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선포한 '세계 3대 AI 강국' 비전이 '전력 부족'이라는 거대한 암초에 직면했다. AI의 심장인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가 요구하는 천문학적인 전력량과, 정부가 약속한 친환경 에너지 전환 목표 사이의 모순이 국가적 딜레마로 떠올랐기 때문이이다. 이런 가운데 과거 탈원전 기조를 보였던 야당까지 ‘SMR 육성 특별법’을 발의하며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여야를 막론한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업계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를 IT가 아닌 전력 인프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며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냉각 기술부터, 전력망 부담을 덜 분산에너지 정책,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양자컴퓨팅(QAI)까지, AI 대한민국의 미래를 건 총체적 해법 모색이 시작됐다.

광주 AI 데이터센터. 사진=연합뉴스
광주 AI 데이터센터. 사진=연합뉴스

AI 비전의 에너지 역설
16일 업계 등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100조 원 AI 정책'을 통해 글로벌 AI 리더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AI의 물리적 기반인 '전력'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다. 전문가들은 "AI 데이터센터의 경우 기존보다 랙당 전력 밀도가 2~5배 높은 40~100kW+ 수준을 요구한다"며 "이는 1년 365일, 24시간 중단 없는 고품질의 전력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AI발 전력 위기는 이미 현실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9년까지 49.4GW로 폭증하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최소 10GW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신형 원전(1.4GW급) 약 40기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데이터센터는 이미 전력 계통에 과부하를 주고 있으며, 지역 분산을 시도해도 전자파·열섬 현상 등을 우려하는 주민 반발에 부딪히는 실정이다.

결국 막대한 전력량을 확보하기 위한 관련 인프라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동시에 추진하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정책과 충돌을 일으킨다.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만으로는 AI 경제가 요구하는 '항상성'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은 업계의 중론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RE100협의체조차 "데이터센터가 재생에너지를 직접 100% 사용하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며 가상전력구매계약(Virtual PPA) 등 간접적인 방식을 제언할 정도다. 결국 정부는 한편으로는 막대한 안정적 전력을 요구하는 산업을 키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급이 불안정한 에너지원에 의존하려는 모순적 상황에 처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술적·정책적 대안이 주목받고 있다.

먼저 냉각 기술의 혁신이다. 현재 GPU 등 고발열 서버의 열을 식히기 위한 전력 소모가 급증하면서 기존 공랭식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공기보다 열전도율이 20배 높은 액체에 서버를 직접 담그는 '액침냉각' 기술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전력효율지수(PUE)를 1.03 이하로 낮춰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관련 기술은 가장 현실성이 있는 대안으로 여겨지며 크게 각광을 받는 중이다.

분산에너지 특구 제도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실제로 전력거래소는 전력 보강의 방안으로 지역별로 발전사업자와 데이터센터 등 수요자가 직접 전력 계약을 맺는 '분산에너지 특구'를 해법으로 제시한 상태다. 이를 통해 수도권 전력망의 부담을 덜고, 데이터센터는 보다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편 거대한 전력 공백을 메울 가장 유력한 카드로 SMR도 눈길을 끌고 있다. 원자력 발전을 통해 AI 전력량을 커버하자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이 'SMR 개발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하며 급물살을 탔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 야당이 먼저 SMR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셈이다. 이는 SMR이 정파적 논쟁을 넘어 국가 생존을 위한 '초당적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는 SMR 개발 기업에 행정·재정적 지원을 체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미 한국수력원자력은 2028년 국산 'i-SMR'의 표준설계인가를 목표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뉴스케일파워의 SMR 사업에 2조 원 규모의 핵심 기자재를 공급하는 등 실질적 성과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특별법 발의로 SMR 황금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안정적 전력을 찾아 원전 옆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의 행보와도 일치한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원전 해체 비용,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비용 등 '숨겨진 비용'과 안전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경직된 'RE100' 대신 원자력을 포함한 모든 무탄소 에너지원을 인정하는 'CF100(Carbon-Free 100%)'이 가장 현실적인 정책 프레임워크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탈탄소라는 대의를 지키면서 AI 강국에 필요한 안정적 기저 전력을 확보하는 길을 열어준다. 재생에너지가 변동 부하를, 원자력이 기저부하를 담당하는 상호보완적인 에너지 믹스를 통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기후변화 대응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갈무리
사진=갈무리

양자컴퓨팅(QAI)의 부상
장기적으로 AI의 전력 소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게임 체인저'로 양자컴퓨터도 주목받고 있다. 양자컴퓨터와 AI를 결합한 'QAI(Quantum AI)'는 연산 속도를 극대화하면서 전력 소모는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 퀀티넘의 신형 양자컴퓨터 'H2-1'은 특정 알고리즘 테스트에서 전통적 슈퍼컴퓨터 대비 전력 소모량이 3만분의 1에 불과했으나 성능은 100배 이상 높았다. 캐나다 D-웨이브는 슈퍼컴퓨터로 100만 년 걸릴 연산을 양자컴퓨터로 20분 만에 끝내기도 했다.

이러한 잠재력 덕분에 지난해 양자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캐피털 투자는 19억 달러(약 2조 6천억 원)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보잉은 신소재 개발에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는 등 상용화 시도도 활발하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QAI는 AI 시대의 에너지 딜레마를 해결할 궁극적 해법이 될 잠재력을 품고 있다. 그러나 아직 상용화 측면에서는 갈 길이 먼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