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시대가 열리며 기업에게는 다소 '폭력적인 변화'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당장 아마존웹서비스(AWS)가 공개한 '생성형 AI 도입 지수'에 따르면 국내 기업 응답자의 54%는 2025년 IT 예산 중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생성형 AI에 둘 계획이며 이는 보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기업(20%)이나 컴퓨팅을 우선시하는 기업(17%)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조사 대상 국내 기업의 63%가 이미 최고AI책임자(CAIO)와 같은 AI 전담 임원을 임명했다는 설명이다. AI 비즈니스 혁신이 천지개벽의 수준으로 몰아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기회를 잡는 법이다. 특히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수준에서 벌어지는 기술의 혁신을 외면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덥썩 손을 잡으면 종속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결국에는 줄 타기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KT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수겸장
KT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2조 4000억 원 규모 AI 동맹이라는 거대한 한 축을 가동하면서도, 자체 AI 모델 '믿음(Mi:dm)' 고도화와 AI 컨택센터(AICC) 등 내부 역량 강화에 사활을 거는 '양수겸장(兩手兼將)' 전략이 대한민국 AI 산업 전반에 걸쳐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단순히 KT라는 개별 기업의 생존법을 넘어, 격변하는 글로벌 AI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기술 종속의 함정을 피하고 진정한 의미의 'AI 주권(AI Sovereignty)'을 확보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핵심 전략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깊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은 최신 AI 기술, 막대한 자본, 그리고 광범위한 생태계로의 접근이라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자칫 잘못하면 핵심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 외부 솔루션에만 의존하게 되어 기술적 종속을 심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기업 고유의 혁신 동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달콤한 독'이 될 수 있다.
글로벌 파트너의 사업 전략 변경, 갑작스러운 서비스 중단, 혹은 예기치 않은 비용 인상 등의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T의 선도적인 전략은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외부의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혈받아 활용하되,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핵심 기술을 단련하고 내재화함으로써 파트너십의 이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자체적인 협상력을 높이려는 현명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궁극적으로는 한국 시장의 고유한 특수성과 고객의 미묘한 요구까지 정확히 반영하는 독자적인 AI 서비스를 창출하여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다.
실제로 KT와 MS 간의 파트너십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선 전략적 제휴의 성격을 띤다. 한국어에 최적화된 특화 AI 모델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국내 데이터 주권 및 규제 환경을 완벽하게 준수하는 소버린 클라우드를 구축하며 다양한 산업군의 AI 전환(AX)을 공동으로 지원하는 등 다각적인 협력이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MS의 GPT-4o, Phi-3.5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운데이션 모델과 Azure AI 플랫폼의 강력한 확장성은 KT가 구상하는 AI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신속하게 현실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당장 KT는 2025년 2분기로 예정된 GPT-4o 기반 한국어 AI 모델 출시 계획을 밝히며, 글로벌 기술과 국내 시장 이해도를 결합하는 시너지 창출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흥미로운 대목은 KT의 입체적 전략이다.
MS라는 강력한 우군 확보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발판 삼아 내부 AI 역량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23년 10월 상용화된 자체 개발 초거대 AI '믿음(Mi:dm)'이 눈길을 끈다. AI 모델이 만들어내는 그럴듯한 허위 정보, 즉 '환각 현상'을 경쟁 모델 대비 최대 70%까지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기술적 성과를 통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업계에서는 KT와 MS 동맹 당시 믿음을 두고 '퇴출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말도 나왔다. 그러나 KT는 '믿음'을 앞세워 2026년까지 1천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 기술력을 사업 성과로 직결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양수겸장의 보루가 될 것임을 명확히 한 셈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KT의 AI 컨택센터(AICC) 사업은 이미 2023년에만 2,500억 원의 신규 수주를 기록하며 금융권을 중심으로 B2B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KT가 보유한 통신 인프라, 방대한 고객 데이터, 그리고 오랜 기업 서비스 경험을 AI와 효과적으로 융합시키고 있음을 방증한다.
여세를 몰아 KT는 2027년까지 AI 연구개발 및 인프라 구축, 신사업 모델 발굴 등에 총 7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할 계획이다. 자체적인 소비자 대상(B2C) AI 서비스 역시 2025년 2분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통신망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AI로 극대화하는 '네트워크 AI' 기술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전방위적인 독자 행보는 KT가 전통적인 통신 사업자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AI를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아 미래 시장을 주도하는 'AICT(AI + ICT) 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겠다는 강력한 리더십과 비전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술 자립'과 '전략적 협력'의 균형
KT가 제시한 '양수겸장'의 AI 전략은 단순히 통신 산업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 산업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자체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X'를 통해 한국어 AI의 자존심을 세우고 'AI 주권'을 선언한 네이버, AI 데이터센터(AIDC) 인프라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와 더불어 자체 AI 모델 개발에도 적극적인 SK텔레콤, 그리고 제조 공정 혁신과 제품 지능화를 위해 AI를 도입하는 삼성, LG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전략적 고민 속에서 각자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제조, 금융, 의료, 교육, 콘텐츠 등 AI 기술의 파급력이 미치지 않는 산업 분야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글로벌 AI 솔루션의 신속한 도입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자체 기술 개발 및 내재화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기업 생존과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는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국내 기업이 시장의 주도권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자적인 핵심 기술력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견고한 자체 기술력이 뒷받침될 때만이 글로벌 파트너와 대등한 위치에서 호혜적인 협상을 진행할 수 있으며, 도입한 외부 기술을 국내 시장 환경과 기업 내부 프로세스에 맞춰 효과적으로 최적화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핵심 기술과 민감한 데이터에 대한 통제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예기치 않은 외부 환경의 급변이나 특정 글로벌 기업의 정책 변화에 따른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업의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양수겸장' 전략이 모든 기업에게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으며, 그 실행 과정 또한 결코 순탄치 않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지속적인 R&D 투자 부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AI 고급 인재 확보 경쟁,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발전하는 글로벌 AI 기술의 변화 속도를 끊임없이 따라잡아야 하는 극한의 압박감은 국내 모든 기업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각 기업이 보유한 제한된 자원 하에서 어떤 기술 영역에 집중하여 자체 역량을 심화시키고, 어떤 부분에서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 능력과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단순한 자금 지원이나 구호성 정책 발표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자체 기술력을 배양하고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AI 반도체,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양질의 학습용 데이터 등 AI 산업의 핵심 기반 요소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마음껏 발현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
동시에 AI 기술의 오용 및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사회적 신뢰 시스템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026년 1월 시행 예정인 AI 기본법이 산업 진흥과 신뢰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실효성 있는 법적 토대가 될 수 있도록 세심한 준비가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KT가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AI 전략은 글로벌 기술 협력이 일상화된 현 AI 시대에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기술적 주도권을 잃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값진 교훈과 영감을 제공한다.
외부의 선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되, 그것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소비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내부 R&D와 혁신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는 지난한 노력이다. 아직 완성형도, 성공모델도 아니라 더 지켜봐야 하지만 그 자체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