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미국의 과학기술 기반을 지탱해온 대학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과학예산은 삭감됐고, 유학생과 외국인 교수에 대한 비자 규제는 강화됐으며, 일부 대학에는 기금에 대한 과세 압박까지 가해지고 있다. 트럼프는 대학을 ‘좌파 엘리트의 중심지’로 규정하고, 이를 문화 전쟁의 일환으로 삼아왔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조치가 미국의 '인재 유출(Brain Drain)'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혁명, 기술 쇠퇴를 부른 반지성의 대가

크리스 밀러의 『칩 전쟁(Chip War)』에 따르면, 중국은 1965년 자체적으로 집적회로(반도체 칩)를 처음 개발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반도체 기술은 미국에 불과 5년 정도 뒤처져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음해 마오쩌둥이 주도한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과학자와 지식인 다수가 ‘사회주의적 평등’을 저해하는 특권 계층으로 지목돼 농촌으로 쫓겨나거나 숙청됐고, 기술 발전은 사실상 중단됐다. 그 결과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 일본, 한국, 대만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1979년 당시 중국 전역의 컴퓨터 수는 고작 1,500대에 불과했던 반면 미국은 이미 수십만 대의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때 미국과 5년 격차였던 중국 반도체 기술은, 문화대혁명 10년간의 반지성·반과학 분위기 속에 한 세대 가까이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영국의 인재 유출의 교훈
‘브레인 드레인(인재 유출)’이라는 용어는 1963년 영국 왕립학회의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낮은 연구비와 보수, 미국·캐나다 등 해외의 공격적인 인재 영입으로 인해 영국 대학 연구자들의 해외 이주가 급증했다. 10년 전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약 60%의 대학 인력이 매년 해외로 떠났고, 박사 졸업자의 12%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유출은 생산성 저하와 기술혁신 정체로 이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이후에도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브렉시트로 EU 과학기금에서 제외된 이후, 유럽 연구자와 학생의 유입이 줄며 영국 대학들은 인재 확보와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재 유입 누렸던 미국, 지금은…

1930년대 독일 난민 과학자들의 유입 이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재를 끌어들이며 '인재 유입(brain gain)'의 최대 수혜국이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내 전체 특허의 23%는 이민자들이 출원했으며, 미국 태생 개발자와의 공동 특허를 포함하면 이 비중은 36%에 달한다.
하지만 지금은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기술 예산 삭감과 비자 규제 강화로 인해 외국 연구자들의 미국 이탈이 본격화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과학 인재는 유럽으로(Choose Europe for Science)'라는 이름의 5천억 유로 규모의 프로젝트를 출범시켜 연구자 유치에 나섰고, 프랑스와 캐나다도 경쟁적으로 미국 과학자 확보에 나서고 있다.
독일의 대표 과학 연구기관인 막스 플랑크 협회는 2024년 하반기부터 하버드, MIT 등 미국 주요 대학 출신 연구자들의 지원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네이처>가 2025년 3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과학자 1,600명 중 75%가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중국의 기술 르네상스:역(逆) 인재 유출의 수혜
트럼프 1기 당시 시행된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중국계 과학자들의 미국 이탈을 가속화했다. 기술 유출 방지를 명분으로 2018년부터 중국계 연구자들을 집중 단속한 이 정책은, 인종차별 논란 끝에 바이든 정부 들어 폐지됐다. 그러나 그 사이 SMIC 창립자인 장루징을 비롯해 미국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이 대거 중국으로 돌아갔다.
중국은 ‘딥시크 모먼트’ 이후 AI·로봇·바이오·전기차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베이징대와 칭화대는 AI 논문 수 기준으로 각각 세계 1위, 3위에 올랐고, 세계 100대 대학 중 중국 대학은 7곳으로 늘었다.
이 같은 기술 르네상스의 뿌리에는 미국에서 교육받고 경력을 쌓은 과학자들의 대규모 귀국이 있다. 중국은 미국이 길러낸 인재를 다시 흡수하는 ‘역(逆) 인재 유출’의 수혜를 입고 있는 셈이다.
무너질 수 있는 미국의 기술 우위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연구 인프라와 기술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반(反)대학 정서에 기반한 정책이 지속될 경우, 일부 교수의 해외 이직이나 유학생 감소를 넘어, 미국의 인재 경쟁력이 점차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1대 1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번 시작된 ‘문화 전쟁’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은 지금의 미국에도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