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체코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약을 둘러싸고 프랑스와의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유럽연합(EU)까지 조사에 착수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프랑스 측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자국의 안보와 전략적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피알라 총리는 16일(현지시간) 현지 매체 블레스크와의 인터뷰에서 "탈락한 입찰자(프랑스전력공사 EDF)가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너무 멀리 나아가 체코의 안보와 전략적 이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원전 계약 지연으로 인한 손해를 체코 납세자가 부담해서는 안 된다며, EDF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CEZ) 역시 계약 지연에 따른 손실을 계산해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EDF는 한수원과의 원전 수주 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뒤, 체코 경쟁당국에 이의를 제기하고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로 인해 체코 법원이 지난 6일 본안 소송 판결 전까지 최종 계약 체결을 금지하면서, 당초 7일로 예정됐던 한수원과 CEZ 간의 최종 계약 서명식은 무기한 연기됐다. 현지 매체 라디오프라하는 CEZ가 계약이 몇 달만 지연돼도 수십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태는 두코바니 원전 2기 건설뿐 아니라, 한수원이 우선협상권을 확보한 테멜린 원전 2기 신규 건설 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 경쟁당국도 한수원의 체코 원전 입찰 계약과 관련해 EU 규정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직권조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6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는 현재 역외보조금규정(FSR)을 근거로 '직권조사 예비검토'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는 지난해 10월 EDF가 한수원이 한국 정부로부터 부당한 보조금을 받아 경쟁을 왜곡했다며 FSR 위반으로 EU 집행위에 정식 신고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FSR은 EU 역외 기업이 자국 정부로부터 과도한 보조금을 받고 EU 내 기업 인수합병이나 공공입찰에 참여해 불공정 경쟁을 유발하는 것을 규제하는 규정으로, 2023년 7월부터 시행됐다. EU 집행위는 예비검토의 일환으로 지난 2월 CEZ를 포함한 관련 당사자들에게 자료제출요청(RFI) 서한을 발송했으며, 한수원에도 서한이 전달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은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조금도 받지 않았으며, 체코 원전 입찰은 FSR 시행 이전인 2022년 3월에 시작돼 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EDF의 EU 집행위 제소가 '시간 끌기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분석과 함께, EU 회원국인 체코 정부의 강력한 반발 가능성을 고려해 집행위가 직권조사 개시 여부를 신중히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체코는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현재의 40.7%에서 50%로 확대하기 위해 총 4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며, 두코바니 신규 원전은 2036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번 갈등과 조사로 인해 체코의 에너지 전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