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 교체와 함께 한중 관계 개선 기대감이 커지면서, K뷰티 업계가 멈춰 있던 ‘중국 사업’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해 LG생활건강, 한국콜마 등 주요 화장품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성장 전략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현지 유통망 재정비, 대규모 투자,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도약’을 준비 중이다.
구조조정 끝낸 아모레 ‘성장 모드’ 전환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사업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올해부터는 성장 전략의 시기로 전환하며 중국 시장에서의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승환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지난 12일 롯데백화점이 대륙간백화점협회(IGDS)와 공동 개최한 ‘제16회 IGDS 월드 백화점 서밋(WDSS)’에서 “중국은 여전히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로 포기할 수 없다”며 “이제는 구조조정보다는 성장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한중 관계 개선 기대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중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정상 통화를 갖고 양국 관계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대로라면 한한령(한류 금지령)이 해제될 수 있다는 전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한한령 이전 대표적인 중국 수혜 기업으로 꼽히던 아모레퍼시픽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구조조정의 효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한한령 이후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하고, 온라인 플랫폼 중심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등 유통 채널을 재정비하며 중국 사업의 수익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8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대규모 적자 구조를 정리한 만큼 다시 중국 사업을 성장 궤도에 올려놓을 시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김승환 대표 역시 “중국 내부 소비가 살아날 조짐이 보이고, 양국 관계도 개선되는 분위기”라며 “대규모 적자 구조를 정리한 만큼 성장 모멘텀을 찾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이를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상하이 공장의 가동률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2002년 준공한 상하이 공장은 2014년 약 10만㎡ 규모로 확장됐으나 한한령과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가동률이 10% 수준까지 떨어졌다. 사실상 셧다운 상태가 지속됐던 상하이 공장 생산 체제를 정상화해 늘어나는 화장품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화장품업계 ‘중국 재공략’ 전략 가속

아모레퍼시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한중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업계 전반에 중국 사업 전략을 재정비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국내 대표 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인 한국콜마는 최근 티몰글로벌과 업무협약을 맺고, K뷰티의 중국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티몰글로벌은 약 8억8000만명의 월간 활성 이용자를 보유한 중국 1위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한국콜마는 이번 협업을 계기로 고객사의 중국 진출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과 글로벌 플랫폼 연계를 지속 확대한다. 또한 유통 채널과 파트너십을 강화해 K뷰티 산업의 해외 확장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코스맥스의 경우 중국 지역 대규모 투자로 반등을 노리는 중이다. 오는 2026년 준공을 목표로 상하이에 생산설비를 포함한 대규모 신사옥을 건립하고 있다. 신사옥은 상하이 신좡공업구 내 1만3000㎡(약 4000평) 크기 부지에 연면적 7만3000㎡(약 2만2000평) 들어서며, 한곳에서 연구, 생산, 마케팅까지 화장품 ODM 사업의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으로 조성된다.
LG생활건강은 지난달 ‘더후’ 천기단 신제품의 글로벌 출시를 기념해 중국에서 대규모 론칭 행사를 열었다. 이번 행사에는 중국·아시아 지역 주요 뷰티·패션 매거진과 언론사 관계자, 인플루언서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또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티몰과 숏폼 플랫폼 틱톡, 주요 백화점 인사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외에도 제이준코스메틱은 ‘중국판 아마존’으로 불리는 징둥닷컴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온라인 입점을 넘어 신제품 개발, 판매, 마케팅 등 중국 진출의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씨앤씨인터내셔널 또한 늘어나는 중국 수요에 대비해 생산 능력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여전히 규모가 크고 성장 잠재력이 높아 완전히 포기하기는 어렵다”며 “업계 전반이 한중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을 기회로 삼아 다시 성장 모멘텀을 만들고자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전략을 새로 짜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중국 특수 효과’ 유효할까…리스크 여전
증권가 역시 중국 화장품 소비 회복 조짐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4월 화장품 소매판매액은 309억위안으로 전년 동월 대비 7.2% 늘었다. 올해 5월 화장품 소매판매액 역시 435억위안으로 4.4% 증가하며 화장품 소비가 되살아나고 있다.
오린아 LS증권 연구원은 “중국 내수 경기 회복, 프리미엄 라인업 확대, 현지 채널 최적화, 면세점 최악 국면 회복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하반기에는 화장품 관련 업종 전반이 뚜렷한 턴어라운드를 시현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 중 특히 중국 시장에서의 소비 모멘텀이 업종 내 주가 리레이팅을 이끄는 핵심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라고 밝혔다.
박종대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중국 사업에 불확실성이 많이 해소됐다”며 “최근 중국 소비·화장품 수출 회복, 한한령 해제 등으로 기대감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낙관론만 따르기엔 리스크도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지난 1분기 GDP와 4~5월 소비판매액이 예상치를 상회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국산 브랜드를 선호하는 ‘궈차오(애국 소비)’ 트렌드도 한국 기업에는 부담이다. 결국 한중 외교 무드가 좋아지더라도 현지 규제 리스크, 로컬 브랜드 약진, 소비 트렌드 변화 등을 고려하면 과거와 같은 ‘중국 특수’를 누리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화장품업계는 중국 시장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일본·미국·유럽 등 해외 시장으로 판매 채널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병행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앞서중국 시장에서 한한령과 코로나19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불확실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일단 중국 시장에서 힘을 키울 수 있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만큼 성장 전략을 추진하면서도 언제든 돌발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일본, 미국 등 다른 해외 시장을 동시에 강화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고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