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을 포함한 주요 택배사들이 다음 달 3일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을 휴무일로 지정했다. 최근 택배 노조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택배 기사들의 휴식권과 참정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가 이어진 데 따른 조치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택배업계에 만연해진 ‘주 7일 배송’에 대해 근본적으로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주요 택배사, 대선일 ‘휴무’ 지정

전국택배노조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통령 선거일인 6월 3일 택배없는 날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택배노조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통령 선거일인 6월 3일 택배없는 날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 쿠팡 등 주요 택배사들은 6월 3일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 본 투표일에 휴무하기로 했다. 앞서 노동계에서는 업계 전반에 만연한 주 7일 배송 체제로 인해 택배 노동자의 참정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투표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법 상 택배 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유급휴일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택배 노조의 요구에 정치권도 호응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택배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데 이어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자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 휴무일 지정으로 가장 주목받는 건 쿠팡이다. 지난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한 이후 한차례도 업무를 중단한 적 없는 쿠팡은 다음 달 3일 처음으로 배송 업무를 중단하게 됐다. 지난 2022년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로젠택배, 우체국 택배가 휴무를 진행했지만 쿠팡은 휴무를 시행하지 않았다. 다만, 현시점(26일 오후)까지도 쿠팡은 하루 전체를 휴무일로 지정할지 투표 후 업무를 재개할지 등 구체적인 휴무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전국택배노동조합은 택배사의 결정에 대해 입장문을 통해 휴무일 지정에 대한 환영의 뜻을 밝혔다. 택배노조는 “주요 택배사들이 대선일에 택배 휴무를 결정한 것을 깊이 환영한다”며 “택배 노동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노동자들의 외침과 시민사회의 지지, 그리고 사회 전체의 응답이 함께 이룬 매우 큰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6월 3일 하루의 휴무가 6월 4~5일의 과로로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하루 쉼이 '물량 폭탄'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는 택배 노동자에게 또 다른 고통일 뿐”이라고 촉구했다.

‘주 7일 배송’ 실효성 논란은 여전

전국택배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진 본사 앞에서 주7일 배송 강행, 불성실 교섭을 규탄하는 투쟁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택배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진 본사 앞에서 주7일 배송 강행, 불성실 교섭을 규탄하는 투쟁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택배업계에 만연한 주 7일 배송에 대해 근본적으로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4년 쿠팡이 국내 택배사 중 처음으로 익일배송인 ‘로켓배송’을 시작한 이후 업계 내부에서 빠른 배송 경쟁은 본격화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커머스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며 택배업계의 주 7일 배송 도입에도 속도가 붙었다. 이에 CJ대한통운은 올해 1월부터 주 7일 배송 시스템 ‘매일 오네’를 시작했고, 한진택배도 지난달 27일부터 시범 운영 중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현재 수도권과 주요 지역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물품을 배송해 주는 ‘약속 배송’ 서비스를 2027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주 7일 배송이 빠르게 퍼지는 반면, 택배 기사의 처우 개선은 답보 상태라는 점이다. 특히 한진의 경우 갑작스러운 주 7일 배송 시범 도입 발표를 두고 노조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택배노조는 한진이 노조와 충분한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주 7일 배송을 강행했으며 추가 수수료 지급도 보장하고 있지 않는다며 지난달 24일부터 한진 본사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도 한진의 주 7일 배송 도입의 실효성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 7일 배송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물량이 따라 줘야 하는데, 현재 택배 노동자분들의 주장을 보면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다”라며 “이 경우 한 기사가 더 넓은 권역을 담당해야 하는데, 필연적으로 노동 강도가 더 세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진에 앞서 주 7일 배송을 시작한 CJ대한통운의 부진한 1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CJ대한통운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85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1.9% 감소했다. 구체적으로 ‘O-NE사업’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762억원, 343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모두 하락했다. 이러한 결과에 향후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경쟁 업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다만, CJ대한통운 측은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과 ‘매일 오네(O-NE)’ 시행 초기 운영 안정화를 위한 원가 반영 영향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하락했다”라며 “대형 이커머스 중심으로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매일 오네 서비스 도입 효과가 점차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