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이 최근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과 LS그룹 지주사인 (주)LS에 대한 지분 투자를 늘리며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언론사를 품은 호반그룹이 여론전과 지배구조 측면에서 약점을 가진 한진칼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하는 가운데 한진칼도 반격에 나서며 전선이 출렁이고 있다는 평가다.

호반그룹의 이러한 행보는 그룹의 탄탄한 재무구조와 김상열 창업주에 이어 그룹의 미래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 김대헌 사장의 경영 스타일 및 비전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진칼 지분 확대를 두고 과거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도에서 나타났듯 항공 산업 진출에 대한 오랜 열망과 더불어 취약한 지배구조를 가진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반면 한진그룹과 LS그룹은 상호 지분 투자를 통해 '반(反)호반 동맹'을 구축하는 등 방어 태세를 강화하고 있어 향후 이들 기업 간의 관계는 잠재적인 경영권 분쟁을 포함한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평가다. 

김대헌 호반건설 사장. 사진=호반
김대헌 호반건설 사장. 사진=호반

호반의 조용한 공격
호반그룹은 한진그룹이 친족간 경영권 분쟁을 마무리하던 2022년부터 장내외매수를 통해 꾸준히 한진칼 지분율을 늘려왔다. 그룹이 2회, 호반호텔앤리조트가 지난해와 올해 총 82차례에 걸쳐 한진칼 주식을 매수했으며 현재 18.46%까지 지분을 늘린 상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 격차가 1.63%포인트에 불과하다.

사업 다각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호반그룹은 주택 건설 부문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져온 기업으로 특히 주택 분양 사업이 그룹 전체 매출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최근 건설 및 주택 시장의 경기 변동성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다각화는 단순한 위기 회피를 넘어 그룹의 생존 전략으로 인식되며 레저, 제조(대한전선 인수), 미디어, 유통(아브뉴프랑 등), 금융 투자  등 광범위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실탄도 든든하다. 호반건설은 1조원이 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낮은 부채비율과 높은 유동비율을 유지하며 뛰어난 재무 안정성을 자랑한다.

'무차입 경영' 원칙과 분양률 90% 미달 시 신규 사업을 착수하지 않는 '90% 원칙' 등 보수적인 자금 관리 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된다.  호반그룹이 과거 대우건설이나 HMM과 같은 대형 매물 인수 검토 시에도 재무적 투자자(FI) 없이 독자적으로 인수를 추진할 수 있는 자금력을 과시한 배경이다.  

김상열 창업주의 재무적 보수성과 기회 포착 능력을 이어받은 장남 김대헌 기획총괄사장의 역할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김대헌 사장은 계열사 합병 과정을 통해 호반건설의 최대주주로 등극하며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으며 김상열 회장의 부인이자 김대헌 사장의 모친인 우현희 호반문화재단 이사장도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 현재의 방향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김대헌 사장이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 자신의 경영 색깔을 드러내고 부친이 이룩한 건설 중심의 사업 구조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그룹을 이끌고자 하는 야심찬 포부의 발현으로 한진칼 지분 인수에 나서고 있다는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단순 투자? 항공 진출?
호반그룹은 한진칼 지분 투자 목적에 대해 일관되게 '단순 투자'라고 밝히고 있으나 시장과 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면에 숨겨진 전략적 의도에 주목하고 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호반그룹의 항공 산업 진출 야심이다. 

사실 호반그룹은 항공업 진출의 꿈을 여러차례 보인 바 있다. 2015년 아시아나항공(금호산업) 인수전에 참여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채권단 관리하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었다. 이런 가운데 그룹 재건의 열쇠를 쥔 금호산업 매각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시장의 이목이 쏠렸고 여러 대기업들이 잠재 인수 후보로 거론될 무렵, 호반그룹(당시 호반건설)이 예상을 깨고 강력한 인수 후보로 부상해 신선한 충격을 안긴 바 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약 30%를 보유한 최대주주였기에 금호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곧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호반그룹은 당시 탄탄한 재무구조와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인수 의지를 보이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전 단계까지 이르렀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그해 중반 인수 협상은 최종 결렬되고 말았다. 

호반그룹이 현재 한진칼 지분 인수에 나서는 것을 두고 시장에서 의미심장하게 보는 이유다. 김상열 창업주의 숙원이 항공업 진출이라는 언급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호반그룹의 '단순 투자'라는 공식입장도 지분 확대 초기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법적 신중성을 반영한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투자라고 보기에는 상당한 자본을 투입한데다 최근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한도 증액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하는 등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고려할 때, 순수한 재무적 투자 이상의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 로드맵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