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예상보다 복잡한 양상을 보이며 오는 2029년까지 전례없는 혼란기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연례보고서 '자동차 전쟁 2025'와 SNE리서치의 최신 시장 분석이 상반된 신호를 보이면서 업계의 전략적 접근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10일 SNE리서치에 따르면 해당 기간 중국 외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는 약 219만3000대로 집계됐다.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 전기차 시장은 올해 1~4월 전년 동기 대비 21.3% 성장하며 견고한 회복세를 시현했다.

기아 니로. 사진=현대차그룹
기아 니로.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3위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한 계단 상승했다. 18만9000대를 판매해 11.4% 성장률을 달성했으며, 특히 북미 시장에서 스텔란티스, 포드, GM의 전기차 인도량을 앞지르며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

완성차 업계, 하이브리드로 단기 처방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캐즘 극복 방편으로 하이브리드카 중심 판매 전략을 채택했다. 현재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하이브리드카로 체력을 보충한 뒤 전기차 시대에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도 이 대열에 합류해 내년 현대 투싼을 비롯해 기아 셀토스와 텔루라이드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한다. 제네시스에도 GV80, GV80 쿠페, G80에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할 예정이다.

제네시스 GV80 쿠페.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제네시스 GV80 쿠페.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지역별로는 유럽이 121만5000대로 26.2% 증가하며 가장 큰 시장 규모를 형성했다. 북미는 55만7000대로 4% 증가에 그쳤으나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은 31만5000대로 37.1%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한편 그룹별 경쟁 구도에서는 폭스바겐그룹이 전년 동기 대비 71% 급증한 37만4000대를 기록하며 지난해 1위였던 테슬라를 제치고 선두로 부상했다. ID.3, ID.4, ID.7, Q4 e트론 등 MEB 플랫폼 기반 차량들의 판매 호조가 성장 동력으로 작용했다.

테슬라는 모델3와 모델Y의 부진으로 20.1% 감소한 25만9000대에 그쳤다. 특히 유럽 시장에서 34.6% 판매량이 급감했는데, SNE리서치는 모델Y 페이스리프트를 위한 생산 중단과 일론 머스크 CEO의 정치적 발언으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훼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SNE리서치는 "전기차 시장이 단순한 친환경 경쟁을 넘어 지역 맞춤형 전환 전략과 지정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쟁 국면에 진입했다"며 "각 기업이 중국 외 지역의 불확실성과 기회를 동시에 고려해 제품군 다양화, 정책 유연성 확보, 현지화 투자 전략을 통해 전략적 우위를 선점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BoA "제품 전략 예측 불가…혼란스러운 시기다"

그러나 BoA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2029년까지 전 세계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전례없는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BoA는 첫 번째 요인으로 전기차 수요 부진을 지목했는데 상당수 메이커가 전기차 대중화 시점을 잘못 예측해 막대한 투자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포드는 지난해 전기 SUV 양산 계획을 발표했지만 곧 백지화하며 시설투자비 19억 달러(약 2조5874억2000만원)를 손실 처리했다.

SNE리서치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109.1% 급증했으나 지난해 상승률은 26.1%로 둔화됐다.

샤오미가 선보인 전기차 SU7. 사진=연합뉴스
샤오미가 선보인 전기차 SU7. 사진=연합뉴스

BoA는 중국의 '전기차 바겐세일'을 추가 위협 요소로 제시했다. BYD가 지난달 22개 차종을 대상으로 최대 34% 할인 계획을 발표하자 지리자동차, 창안자동차 등도 맞불 할인에 돌입했다.

업계는 중국 발 가격 인하 경쟁이 시차를 두고 미국·유럽 메이커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불확실성이 확산되자 지리자동차는 당분간 신규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은 지난 7일 "세계 자동차산업이 심각한 생산 과잉 상태다"며 "새 공장 건설이나 기존 생산 시설 확장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BoA는 시장 불확실성을 반영해 내년부터 오는 2029년까지 북미 출시 신차를 159개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예측치 200개보다 20% 낮게 조정한 수치다.

신차 출시 감소는 전체 차량 판매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업계는 미국 정부의 자동차 품목관세 25%와 맞물려 미국 시장 내 판매가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존 머피 BoA 수석 애널리스트는 "지금 이 시기는 제품 전략에서 가장 예측할 수 없고 혼란스러운 기간이 될 것"이라며 "신차 출시의 급격한 감소와 업계 격변와 관련해 우리는 이전에 이런 종류의 변화를 본 적이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