팅에 '엄중 경고'…SKT는 KT 신고
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방통위는 7일 오전 SK텔레콤·KT·LG유플러스 3사 마케팅 담당 임원을 긴급 소집했다.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친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장 과열이 재현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특히 유심 해킹 사태를 이용한 비정상적 마케팅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실제로 경쟁사들은 "해킹은 내 정보를 털기 시작해 나중엔 내 인생이 털리는 것", "지금은 내 번호가 우리 아이에게도 위험이 될 수 있다"와 같은 문구가 담긴 내부 고객 대응 시나리오까지 마련하며 가입자 전환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KT와 LG유플러스 대리점들은 매장 전면에 'SKT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 'SK탈출기회' 등의 자극적인 문구를 내걸고 호객 행위에 나섰다.

결국 SK텔레콤은 KT를 방통위에 공식 신고했다. KT 유통망이 도를 넘은 공포 마케팅으로 소비자 불안을 조장하고, 단말기유통법을 위반한 불법 보조금을 살포하고 있다는 것이 신고의 골자다. 다만 KT 측은 "해당 문건은 본사 차원이 아닌 일부 지역 유통망에서 자체 제작한 교육용 자료로 파악됐다"며 "부사장 명의의 공문을 통해 불건전한 마케팅 자제를 요청하며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방통위의 경고 배경에는 수치로 증명된 시장 과열이 있다. SK텔레콤이 위약금 면제를 공식화한 지난 5일, 단 하루 만에 1만 660명의 가입자가 SKT를 떠나 KT(5,083명)와 LG유플러스(5,577명)로 번호를 이동했다. 이는 최근 일평균 이탈 규모였던 5,000명 선의 두 배가 넘는 수치로, 위약금 면제가 가입자 이탈의 강력한 기폭제가 됐음을 보여준다.

가입자 이탈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SK텔레콤은 해킹 사고 이후 영업 정지로 묶였던 지난 5~6월 두 달 동안 KT에 약 28만 명, LG유플러스에 약 25만 명의 가입자를 뺏기며 총 64만 명이 넘는 고객을 잃은 바 있다. 이번 위약금 면제 조치가 이탈 흐름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과열 경쟁은 불법 보조금 살포로 이어졌다. 주말 사이 서울 시내 유통가에서는 출고가 135만 3,000원의 갤럭시 S25가 번호이동 조건으로 5만~15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팔렸다. 공시지원금 50만 원을 제외하더라도 약 80만 원에 달하는 불법 보조금이 추가로 지급된 것이다. 다만, 유선 인터넷이나 TV 등과 결합된 장기 가입 고객의 경우 위약금 보상이 제한적이라 실제 이탈 규모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SKT, 5000억원 패키지로 '집토끼' 사수 총력전

대규모 가입자 유출 위기에 직면한 SK텔레콤은 '출혈'을 감수하며 방어에 나섰다. 회사는 올해 연결 기준 매출 전망을 8,000억 원이나 줄이는 등 손실을 각오하고 약 5,000억 원 규모의 '고객 감사 패키지'를 발표했다.

패키지에는 ▲8월 통신요금 50% 할인 ▲연말까지 매월 데이터 50GB 추가 제공 ▲뚜레쥬르, 도미노피자 등 인기 제휴사 할인율을 50% 이상으로 높인 T멤버십 프로그램 등이 포함됐다.

특히 이 모든 혜택의 적용 기준 시점을 위약금 면제가 끝나는 7월 15일 0시로 설정해 기존 '집토끼'를 지키는 동시에 경쟁사에서 넘어오는 신규 고객까지 유치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을 깔았다. 회사를 떠났던 고객이 6개월 내에 재가입할 경우 기존 멤버십 등급과 가입 연수를 모두 복원해주는 파격적인 '당근책'도 제시했다.

다만 SK텔레콤의 보상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기만 한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진정한 '번호이동 대목'을 교묘하게 피했다"며 '생색내기용 꼼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위약금 면제 기한(7월 14일)이 ▲삼성전자의 신형 폴더블폰 '갤럭시 Z폴드7·플립7' 사전예약(7월 15일)과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폐지(7월 22일) 직전에 끝나기 때문이다. 

단말기 교체 수요가 폭발하고 보조금 상한선이 없어지는 시기를 피해 손실을 최소화했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업계 관계자는 "한정된 가입자를 두고 벌이는 통신 3사의 경쟁은 이제 막 1라운드를 마쳤을 뿐"이라며 "위약금 면제 마감, 신형 스마트폰 출시, 단통법 폐지라는 거대한 변수들이 기다리는 7월에는 그 누구도 승자를 예측할 수 없는 '퍼펙트 스톰'이 시작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