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품인 줄 알았는데, 가짜였어요. 수법도 더욱 교묘해지고 있어 구분도 어려워요.”
최근 쿠팡에서 한국인 판매자가 올린 수분크림을 구입한 A씨는 배송받은 제품이 가품으로 확인돼 충격을 받았다. 기존에 쓰던 정품과 비교해도 패키지부터 용기, 내용물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패키지 색상과 제품 묽기에서 미묘한 차이를 느껴 본사에 문의한 끝에 가품 판정을 받은 것이다. A씨는 “이전에는 한국인이라는 판매자 정보만 꼼꼼히 확인하면 어느 정도 가품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소용이 없다”고 호소했다.
K뷰티부터 K푸드까지 ‘짝퉁(가품)’이 기승을 부리면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직접 나서 소비자에게 주의보를 내리고, 정부도 위조품 차단 예산을 두 배로 늘리며 대응에 나섰으나 여전히 단속과 사후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품 적발 건수 ‘500만건’ 눈앞
23일 인공지능(AI) 기반의 지식재산권(IP) 통합 솔루션업체 마크비전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한국 식품·뷰티·패션 기업의 위조 상품은 447만건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적발한 위조 상품은 이미 225만건에 달한다.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올해 연간 위조 상품은 500만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 피해가 심각한 건 뷰티 분야다. 지난해 가품으로 적발된 K뷰티 제품은 111만5816개로 집계됐다. 2022년(21만1963건)과 비교하면 5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과거에는 가품 피해가 주로 고가 명품 화장품에 국한됐지만, 최근에는 가격대가 비교적 저렴한 신흥 K뷰티 브랜드까지 위조 상품의 표적이 되고 있다. 쿠팡, 네이버스토어, G마켓과 같은 이커머스 플랫폼부터 오픈마켓, 개인 SNS 계정까지 판매 경로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업계에서는 가품이 워낙 많고 유통망이 광범위해지다 보니 관리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소비자들이 ‘국내 판매자 등록’ 혹은 ‘병행수입’을 신뢰하고 구매하는 점을 악용해 가품 유통 방식이 보다 교묘해지고 있어 혼란이 커지는 분위기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가격이 높은 럭셔리 브랜드 위주로 가품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1만원대 저가 화장품 브랜드까지도 피해를 보고 있다”며 “수법도 교묘해지고 유통망도 넓어진 만큼 소비자가 쉽게 정품 여부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에이피알 역시 최근 오픈마켓을 통해 메디큐브의 공식 자사몰이나 판매처 내 상세 페이지 이미지를 복사해 정품 판매처인 것처럼 연출한 후 위조 제품을 배송하는 피해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조제품은 메디큐브 로고를 무단 사용하고 패키지와 용기도 정품과 유사하게 제작돼 소비자가 정품과 가품을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려웠다. 다만 제형이 다르거나 제품명·설명 문안 내 오타와 맞춤법 오류가 발생하는 등 차이가 드러났다. 법적으로 기재가 의무화된 ‘화장품판매책임업자’ 정보란에는 존재하지 않는 국내 주소가 적혀 있었다.
K푸드를 모방한 사례도 속출되고 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대표적이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짝퉁 불닭볶음면을 소개하며 “포장지의 캐릭터 모습·글씨체도 비슷하고, ‘KOREA 마크’와 ‘할랄 마크’까지도 붙어 있어서 소비자들이 진품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유심히 살펴봐야 삼양식품 마크 대신 빙고원(BINGOONE)이라는 기업명이 들어가 있는 점과 뒷면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하는 '‘MADE IN P.R.C’(People’s Republic of China)라는 약자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총력 대응에도 한계 여전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내 기업들도 소비자 피해 주의보를 발령하고 위조 상품 감시 체제를 강화, 법적 조치를 검토하는 등 가품 근절을 위해 직접 발벗고 나섰다.
에이피알의 경우 메디큐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위조 제품 관련 소비자 피해 예방 안내’를 게재하며 소비자에게 공식 판매처를 통한 구매를 당부했다. 동국제약이 운영하는 화장품 브랜드 센텔리안24는 위조 제품과 정품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안내자료를 마련해 소비자들에게 배포했다. 아울러 오픈마켓을 포함해 온라인 유통 채널을 대상으로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위조 제품 판매자 대상 법적 대응을 통해 소비자 보호에 돌입했다.
삼양식품 역시 짝퉁 불닭볶음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김동찬 삼양식품 대표는 밀양 제2공장 준공식에 앞서 중국산 짝퉁 불닭볶음면에 대해 언급하며 “국내를 비롯해 해외 각국 법인에서 지적재산권(IP)과 관련해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이커머스 플랫폼도 대응에 나섰다. 쿠팡은 가품 판매 방지를 위해 자체 알고리즘으로 가품 의심 상품 등록을 차단하고 IP 3회 침해 시 판매자 계정을 정지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11번가 또한 사전에 가품 이력이 있는 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걸러내고 있으며, G마켓의 경우 ‘위조품 필터링’ 시스템을 통해 판매 부적합 상품 판매를 예방하고 있다.
다만 이같은 노력에도 업계에서는 기업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정책 지원이 동반돼야 유의미한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K뷰티와 K푸드에 대한 세계적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브랜드 신뢰를 지키기 위한 실효성 있는 보호 대책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K뷰티나 K푸드의 해외 인기가 높아질수록 가품 피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기업이 자체적으로 가품 단속과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한 만큼,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과 해외 기관과의 공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위조품 차단 지원 예산을 2023년 13억원에서 올해 26억원으로 두 배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특허청은 수출 기업이 해외에서 상표·디자인 등 IP 분쟁에 적기 대비·대응할 수 있도록 ‘K브랜드 분쟁 대응 전략’을 제공하고 있다. 해외 이커머스에서 위조 제품을 모니터링하고 판매 게시글을 삭제하는 등 위조 제품 차단 지원에도 나서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