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후 미분양이 20개월째 증가세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참고 사진. 사진=연합뉴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후 미분양이 20개월째 증가세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참고 사진.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지방 미분양 해소를 위해 17년 만에 '환매조건부 매입' 정책을 꺼내들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준공 전 미분양 주택 1만 가구를 분양가의 50%에 사들인 뒤 준공 후 건설사에 되파는 방식이다. 미분양 적체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지방 건설사에 숨통을 틔워주는 동시에 자구 노력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건설사 유동성 지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면서도 근본적인 미분양 해소를 위해서는 세제 혜택과 지역경제 활성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건설업계도 경기 활성화를 위해 취득세와 양도세 감면 등 세제 혜택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에 미분양 안심환매 정책 추진을 위해 3000억원을 배정했다. 환매조건부 매입 사업에 투입되는 자금은 2조4000억원이다. 나머지 2조1000억원은 HUG가 채권 발행 등으로 자체 조달할 예정이다.

4월 전국 미분양 주택. 사진=국토교통부
4월 전국 미분양 주택. 사진=국토교통부

지방 미분양 5만가구 누적…지방 건설사 잇달아 폐업·법정관리

미분양 주택은 지방을 중심으로 쌓이고 있다. 4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7793가구로 집계됐다. 이 중 지방 미분양 물량이 5만1888가구로 전체의 76.5%를 차지했다.

특히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2만6422가구로 전월 대비 5.2% 증가했다. 2013년 8월(2만6453가구) 이후 11년 8개월 만에 최대치다. 2023년 8월부터 20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의 82.9%는 지방(2만1897가구)에 쌓여 있다.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지방에 거점을 둔 건설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거나 문을 닫는 곳이 늘고 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6월 24일 기준 종합건설업 폐업 신고는 311건으로 전년(279건) 대비 11.5% 늘었다. 이 중 지방에 주소를 둔 회사는 170곳으로 절반 이상이다. 또 올해 들어 시공능력평가 200위권 내 건설사 11곳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대부분 지방에 거점을 둔 중견 건설사다.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 사업 개요. 자료=국토교통부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 사업 개요. 자료=국토교통부

3년간 1만가구 매입…LH 매입보다 규모 커

매입 대상은 공정률 50% 이상이며, 분양보증에 가입한 지방 아파트다. 매입 규모는 2028년까지 총 1만가구다. 연간 지방 미분양주택 3000가구에서 4000가구를 매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매입 방법은 HUG가 분양가의 50%로 사들인 뒤 준공 후 1년 안에 매입가격에 세금, 조달 비용을 더해 건설사가 환매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분양가 4억원의 지방 미분양 단지를 HUG가 2억원에 매입한 경우. 시공사가 할인분양 등을 통해 미분양 매물을 3억원에 팔 수 있게 되면 HUG에 2억원과 이자 비용을 더한 금액을 지불하고 환매할 수 있다. 기간 안에 환매가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가구는 HUG 소유로 넘어가고 공매 등을 통해 처분된다.

정부는 그간 지방 미분양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지난 2월 '지역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지방 미분양 아파트 직접 매입과 기업구조조정(CR) 리츠 출시 지원 등의 대안을 내놨다.

하지만 당시 LH 매입 물량이 3000가구 규모로 적은 데다 매입 상한가 규정 등의 영향으로 누적된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환매조건부 매입은 LH 매입 목표의 3배가 넘는 1만 가구 규모로 확대된 것이다.

과거 성과 재현되나…당시 세제 혜택 병행

정부는 앞서 2008~2013년에도 환매조건부 매입 사업을 시행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경기침체가 이어졌고 미분양도 크게 늘었다. 전국 미분양 주택은 2009년 3월 16만5641가구로 정점을 찍었다.

HUG의 전신인 대한주택보증이 3조3000억여원을 들여 1만9000여호를 매입했다. 환매조건부 매입이 미분양 해소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대부분 환매가 이뤄져 건설사들의 유동성 지원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는 취득세와 양도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이 동시에 적용됐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양도세 감면 등을 포함한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2009년 2월부터 1년간 취득하는 미분양 주택을 5년 내 양도할 경우 양도세를 면제하는 정책을 폈다. 서울을 포함한 전국 미분양 주택에 대한 취득·등록세도 50% 감면했다.

국토연구원이 2023년 발간한 '미분양 주택 변동 원인과 대응방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과 2010년 취득세와 양도세 감면이 동시에 적용된 점이 미분양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연구원은 미분양 주택 해소는 공급자 지원과 수요자 지원 정책이 복합적으로 적용될 때 효과가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2010년과 2011년 지방의 주택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는데, 이 같은 주택시장의 회복이 미분양 해소에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세제 혜택·지역경제 활성화 병행 필요"

전문가들은 환매조건부 매입이 건설사 유동성 공급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이번 정책만으로는 미분양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활성화를 통한 지방 부동산 시장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과거 금융위기 이후에 환매조건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고 환매했던 적이 있어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유동성이 문제가 되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긴급한 유동성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지방 미분양이 해결되기 위해선 지방 경기가 살아나야 한다"며 "미분양은 지역경제와 밀접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방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산업정책과 연계해 수요를 늘릴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도 "미분양은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면 공공의 역할과 상관없이 해소될 문제"라며 "성장률을 더 진작시키기 위한 정부의 거시적인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세제 혜택, 다주택자 규제 완화 같은 수요 진작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세금으로 미분양을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덕례 실장은 "지방 주택에 대해서는 보유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며 "다주택자 규제로 한 채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지방 주택을 여러 채 처분하고 서울 상급지를 사는 구조가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매입 물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미분양 물량 해소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수요가 있는 곳을 저렴하게 매입해 예산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분양은 취득세와 양도세 감면을 통해 시장에서 소비되도록 해야 한다"며 "세금을 투입해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당시 환매조건부 미분양 주택 매입 현황. 사진=국토연구원 '미분양주택 변동원인과 대응방향 연구' 보고서
금융위기 당시 환매조건부 미분양 주택 매입 현황. 사진=국토연구원 '미분양주택 변동원인과 대응방향 연구' 보고서

건설업계도 세제 혜택 요구…새 정부 수용할까

건설업계도 주택 시장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건설협회는 6월 4일 한승구 협회장 명의로 '제21대 대통령 취임 건설업계 환영 성명'을 내고 건설산업 관련 제도 개선 방향을 제언했다. 협회는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해 ▲지방 미분양 취득세 50% 경감 ▲5년간 양도세 전액 감면 ▲미분양 아파트 매입 규모·면적 확대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정부가 업계에서 요구하는 세제 지원 정책을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당시 부동산 세제 관련 정책에 '가급적 손대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업계에서는 새 정부가 지방 미분양 해소와 건설경기 회복을 위해 보다 과감한 세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사례처럼 환매조건부 매입과 취득세·양도세 감면이 병행될 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