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디지털 달러'의 법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사적인 첫발을 떼자, 월가의 거인 JP모건이 즉각 응답하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와 신규 상품 출시를 넘어, 가상자산이 마침내 제도권 금융의 심장부로 편입되는 거대한 구조적 전환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규제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거대 기관 자본의 향방은 이제 시장의 단기적 등락을 넘어 산업의 성숙도와 미래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가 되고 있다.

코빗 리서치센터가 4일 발간한 심층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미 상원을 초당적 지지로 통과한 '지니어스(GENIUS) 법안'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축이다. 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최초의 연방 규제로, 발행사에게 ▲100% 달러 준비금 보유 ▲대규모 발행사에 대한 정기 감사 ▲투자자 파산 보호 등 명확하고 엄격한 의무를 부과한다. 이는 잠재적 리스크를 통제하고 금융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정책적 의도와 함께, 달러의 지배력을 디지털 시대에도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 법안이 상원 문턱을 넘은 바로 다음 날, JP모건은 기관 전용 스테이블코인 'JPMD(JPMorgan Deposit Token)'를 전격 출시하며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전을 보여주었다. JPMD는 단순히 지급결제 수단을 넘어 이자까지 지급하는 '디지털 예금'의 성격을 띠며, 코인베이스의 퍼블릭 블록체인 '베이스(Base)' 위에서 허가된 기관만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GENIUS 법안이 연준의 직접 발행(CBDC) 대신 민간의 역할을 인정한 규제 방향성과 정확히 일치하며, JP모건이 단순한 시장 참여자를 넘어 '디지털 머니 발행자'로서의 역할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러한 제도적 격변 속에서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 흐름은 단기적 변동성과 장기적 축적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흐름으로 명확히 나뉘고 있다.

단기성 기관 자금은 거시 경제의 미세한 바람에도 민감하게 흔들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트코인 현물 ETF 등 관련 상품(래퍼)으로 유입된 자금은 지난 3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리스크와 경기 침체 공포가 맞물리며 46억 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4월부터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SBR)' 도입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비트코인 가격이 반등하자 자금은 즉각 유입세로 전환했고, 5월에는 한 달간 69억 8,700만 달러가 순유입되며 강한 회복세를 보였다.

반면 CME 선물시장에서는 관세 충격 이후 미체결 계약이 감소하는 등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포지션이 유지되었다. 이는 단기 자금이 ETF를 통한 현물 수요로는 가격을 지지하면서도, 선물시장을 통한 적극적인 방향성 베팅에는 주저하며 거시 경제 이벤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양면적 시장 구조를 보여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장기적 비전을 가진 기관 자금은 시장의 단기 변동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자산을 축적하며 구조적인 회복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분석 기간 동안 가상자산(크립토) 펀드가 운용하는 총자산(AUM)은 1,67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장기 자금의 굳건한 신뢰를 증명했다. 특히 투자의 질적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된다. 자금은 인공지능(AI), 탈중앙화 물리적 인프라 네트워크(DePIN), 실물자산 토큰화(RWA)와 같이 실질적인 사용 사례를 가진 신흥 기술 섹터로 집중되었다.

사진=갈무리
사진=갈무리

미국의 대표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데이터는 이러한 기관 중심의 시장 재편을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2025년 1분기 코인베이스 전체 거래량의 80%를 기관이 차지했으며, 이는 글로벌 시장의 평균 하락률보다 낮은 방어적인 거래량 감소를 보이며 오히려 시장 점유율을 확대한 결과다.

흥미로운 점은 기관 거래 비중이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 거래에서 발생한 수익은 전 분기 대비 30%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코인베이스가 단기 수익을 일부 희생하면서까지 유동성 공급자(마켓메이커)에게 낮은 수수료와 리베이트를 제공하며, 장기적인 기관 고객 기반과 시장 인프라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미국발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는 가상자산 시장을 새로운 시대로 이끄는 분기점이다. 이는 변동성 높은 투기 자산을 넘어, 규제된 금융 시스템의 일부로서 실물 경제와 연결되는 인프라로 진화하는 과정이다.

보고서는 향후 'SAB 121' 폐지 등의 후속 조치로 전통 금융기관의 커스터디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 기관 자금의 유입 경로는 더욱 다변화되고 시장은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GENIUS 법안과 JPMD의 등장은, 미국이 '규제된 스테이블코인 기반 달러'라는 새로운 모델을 통해 디지털 자산 시대의 패권을 확립하려는 거대한 전략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