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DEX 2024에 전시된 현대로템의 K2 전차 성능개량형.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KADEX 2024에 전시된 현대로템의 K2 전차 성능개량형.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K방산의 폴란드발 수주 호황 흐름이 다시 분위기를 탔다. 현대로템의 폴란드와 K2 전차 2차 납품 계약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다.

폴란드는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자 안보 위협을 느끼고 한국에 대대적 무기체계 발주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무기체계 1차 수출 계약과 K9 자주포 2차 계약 등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새로운 계약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한국의 수출금융문제와, 납품 가격과 납기를 놓고 폴란드 내부 이견 발생 등의 문제로 추가 계약 체결이 늦어진 탓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현대로템 계약 진전을 통해 K방산의 폴란드 추가 진출은 물론 인접국 진출 역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현대로템 디펜스 솔루션 탄력 받는다

10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폴란드에 K2 전차 180대를 공급하는 계약이 6월 말경 체결 예정이다. 계약 규모는 1차 수출계약의 2배 수준인 9조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1차 계약 당시에도 공급대수는 180대로 같았다. 다만 이번에는 현지 기술이전과 개량형 현지 생산, MRO(유지 정비 보수) 조건까지 붙으며 가격이 2배로 뛰었다는 후문이다. 구난전차와 교량전차 등 연계 장비도 함께 공급한다.

특히 180대 물량 중 3분의 1 수준인 63대를 폴란드 국영 방산기업 PGZ가 현지서 생산하는 폴란드형 K2PL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현대로템은 직접 공급하는 물량(K2GF)과 K2PL 물량에 대한 최종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PGZ와 폴란드 정부 사이에 납품 가격과 납기를 두고 이견이 있었으나, 최근 현지 생산 물량을 늘리기로 합의하며 협상이 재개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계약이 최종 체결되면 현대로템은 한동안 경색됐던 방산 수주 랠리를 다시 이어갈 수 있을 전망이다.

그간 현대로템 디펜스솔루션은 2023년을 마지막으로 신규 수주가 잠시 주춤했다. 현대로템의 2024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디펜스솔루션은 지난해 1분기 34억원 수주에 그치며 2023년 1분기 대비 99% 감소했다. 이런 흐름은 2~4분기에도 지속되며 매 분기 60% 이상의 신규 수주 감소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폴란드 1차 계약 물량은 순차적으로 납품되며 수주 잔고도 2023년말 5조4259억원에서 2024년말 3조8727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철도 사업부문인 레일솔루션이 대만, 모로코, 미국 등지에서 조 단위 수주를 따내면서 공백을 채웠다.

물론 업계에서는 폴란드 수출 지연은 일시적인 문제일뿐, 2차 계약이 체결된다면 탄탄한 실적이 이어질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이번에 계약 체결이 가시화되면서, 우수한 납품 능력을 바탕으로 수익 전환도 빠르게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현대로템은 1차 정식 계약 체결 직후 2개월 만에 1호 납품 물량을 공개한 바 있다.

시장에서도 이러한 기대감이 반영돼 현대로템의 주가는 10일 종가 기준 16만8300원으로 전일 대비 9.71% 급등한 채 마감했다.

배성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K2 1차 납품 물량은 올해 82대가 출고되며 완료 예정이며, 2-1차 물량 생산 속도도 줄지 않고 연속 생산이 이어지며 수출 공백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K방산 판로 넓힌다 

이번 계약 진전은 현대로템뿐 아니라 K방산의 외연 확장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소식이다. 한국은 폴란드와 40조원이 넘는 수출 계약을 체결했으나, 실제 납품은 K2를 비롯한 다양한 품목에서 정체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금융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통상 방산물자 거래는 계약 규모가 거대하고 물품 인도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무기 판매국은 구매국에게 저금리 대출, 장기 분할상환 등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수출 주체인 방산 업체들은 한국수출입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수입국을 지원하고, 향후 납품과 함께 대금을 회수한다. 폴란드 역시 국내 업체들에게 별도의 금융계약 체결을 요구한 바 있다.

한때 금융지원을 담당하는 수출입은행이 자본 한도로 인해 폴란드에 적기 금융지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뻔 했으나, 이번 계약 진전으로 미뤄볼 때 금융지원 문제에 따른 추가계약 불확실성은 해소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단순 K2 판매 진척이 아닌, 폴란드와 잔여 계약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며 “유럽이 재무장과 국방비 증액에 나서는 현재, 동유럽권을 중심으로 무기체계 추가 판매 가능성도 열렸다”고 평가했다.

일례로 현대로템은 현재 폴란드뿐 아니라 루마니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과 K2 추가 수출을 논의하고 있다. 슬로바키아로는 폴란드에서 생산한 모델을 수출하는 방안이 논의중이다.

정부 컨트롤 타워 설립·적극 외교가 관건 

다시 물꼬를 튼 K방산의 수주 랠리가 장기적 탄력을 받기 위해선 신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평가다. 결국 방산 계약은 국가 간 거래기 때문이다. 전 정권에서도 정부 차원 컨트롤타워 확립과 수출금융 제도 개선안 등 다양한 지원책이 거론됐으나, 비상계엄이 촉발한 탄핵정국으로 인해 한동안 중단됐다.

특히 유럽권과의 방산 외교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실질 안보 위협을 강하게 받는 동유럽권에서는 기존 서유럽권 주도 방산 시장과, 이들의 군축으로 인한 납기 지연에 불만을 갖고 한국제 무기에 관심을 갖는 상황이다. 반면 전통적인 무기 판매 시장을 한국에 뺏길 처지인 독일과 프랑스 등 기존 서유럽 열강은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낸다.

실제로 동유럽권 국가들이 최근 무기 도입 시 최우선으로 확인하는 점이 현지화 여부다. 방위비 인상과 무기 확보를 하는 김에 서유럽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방산역량도 강화하자는 취지다.

국내에서도 이런 동유럽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춰 기술이전을 더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성일 현대로템 글로벌사업실장은 지난 2월 11일 국회 세미나에 참석해 “한국은 현지 기술이전 과정에서 여러 행정절차가 복잡하다”며 “기술 수출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선 각 시스템마다 핵심 기술을 카테고리화한 후 기술 이전도 매트릭스화 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트럼프 정권의 나토 방위비 분담 요구 이후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동유럽 신흥국들은 방위비를 적극 인상하고 있으나 프랑스, 스페인 등 서유럽 주요국들은 인상에 소극적”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실질적으로 유럽 방어를 담당하는 동유럽 국가들에 방위비 부담이 가중되며 불만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기존 서유럽권의 반발도 외교적으로 해결할 문제다. 독일은 앞서 K2 전차의 폴란드 대량 수출이 확정되자 자국 언론을 통해 “한반도 긴급사태 발생 시 K2의 폴란드 납품도 차질이 생긴다”거나 “전통의 시장인 폴란드를 한국에 뺐겼다”는 등 간접적인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프랑스 역시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공식 석상에서 EU 회원국을 향해 유럽산 무기 구매 비중을 늘리자는 ‘바이 유러피언’을 제안하며 한국 견제에 나섰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일련의 정부 컨트롤 타워 부재와 방산 외교 역량 강화 필요성을 인지한 모양새다. K방산을 글로벌 4대 강국 수준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 ▲방산 수출 컨트롤 타워 신설 ▲대통령 주재 방산 수출 진흥 전략 회의 정례화 ▲국가안보실 방위산업담당관을 경제수석실로 직위 이관 ▲국방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를 통해 국방 인공지능(AI) 첨단기술 기반 구축 등을 약속했다.

동시에 유럽권 정상과 직접 만나는 G7 정상회의와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방산 세일즈에 나설지가 주목된다.

현재 참석이 확정된 G7은 특히 한국 방산의 외연 확장에 경계심을 내비치는 독일과 프랑스가 주축으로 있는 만큼 상호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 평가된다.

아직 참석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NATO 정상회의의 경우 더 직설적인 방산 관련 대화가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의제 자체가 방위비 인상과 분담이기 때문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NATO 회의는 K방산 유럽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세일즈할 절호의 기회며, 이미 나토 32개국이 전력증강계획에 합의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회의 참석을 통해 서방 민주주의 우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의제인 방위비 분담 등에 대한 각국 의견을 습득하는 것이야말로 ‘국익 우선 실용외교’”라고 조언했다.

업계에서도 대통령실 차원의 방산 세일즈에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방산 수출은 국가간 계약인 만큼 개별 업체에서 조율할 수 있는 사항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직접 외교 무대에서 수출 기반을 마련해 준다면 한층 수월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