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 산업의 숙원이자 26조 원 규모의 대형 수출 사업으로 주목받아온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 수주가 본계약 체결을 불과 하루 앞두고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경쟁사였던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제기한 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신청을 체코 법원이 전격 인용하며, 한국수력원자력(KHNP)이 눈앞에 뒀던 최종 계약 서명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은 현지 시각 6일, 7일로 예정됐던 KHNP와 체코 발주처인 EDU II 간의 두코바니 원전 2기 건설 사업 본계약 체결 절차를 잠정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소송 통한 구제 가능성 보전"
브르노 지방법원이 이처럼 중대한 국가 사업의 계약 체결에 제동을 건 배경에는 EDF가 제기한 본안 소송(체코 반독점청의 입찰 결과 승인 결정 취소 소송)이 자리하고 있다.
법원은 만약 본안 소송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계약이 체결될 경우, 설령 이후 EDF가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이미 제3자에게 넘어간 사업 수주 기회를 사실상 영원히 상실하는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는 EDF가 법적 절차를 통해 정당한 권리를 다투고 최종 판결에 따라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전하기 위한 '임시적 조치' 성격이 강하다.
이번 법원 결정이 EDF가 제기한 입찰 과정의 위법성이나 부당성 등 구체적인 주장 내용 자체에 대해 법원이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직 소송 당사자의 권리 보호와 절차적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하지만 이 결정 하나로 수년간 공들여온 대규모 국책 사업이 계약 직전에 멈춰서면서 한국과 체코 양국 정부 및 관련 기업들은 물론,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체코의 계획에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계약 서명을 위해 체코 현지를 방문 중이던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EDF가 문제 삼는 내용은 무엇인가?
이번 법원의 가처분 결정은 지난 몇 달간 EDF가 체코 당국과 법원을 상대로 벌여온 집요한 공세의 결과다.
EDF는 체코 정부가 KHNP를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최종 사업자로 확정한 지난 4월 30일 이후부터 체코 반독점청(UOHS)에 끈질기게 이의를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당한 바 있다. 다만 반독점청 결정에 불복한 EDF는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가처분 신청을 통해 계약 체결 자체를 막아서는 데 성공했다.
EDF가 법적 공방을 통해 문제 삼는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한국 정부의 부당한 '외국 보조금' 지급 의혹이다. EDF는 한국수력원자원자력이 한국의 공기업이라는 점을 들며 KHNP가 입찰 과정에서 제시한 유리한 가격 조건이 한국 정부로부터의 부당한 금융 지원이나 보조금에 기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EU)이 최근 역외 기업의 정부 보조금이 역내 시장의 공정한 경쟁 환경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화하고 있는 '외국 보조금 규정'을 정면으로 겨냥한 주장으로, 대규모 공공 입찰에서 자주 등장하는 민감한 쟁점이다.
둘째, 공공 조달 규정 위반 및 입찰 절차의 투명성 부족 주장이다. EDF는 체코의 공공 조달 관련 법규가 입찰 과정 전반에 걸쳐 제대로 준수되지 않았으며, 절차적 투명성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입찰 결과의 무효화를 주장하고 있다.
당초 1기 건설에서 최대 4기 동시 발주로 사업 범위가 확장되면서 입찰 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과정 등도 EDF가 절차적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대규모 국가 사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모든 입찰 참여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기본 원칙이라는 점에서 EDF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셋째, KHNP의 기술 사용 권한 및 사업 이행 능력에 대한 의문이다.
EDF는 KHNP가 과거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겪었던 원자력 기술 관련 지식재산권(IP) 분쟁 이력 등을 언급하며 KHNP가 두코바니 원전 건설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권한이 충분한지, 그리고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되는 복잡한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차질 없이 이행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KHNP의 신뢰도를 흔들려는 시도다.

불확실성 심화와 장기전?
이번 브르노 지방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KHNP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 노력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유럽 원전 시장 진출이라는 역사적 기회를 코앞에서 놓치게 된 '팀 코리아'(한수원,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 국내 원전 관련 기업들을 총칭)는 비상이 걸렸다.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체코 발주처와 긴밀히 상황을 공유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체코 두코바니 원전 프로젝트의 운명은 체코 법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법적 분쟁이 장기화되는 것이다. KHNP와 발주처는 가처분 결정에 대해 체코 최고행정법원에 항소할 수 있으며, EDF가 제기한 본안 소송(반독점청 결정 취소 소송) 역시 1심인 지방법원과 2심인 최고행정법원의 심리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체코의 행정 소송 절차는 통상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이 중대하고 복잡한 사안의 특성을 고려할 때 최종적인 법적 결론이 나기까지는 수년, 길게는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악의 상황이다. 이 기간 동안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렵고, 이는 체코의 에너지 전환 목표 달성 지연과 국가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체코 정부와 발주처 CEZ/EDU II가 입찰 절차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강력히 주장하며 EDF의 소송이 프로젝트를 지연시키려는 부당한 시도라고 비판하며 법적 대응에 단호하게 나설 것임을 시사하는 배경이다.
나아가 법적 다툼이 길어질수록 프로젝트 지연과 사업비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본계약 체결이 미뤄지면 상세 설계, 주요 기자재 발주, 건설 인허가 절차 등이 모두 지연되기 때문이다.
원전 건설은 막대한 초기 투자와 장기간의 공사 기간이 소요되는 사업 특성상, 시간 지연은 곧 천문학적인 비용 증가로 직결된다. 물가 상승, 환율 변동, 금융 비용 증가, 그리고 법률 자문 및 소송 관련 제반 비용 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으며, 이는 당초 예상했던 26조 원 이상의 사업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소송 장기화로 인한 불확실성과 막대한 비용 부담은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극적으로 소송 외 합의를 모색할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체코 정부는 국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인 두코바니 프로젝트가 기약 없이 지연되는 상황을 원치 않기에, 중재자 역할을 하며 당사자 간 타협을 유도할 여지가 있다. KHNP 역시 과거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을 소송 대신 합의로 풀어낸 경험이 있어, 전략적 판단에 따라서는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도 있다.
문제는 프랑스 EDF의 진짜 의도다. 이번 법적 공세를 통해 단순히 KHNP의 진출을 막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재입찰 기회 확보, 사업 지분 참여, 혹은 체코 내 다른 원전 프로젝트에서의 유리한 입지 확보 등 구체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합의 도출 과정은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며 일말의 기대와 함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결국 이번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태는 대규모 국제 입찰에서 경쟁사의 '법적 리스크'가 얼마나 큰 변수가 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특히 유럽 시장 진출을 노리는 비(非) EU 회원국 기업들에게는 까다로운 역내 규제 환경과 경쟁사의 전략적 법적 공세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명확한 '시계제로' 상태다.













