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 폐막한 상하이 모터쇼는 뜨거운 감자였다. BMW가 유럽 차 최초로 중국 딥시크를 자사 차량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다수의 중국 브랜드는 눈여겨볼 성능의 전기차, 내연기관차를 내놓으며 '타도 테슬라'를 선언했다. 중국차 굴기 그 자체다.

SNE리서치도 올해 1분기 전 세계 전기차 신규 등록대수 421만4000대 중 중국 전기차의 비중이 258만9000대로 61.5%의 점유율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거침없는 기세로 러시아 대륙을 삼킨 중국차의 다음 개척지는 한반도와 유럽 대륙이다. 과거 압도적인 병력으로 조선을 밀고 들어왔던 '병자호란'처럼 2025 을사년 중국 자동차도 한반도와 한국 자동차 기업들의 주요 시장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BYD가 다이너스티-D 컨셉카를 공개했다. 사진=BYD
BYD가 다이너스티-D 컨셉카를 공개했다. 사진=BYD

러시아 삼킨 중국…다음 목표는 한반도

오랫동안 러시아 시장에서의 1위는 현대자동차였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러시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는 현대차그룹, 2위는 라다(러시아 브랜드) 3위는 폭스바겐이었다. 르노, 토요타도 그 뒤를 이었었다.

상황이 변한 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전쟁 발발 후 러시아에서 각종 완성차 업체가 철수한 것. 혼란을 틈타 들어온 건 중국 업체들이었다.

한자연 이서현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제조사 철수로 러시아 기업들은 생산능력이 크게 위축됐고 주요국의 경제 제재 및 글로벌 제조사의 자체 조치 등으로 자동차, 부품 등의 수입도 제한되면서 큰 공급난에 직면했다"며 "글로벌 제조사의 공백을 중국 브랜드가 빠르게 메운 결과 지난 2021년 10% 미만이던 중국 브랜드의 신차 판매 점유율은 지난해 과반으로 급증했고 신차 수입 중 중국 비중도 작년 약 80%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브랜드별 러시아 신차 판매 비율. 사진=한국자동차연구원
브랜드별 러시아 신차 판매 비율. 사진=한국자동차연구원

구체적으로 지난해 러시아 내 신차 판매 비율을 살펴보면 라다가 27.8%로 1위였으나 2위 체리(20.4%), 3위 GWM(14.2%), 4위 지리(12.3%), 5위 창안차(7%)가 모두 중국 브랜드였다. 이들의 비중을 단순히 셈해도 53.9%로 절반을 넘는다. 지난 2021년 1위였던 현대차기아의 비중은 2.2%로 급감했으며 5위 토요타의 비중도 1%대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 중 체리, 지리, 창안차는 한국 진출을 앞뒀거나 눈여겨보고 있는 브랜드로 분류된다. 실제로 체리는 KG모빌리티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렉스턴의 헤리티지를 계승할 중·대형급 SUV 공동개발에 착수 중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12월 글로벌 데뷔한 체리의 티고 9가 렉스턴의 향후 모델이 될 것이라 예상 중이다.

작업 중인 지커 생산근로자들. 사진=지커
작업 중인 지커 생산근로자들. 사진=지커

지리자동차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도 올해 말 한국에서 인도를 시작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지커가 미국 시장에서 상장 철수했지만 이와 별개로 지커는 지난해 하반기에 한국에도 현지법인인 지커코리아를 설립, 올 연말을 목표로 판매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BYD, 창안차, 지커 등 고품질 중국 자동차 브랜드가 한국에 상륙할 시 저렴한 가격을 앞세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림대학교 김필수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BYD 돌핀 같은 대중형 전기차는 품질 대비 가성비가 워낙 좋기 때문에 국산 전기차에 비해 500만~1000만원 싸다면 충분히 한국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포스코경영연구원 정재호 수석연구원은 "국내 소비자 인식과 현대차·기아 등 기존 사업자 역량 고려 시, 중국 전기차의 유럽/동남아 시장과 같은 성공은 불확실하다"라면서도 "제조사 대비 경쟁력이 낮은 부품 및 소재산업은 중국산 수출 증가 영향으로 구조조정 등 과거 철강산업과 유사한 산업구조 재편 과정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EU-中 '최저 가격제 협상' 또 다른 변수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해 4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중국 외교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해 4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중국 외교부

문제는 또 있다. 유럽과 중국이 미국에 맞서 최저 가격제 논의를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4월 10일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 담당 집행위원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유럽이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하는 관세 폐기를 위한 가격 약정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전기차를 향해선 최대 145%에 달하는 관세를 매겼고 유럽연합(EU)도 관세에 맞서 950억 유로(약 150조원)에 달하는 미국 보복 조치를 준비하는 등 이를 갈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지난해 10월부터 중국의 불공정한 보조금을 받은 값싼 중국산 전기차가 유럽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며 업체별로 7.8∼35.3% 포인트의 추가 상계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산 전기차 관세율은 기존 10%에서 17.8%∼45.3%로 오른 상태다.

그러나 강경한 미국의 입장에 EU는 중국과의 협력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한발 물러서 오는 7월 EU-중국 정상회담을 열고 최저 가격제를 협상 카드로 다시 꺼내 들었다. 최저 가격제란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가격의 하한선을 정해 그 이하로는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정부의 가격 규제 정책이다.

바오준 샹징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사진=바오준
바오준 샹징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사진=바오준

EU 입장에선 중국산 전기차가 극단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유럽 시장을 교란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고율 관세 대신 가격 하한선을 설정함으로써 중국의 보복 관세와 통상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단 점에서 강점을 가진다. 중국 입장에서도 고율 관세로 유럽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것보단 일정 가격 선에서 입지를 유지할 수 있단 점에서 유리하다.

다만 업계는 이 같은 협상이 한국에는 불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러시아, 동남아 시장을 점령한 중국 자동차가 유럽에서까지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한국 자동차 점유율 확장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중국 전기차의 가격 하한선이 설정되더라도 여전히 한국 브랜드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아 한국 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그렇게 우위를 점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BMW에 딥시크… SDV 연구 판 뒤집힌다

BMW가 중국 소버린AI인 딥시크를 자사 차량에 도입한다. 사진=BMW
BMW가 중국 소버린AI인 딥시크를 자사 차량에 도입한다. 사진=BMW

BMW에 중국 소버린 인공지능(AI) '딥시크'가 들어간 것도 눈여겨봐야 할 사항 중 하나다. 올리버 집세 BMW CEO는 "올해 말부터는 딥시크의 AI 통합 기술을 중국 내 신차에 적용할 예정"이라며 "AI 분야의 발전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고 중국 내 차량에 AI를 통합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AI 개인 비서를 통해 딥시크 기능을 갖춘 지능형 개인 비서가 더 강해진다"며 "기존 AI 기능을 보완하고 차량 자체를 훨씬 넘어서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체적으로 ▲BMW 5시리즈 롱휠베이스 ▲BMW i5 ▲BMW X3 롱휠베이스 등에 딥시크가 들어간다. 내년 중국 현지에서 만들어질 '노이에 클라쎄'에도 딥시크가 탑재된다.

유럽 자동차 중에서 딥시크를 도입하는 것은 BMW가 최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4월 2026년형 S클래스에 챗GPT를 도입했으며 폭스바겐 그룹도 챗GPT를 차량에 탑재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지만 소버린 AI라는 평가를 받는 딥시크가 유럽산 차량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파격이라는 것이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반응이다.

딥시크가 도입된 바오준의 '샹징(享境)'. 사진=바오준
딥시크가 도입된 바오준의 '샹징(享境)'. 사진=바오준

더욱이 제너럴모터스(GM)와 상하이자동차가 합작한 바오준에서 자사 세단 '샹징(享境)'에 딥시크를 탑재하고 있고 BYD, 지리, 광저우자동차에서도 딥시크를 도입하는 등 중국산 자동차와 딥시크가 결합 중이라 자동차 업계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소프트웨어 기반 자동차(SDV) 시장에서도 큰 파괴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김 교수는 "당장 딥시크를 탑재한 BMW나 BYD 등 중국 차량이 한국으로 직수입되진 않겠지만 우회해서 들어오게 될 가능성이 있기에 향후 차량 원산지 모니터링 등이 중요해졌다"며 "딥시크를 탑재하며 중국 내에선 SDV 분야가 강화되고 있지만 SDV는 차량이 군사시설 등 보안 요구 시설과 관련된 정보조차 기억하므로 우방국인 미국에도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현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미국의 챗GPT, 중국의 딥시크처럼 현대차그룹도 조속히 자체 제작 AI(플레오스)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며 "현대차가 오는 2030년까지 플레오스 상용화를 언급했는데 다른 나라, 기업들에 비해 늦은 감이 있는 만큼 상용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