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일어서는 사자 작전(Operation Rising Lion)'과 이란의 대규모 보복 공격으로 중동이 일촉즉발의 전면전 위기로 치달았다. 13일(현지시간)부터 서로의 본토를 직접 타격하며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그림자 전쟁'의 암묵적 규칙은 완전히 무너졌다.
현재의 극심한 적대감은 마치 고대부터 이어진 숙명처럼 보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 양국은 중동의 지정학적 지형 속에서 둘도 없는 전략적 동맹이었다. 이념이 아닌 냉철한 현실주의에 기반했던 과거의 동맹에서부터 핵을 둘러싼 비밀 전쟁, 그리고 마침내 공공연한 무력 충돌에 이르기까지 이란과 이스라엘의 복잡하고 위험한 관계사를 살펴보자.

예상 밖의 동맹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이란과 이스라엘은 긴밀한 동맹 관계였다.
물론 이들의 파트너십은 감정이 아닌 냉철한 안보적 계산에 기반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란은 유엔 분할안에 반대표를 던졌으나, 이는 아랍 여론을 의식한 제스처에 가까웠다. 2년 뒤인 1950년 이란은 이스라엘을 사실상 발 빠르게 국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결정의 배경에는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의 '주변부 독트린(Periphery Doctrine)'이 있었다. 이는 적대적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이 생존하기 위해 비(非)아랍 주변부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아랍 패권주의를 견제해야 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페르시아 민족 중심의 시아파 국가였던 이란의 팔레비 왕조에게 이 전략은 매력적이었다.
이집트의 범아랍주의와 북쪽의 소련을 공동의 위협으로 인식한 양국은 자연스러운 전략적 파트너가 되었다. 유대 국가 이스라엘과 페르시아계 시아파 군주국 이란은 지역의 '이방인'으로서, 아랍 수니파 주류에 맞서 고립을 극복하고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현실정치의 산물로 손을 잡았다.
양국의 동맹은 구체적인 협력으로 이어졌다. 이란산 원유를 이스라엘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송유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란은 수에즈 운하를 우회하는 안정적인 수출로를, 이스라엘은 에너지 안보와 통과 수수료 수입을 확보했다.
군사 및 정보 협력은 더욱 깊고 은밀했다. 1977년부터 진행된 탄도 미사일 공동 개발 프로젝트 '프로젝트 플라워(Project Flower)'는 최고 수준의 신뢰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그리고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당시 이스라엘은 이라크의 핵 개발을 더 큰 위협으로 보고 이념적 숙적이 된 이란에 대규모 무기를 공급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작은 사탄'으로 불리면서도 이란에 무기를 팔았고 이란은 '시오니스트 정권'의 무기를 받아들여 이라크와 싸웠다. 이스라엘이 1981년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한 '오페라 작전' 성공의 배후에는 이란이 제공한 결정적인 정보가 있었다. 이처럼 '나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냉혹한 논리가 이념을 압도했으나, 이 실용주의는 곧 이란의 혁명적 이데올로기 앞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데올로기의 역내 재편, 그리고 그림자 전쟁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은 양국 관계를 파멸로 이끈 결정적 사건이다.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신정 체제는 미국을 '거대한 사탄',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으로 규정했다.
반미·반시오니즘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혁명 정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기둥이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테헤란의 이스라엘 대사관을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에 넘겼다. 외부의 적을 설정하는 것은 혁명 이후 혼란한 내부를 결속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이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 문제도 '무기화'했다. 이 문제를 단순한 민족 분쟁이 아닌 모든 무슬림의 종교적 의무로 재규정하며 이슬람 세계의 지도국이 되려 했다. 매년 '알 쿠드스의 날(Quds Day)'을 제정해 대규모 반이스라엘 시위를 조직하며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가장 열정적인 후원자를 자처했다. 이로써 양국의 갈등은 국가 간 분쟁을 넘어 이념적 성전(聖戰)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다만 1990년대부터 양국은 직접 충돌을 피하며 중동 전역을 무대로 치열한 '그림자 전쟁(Shadow War)'을 벌였다. 이란은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이르는 대리 세력(proxy) 네트워크, 이른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구축했다.
이란은 이들에게 자금, 첨단 무기, 군사 훈련을 제공하며 이스라엘을 여러 전선에 묶어두고, 이스라엘 본토 공격을 억제하는 '불의 고리(Ring of Fire)' 전략을 구사했다. 이란 본토가 공격받을 경우 대리 세력들이 즉각 이스라엘을 공격해 다중 전선을 형성하게 하는 전략적 깊이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대리 세력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다.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스라엘 북부 전선을 위협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수니파 조직인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PIJ)에 자금과 로켓 기술을 이전하며 이스라엘 남부를 향한 지속적인 소모전을 지원했다. 또한 예멘의 후티 반군에게 장거리 미사일과 드론 기술을 지원해 홍해 항로를 위협하는 제3의 전선을 열었고, 이라크와 시리아의 시아파 민병대를 통해서는 이란에서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육상 보급로를 확보했다.
이에 맞서 이스라엘은 '전쟁과 전쟁 사이의 전쟁(MABAM)'이라 불리는 저강도 군사 작전을 수행해왔다. 전면전을 유발하지 않는 선에서 주로 시리아 내 이란의 군사 인프라와 무기 수송을 겨냥한 수백 차례의 공습으로 이루어졌다.
MABAM의 목표는 이란의 군사 역량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이란이 시리아에 새로운 공격 전선을 구축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었다. 수년간 양측은 암묵적인 교전 규칙 속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했지만, 이 균형은 어느 한쪽의 오판으로도 쉽게 깨질 수 있는 살얼음판과 같았다.

핵의 딜레마
양국 갈등의 가장 폭발적인 차원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려야 한다"고 공언하는 이란의 핵무장을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수십 년간 비밀 전쟁을 벌여왔다. 그리고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사이버 공격, 암살, 첩보, 사보타주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2010년 이란 핵시설의 원심분리기를 파괴한 '스턱스넷(Stuxnet)' 사이버 공격, 2020년 이란 군사 핵 프로그램의 아버지 모센 파크리자데를 포함한 다수의 핵 과학자 암살, 2018년 테헤란 비밀 창고의 핵 기밀문서 탈취 작전 등이 대표적이다.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JCPOA)는 외교적 해결을 위한 중대한 시도였으나 이스라엘은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결국 2018년 미국의 일방적 탈퇴로 합의가 붕괴하자, 이란은 핵 활동을 재개하며 우라늄 농축 수준을 무기급에 근접한 60%까지 끌어올렸다. 외교적 안전장치가 사라지면서 양국은 군사적 충돌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파국
2024년. 오랜 '그림자 전쟁'은 공공연한 국가 간 무력 충돌로 비화했다.
시작은 2024년 4월 1일 이스라엘이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습하여 이란의 주권 영토를 침범한 것으로 간주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은 4월 13일 사상 처음으로 자국 영토에서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300기가 넘는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하며 교전 규칙을 파괴했다. 4월 19일, 이스라엘은 이란 이스파한 군사 기지를 정밀 타격하며 자국의 방공망 침투 능력을 과시하면서도 확전은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위태로운 균형은 2025년 6월 13일, 이스라엘이 '일어서는 사자 작전'을 개시하며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란 전역의 핵·군사 시설을 목표로 한 이 공습은 사실상의 '참수 작전'이었고, 이 과정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최고 사령관들과 다수의 핵 과학자들이 사망했다.
이란은 즉각 이스라엘 주요 도시에 향상된 미사일로 보복 공격을 감행해 일부 방공망을 뚫고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며 응수했다. 이 일련의 공방으로 서로의 주권 영토를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는 금기는 깨졌고, 양국 관계는 오판이 곧바로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공공연한 폭력의 시대로 진입했다.

잔혹한 지정학적 체스판
분쟁의 배경에는 강대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먼저 미국은 이스라엘의 필수 동맹이자 이란의 주적으로,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를 보장하면서도 중동에서의 전면전을 막으려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독자 행동은 미국을 원치 않는 전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란과는 반미 연대로 협력하면서도 이스라엘과는 시리아 내 충돌을 방지하는 실용적 관계를 유지하며, 통제된 수준의 긴장을 자국의 영향력 확대에 활용하려 한다.
중국은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서 지역 안정을 원하며, 외교적 중재를 통해 미국의 대안적 리더 이미지를 구축하려 하지만 군사적 위기 개입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사실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립은 양국 강경파의 국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적대적 공생' 관계의 측면이 있다. 외부의 적은 내부 불만을 잠재우고 체제를 결속하는 도구가 되기에 진정한 긴장 완화의 동기가 약화된다. 현재 양국은 어느 쪽도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억제 관계에 있다.
그런 이유로 향후 관계는 몇 가지 시나리오로 전망된다. 양측이 암묵적 긴장 완화에 합의하며 2024년 이전의 간접전 형태로 회귀하는 '그림자 속으로의 회귀' 시나리오가 있지만,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보다 가능성이 큰 것은 제한적인 직접 타격이 용인되는 위험한 '새로운 정상 상태'가 정착되는 시나리오다. 최악의 경우, 특정 촉발 요인으로 인해 통제 불가능한 전면전, 즉 '지역 전쟁의 문턱'을 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오판과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강대국들의 긴급한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 핵과 미사일, 대리전 활동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협상과, 중동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장기적인 지역 안보 대화체 구성이 이 위험한 악순환을 끊을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안갯속을 걷는 중동의 미래 앞에 전 세계가 숨을 죽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